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떡’된 과천의 여름휴가

올해 장마는 비를 별로 뿌리지도 않은 채 물러가고 이번 주부터는 경제 부처들이 몰려 있는 과천 정부청사에도 본격적인 휴가철이 찾아왔다. 그동안 ‘냉방 온도 섭씨 27도 이상’ 기준에 맞추느라 뜨겁게 달궈진 사무실을 ‘4층 이하 승강기 운행 제한’으로 인해 걸어서 오르내리며 진땀깨나 흘렸던 공무원들은 사흘에서 길게는 닷새 동안의 ‘여름휴가’를 앞두고 기대에 부푼 표정들이다. ‘승용차 홀짝제’도 없고 ‘위기관리계획’에 따른 서류 작업도 필요 없는 곳으로 떠나는 모처럼의 일탈을 꿈꾸는 것이다.국제 유가 폭등에 물가 급등, 금융시장의 불안 등이 겹쳐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사무관급(5급) 이하 공무원들이야 상대적으로 눈치 보지 않고 피서를 떠날 수 있다. 비록 청와대의 ‘해외여행 자제령’까지 내려진 상황이지만 국내의 바닷가나 산과 계곡에서 놀다 오는 것까지 뭐랄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충남 태안의 펜션 6곳의 방 하나씩을 전세 내 총 80가족이 돌아가면서 정식 숙박료의 20~50%만 내고 묵을 수 있도록 했다. 다른 부처들도 이와 유사하게 유명 피서지에 직원들을 위한 ‘여름 휴양소’를 운영하고 있다.하지만 과장급(4급 서기관) 이상 간부 직원들은 태연하게 여름휴가를 가기가 아무래도 눈치 보이는 상황이다. 경제가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데 경제 관료가 “한가하게 여름휴가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어서다. 재정부와 지식경제부 농림수산식품부 금융위원회 등 주요 경제 부처에 평소 친분이 있는 국·과장들에게 휴가 계획을 물었더니 십중팔구는 “휴가 날짜를 써내긴 했는데 진짜 갈 수 있을지는 상황을 봐야 알겠다”고 답했다. 국·과장이 이럴진대 장관까지 올라가면 더더욱 ‘여름휴가는 남의 일’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8월에 휴가를 갈 예정이라는 것 외에는 날짜도 기간도 행선지도 전혀 정해진 게 없다고 비서실은 전했다. 최근 차관으로 승진한 김동수 재정부 1차관 역시 “임명장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휴가 계획을 잡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국환 2차관도 아직 여름휴가 계획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면서도 강 장관은 “휴가를 가지 않는 직원은 장관보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간부 직원들을 포함한 재정부 전 직원이 여름휴가를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을 독려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재정부의 한 국장급 관료는 “전투(경제 위기 대응)가 한창인데 어떻게 여름휴가 계획을 짜겠느냐”며 힘들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농식품부는 개각에 따른 장관 교체로 분위기가 어수선한 데다 국회의 ‘쇠고기 국정조사’ 등으로 업무량이 늘면서 장차관 이하 전 간부가 “이번 여름휴가는 어쩔 수 없이 반납하게 될 것 같다”는 분위기다. 후임 장관의 인사 청문회 일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아마도 이달 안에 퇴임할 것으로 보이는 정운천 장관은 휴가 일정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반면 정학수 박덕배 두 차관은 일단 각각 8월 4~6일, 7월 30일~8월 1일에 걸쳐 사흘씩 휴가 일정을 잡아 놓았지만 8월 20일까지로 예정된 국정 조사에서 청문회와 기관 보고 등이 차관들의 휴가 예상 일자에 집중될 전망이어서 계획에 따라 휴가를 가기는 틀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오는 3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국제경영원이 제주 롯데호텔에서 개최하는 ‘2008 제주 하계포럼’에 참석하는 것으로 휴가를 대신한다고 지경부 관계자들은 밝혔다. 이 장관은 지난해 전경련 상근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이 포럼을 주최한 바 있는데 올해는 장관으로서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강연하기 위해 참석하게 돼 감개무량한 심정일 것 같다.금융 당국 수장들 역시 금융시장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아직 휴가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8월 초 이틀에서 최대 나흘 정도의 휴가를 쓸 예정이라고만 밝혔을 뿐 아직 날짜를 정하지 못했고,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휴가 계획이 없는 상태다. 한편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8월 4일부터 8일까지 닷새간의 휴가 일정을 잡아놓고 있으며 서동원 부위원장도 이달 28일부터 8월 1일까지 휴가를 떠난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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