주목 받는 위기관리 컨설팅
지난 2004년 12월 29일 한국까르푸 본사에는 ‘난리’가 났다.한국소비자원이 10월 29일부터 11월 18일까지 전국의 할인점 및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한우 145개를 조사한 결과 한국까르푸의 5개 제품, 경방필백화점의 1개 제품이 가짜 한우로 드러났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당시 소비자원의 DNA 조사에 따르면 한국까르푸 안양, 야탑, 일산점에서 나온 양지국거리, 우둔다짐육 등 5개 제품, 경방필백화점 영등포점의 1개 제품은 겉포장에 한우라고 표시돼 있었지만 사실은 수입·젖소육이었다.소비자원의 발표가 나오자 한국까르푸 본사는 항의하는 소비자들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홈페이지도 한국까르푸의 ‘비양심적인’ 행태를 질타하는 네티즌들의 글들로 도배됐다.더욱이 한국까르푸는 ‘사고’가 발생하기 불과 두 달 전인 10월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200 우수 브랜드 축산물 유통업체’로 선정돼 장관 표창장과 상패까지 받았던 터라 시민들이 느끼는 배신감의 강도는 더욱 높았다.당시 한국까르푸 측은 “이번 건은 매장 직원의 실수에 의한 단순 우발사고”라며 “문제가 된 일부 제품을 수거하고 관련 책임자를 중징계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성난 민심은 쉬 수그러들지 않았다.이에 한국까르푸는 PR 대행사인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에 컨설팅을 의뢰했다.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슬기롭게 넘길 수 있느냐가 핵심이었다. 당시 의뢰를 맡았던 김경해 한국위기관리전략연구소장은 한국까르푸 측에 정직하게 대처하라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언론의 예상 질문도 뽑아내 함께 제공했다. 결국 한국까르푸 측은 정식 사과와 함께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한국까르푸의 사례는 위기관리 컨설팅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최근 위기관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컨설팅과 교육을 원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를 전문적으로 강의하는 1인 기업이나 PR 대행사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현재 우리나라에서 위기관리 컨설팅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에델만 등을 꼽을 수 있다.박재훈 박재훈PR컨설팅 대표는 1인 기업으로 정부와 기업 등을 상대로 위기관리 강의를 주로 하고 있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도 이쪽 분야에서 알아주는 위기관리 컨설턴트다. 이 중 위기관리의 선도적인 업체로는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지난 1987년 국내 최초의 PR 컨설팅 회사로 설립된 이후 수준 높은 위기관리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위기 해결사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기업들의 위기관리 대응 추진에 부응하기 위해 한국식 맞춤형 사전 위기관리 모델인 펙스(PECS, Pre-Engaged Crisis Settlement) 시스템을 선보이면서 위기관리 서비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펙스 시스템은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설 한국위기관리전략연구소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가 공동 개발한 위기관리 모델로 한국의 문화와 미디어 환경에 적합하도록 각 기업과 조직을 위한 한국식 맞춤형 시스템이다.하지만 이처럼 체계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춘 PR 대행사들은 그리 많지 않다.위기관리 서비스는 기본적인 PR 대행사라면 대부분 제공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이나 컨설팅을 위한 이슈 진단 등의 트레이닝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이는 위기관리 컨설팅이라는 것이 워낙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요는 많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인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김경해 한국위기관리전략연구소장은 이와 관련, “위기관리는 사실 한 회사의 명운을 좌지우지하는 중차대한 것이다. 단순한 언론 홍보와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 부문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위기관리가 중요하다고 말을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실제로 사전에 미리 준비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위기가 발생해야 그때서야 그 상황을 대응하기 위해 PR 대행사에 서비스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20여 개 기업체 홍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위기관리’ 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 에델만의 강함수 이사는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20여 개 기업 중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는 회사는 10%도 안 되고 사내에 위기관리 교육이나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기업도 몇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위기관리를 전담해 담당하는 팀이 기업체 내부에 없는 곳이 많다는 얘기다. ‘위기관리팀’은 각 조직 부서별로 핵심 실무 책임자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태스크포스(TF)팀 성격인데 이를 누가 구성하고 누가 운영할 것인지, 그리고 그 역할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교통정리’가 돼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또 하나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마인드다. 아직까지 위기관리라고 하면 미디어에 잘 대처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많이 남아 있다.강함수 이사는 “위기가 발생하면 콜센터, 영업점, 대정부 담당자, 내부 직원, 주주 등 각 파트의 담당자들이 일치된 행동으로 사과를 하거나 해명을 하거나 무엇인가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는 위기관리가 미디어 대처 파트의 일만이 아니라 회사 전사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이와 관련해 최근의 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10명 중 9명은 자신이 직접 대규모 기업 위기를 겪어본 것으로 나타났다.IGM세계경영연구원이 지난 3월 한 달 간 매출 300억 원 미만부터 2조 원 이상까지의 국내 기업 CEO 113명을 대상으로 ‘당신 기업은 위기관리 제대로 할 수 있습니까?’라는 주제의 설문 조사해 나온 결과다.‘기업의 생사가 달린 대규모 위기를 겪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8%가 ‘있다’고 답했다. 위기 경험 횟수에 대해서는 ‘1번 정도 겪었다’는 대답이 44%로 가장 많았고 2번이 40%, 3번이 13%로 나왔다. 5번 이상 겪었다는 대답도 3%에 달했다.매출액 규모별로 ‘현재 위기 대응 준비 수준’을 묻자 매출액이 작은 기업일수록 ‘준비가 미흡하다’고 대답한 비율이 높았다.매출 2조 원 이상 대기업은 ‘준비돼 있다’라는 대답이 100%였다. 하지만 매출 규모 300억 원 미만의 중소기업들은 ‘미흡하다’는 대답이 반을 넘었다(53%).특히 기업 위기에 따른 결말이 어떻게 결정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부분(97%)의 CEO들이 ‘기업이 지닌 위기관리 능력’에 따라 사태 결말에 큰 차이가 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김재창 기자 changs@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