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 설계는 ‘플래닝’ 아닌 ‘디자인’이다

한경비즈니스·대우증권·머니트리 캠페인

우리가 보통 사용하고 있는 ‘재무 설계’라는 말은 영어의 ‘파이낸셜 플래닝(Financial Planning)’을 우리 식으로 번역해 놓은 말이다. ‘설계’라고 번역해 놓은 플래닝이란 말은 무언가를 계획한다는 말이어서, 여기에는 충분한 기간을 두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최근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기업체 간부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의와 상담을 진행하면서 재무 설계를 플래닝의 개념만으로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들은 자녀들을 위한 교육비 지출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여서 더 이상의 추가 저축 여력이 없다. 그러나 그동안 부동산을 포함해 수억에서 수십억 원 이상 축적해 놓은 자산이 자신의 은퇴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이들이 희망하는 은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플래닝이 아닌 현재의 자산에 대한 새로운 디자인일 것이다.다음의 한 대기업 간부의 사례는 은퇴 준비를 추가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동안 모아 놓은 자산이 자신의 은퇴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필자가 진단한 대표적인 사례다.현재 나이 49세인 A 기업의 이사인 최모 씨는 별일이 없는 한 2018년에 59세로 은퇴할 전망이다. 현재 소득은 월 1000만 원이며 급여 외에 이자소득이 매월 200만 원 발생하고 있다. 가족은 배우자와 자녀 2명으로 각각 고3과 중3인데, 모두 미국에서 유학 중이며 배우자 역시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최 씨는 소위 기러기 아빠로 가족을 위해 큰 자녀의 대학 졸업까지 매월 1000만 원, 이후 둘째의 대학 졸업까지 매월 700만 원씩을 송금해야 한다. 최 씨는 이 외에도 자신의 생활비로 월 150만 정도를 지출하고 있어 연간 총 소득 대비 지출은 720만 원 정도 적자가 난다. 부족한 부분은 보통예금 자산에 있는 3억5000만 원으로부터 충당하고 있다.필자는 이러한 재무 상황을 토대로 최 씨가 원하는 수준의 은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물가상승률이 3.8%, 투자수익률이 6%라고 가정한다면 약 72세 시점에서 모든 자산을 소진해 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결론. 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 본다면 최 씨는 81세까지 살게 될 가능성이 크므로 약 9년간의 부족 자금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만일 최 씨가 기대하는 대로 정확히 59세에 은퇴하고 72세까지 생존한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조기 퇴직과 더 오래 살 경우를 가정하면 부족 자금 마련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가용 자산을 모두 은퇴 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했으므로 추가로 여유 자금을 저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최 씨는 재건축 중인 아파트의 완공 시점을 기준으로 양도소득세 비과세 적용 시점을 고려해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를 매각하고 임대 소득이 발생할 수 있는 부동산에 재투자할 것과, 보통예금에 넣어둔 현금의 일부를 다소 공격적인 투자에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다만, 최 씨의 경우는 예상과 다른 돌발 상황만 생기지 않는다면 자신의 은퇴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므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너무 무리하는 것보다는 현재의 자산을 지키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현재 40대 후반~50대 초반의 사람들이 은퇴의 시점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길어야 10년이며, 현재가 자녀들을 위한 교육비 지출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여서 더 이상의 추가 저축 여력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므로 이러한 전망은 상당 부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 뿐 결코 준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베이비부머의 재무 설계’는 새로운 저축을 통해 은퇴를 준비하는 20~30대와는 달리 시뮬레이션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예측해 보고 대안을 찾는 과정으로, 이제 ‘플래닝’보다 ‘디자인’으로 접근해야 되지 않을까.신영준·머니트리 국제 공인 재무설계사 gom102@naver.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