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만나 만화처럼 산답니다’

부부 만화가 박기홍·김선희





만화 ‘바둑삼국지’는 바둑 기사 조훈현 9단을 모델로 하는 바둑 전문 만화다. 포털 사이트 파란닷컴 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이 만화는 1989년 바둑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제1회 잉창치배(응창기배)에서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이 중국과 일본의 바둑 고수들을 무너뜨려가며 세계 정상에 서는 과정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조훈현 9단의 조카인 소설가 김종서 씨의 원작을 바탕으로 남편인 박기홍 작가가 글을 쓰고 아내인 김선희 작가가 그림을 그린 이 만화는 어려운 바둑 용어나 바둑 기술에 대한 정보 없이도 쉽게 읽힐 수 있어 바둑 팬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꽤 인기가 높다.“사실 우리는 바둑을 잘 두지 못해요.(웃음) 지금도 만화 속에 나오는 바둑 기보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할 정도죠.” 이 때문에 한 회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수십 시간이 걸린다. “제가 자료 조사를 하고 콘티를 넘겨주면 아내가 그림을 그리죠.”(박기홍) “남편이 넘겨준 콘티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서 다시 넘겨주면 톤을 붙이는 등의 마무리 작업을 하는 것이 남편 일이에요.”(김선희)박기홍 작가는 깨어 있는 내내 자료 조사와 콘티 작업에 몰두하고 김선희 작가는 한 회에 열여덟 시간에서 스무 시간 정도를 그리는 데 투자한다. 두 사람의 마감 시간은 각기 다르다. 남편의 마감이 끝나면 아내의 마감이 시작되고 아내의 마감이 끝나면 다시 남편의 마감이 시작된다.“그래서 아내가 일할 때는 제가 청소며 빨래며 식사 준비를 하고 제가 일할 때는 아내가 집안일을 다 하죠.”(박기홍)만화를 그리는 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이처럼 철저하게 함께하는 두 사람이기에 함께 일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트러블도 없다. 창작을 하는 이들이라면 아무래도 트러블이 있게 마련이지만 단 한 번도 의견이 부딪친 적이 없을 정도다.“오히려 함께 살다 보니 언제 어디서나 생각날 때마다 서로의 아이디어며 작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공동 작업이 훨씬 더 원활하죠. 부부 만화가의 장점이라고 할까요?”(김선희)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부부지만 사실 성격은 거의 정반대다. 아내인 김 작가가 낯을 가리고 꼼꼼한 데 비해 남편인 박 작가는 활달하면서도 서글서글하다.서로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건 만화 때문이었다.꿈꾸는 고치에서 탄생한 나비들



“십여 년 전, 남보다 늦은 나이인 스물다섯 살에 만화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박기홍 작가를 만났죠.”(김선희) 당시 김 작가는 이미 만화가들의 데뷔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잡지 만화 공모전에서 두 차례나 당선한 실력파 신인이었다.“공모전에서 당선되긴 했는데 담당 만화 기자가 제게 당시 유행하고 있던 ‘세일러문’ 같은 만화를 그리라고 하더라고요. 제 만화는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요. 그럴 바엔 만화를 그리지 말자며 아예 데뷔하지 않았죠.” 하지만 만화에 대한 열정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것이 다른 대부분의 만화가 지망생들이 그러하듯 만화 동아리에 드는 일이었다.“그때 김 작가가 들어온 동아리가 제가 스무 살 무렵에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만든 ‘꿈꾸는 고치(cocoon)’라는 동아리였어요. 실력 있는 친구들이 많이 모인 동아리였는데 만화 시장이 좋지 않다 보니 결국은 해산했지요.”(박기홍)동아리에서 만났지만 해산할 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를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에게 그저 실력 있는 동료일 뿐이었다.“박 작가의 만화는 다른 사람들 만화와 많이 달랐어요. 당시 다른 친구들은 자살이라든지 동성애라든지 자극적인 소재에 집중하는 편이었는데 박 작가는 삶, 인생, 뭐 이런 이야기들에 집중하고 있었죠. 게다가 정말 열심히 하고 있었고요.”(김선희)그렇게 서로를 주목하고 있던 두 사람은 결국 동아리 해산 후 우연히 다시 만났고 서로 만화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 이끌려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동거부터 시작하긴 했지만 양가 집안 모두 딱히 반대는 하지 않으셨어요. 너희들 인생이니까 너희가 책임져라 하고 인정해 주셨죠.”(박기홍)“대신 아무 지원도 받지 못했어요. 정말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했죠. 하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좋아하는 만화를 그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든든한 동반자가 있으니까요.”(김선희)그 뒤로 두 사람은 오롯이 단 둘만의 힘으로 세상이라는 파도에 어여쁜 만화들을 수놓아가며 살아왔다. 올해로 결혼한 지 6년째. 그동안 공동 작업을 한 만화도 편수로 벌써 세 편째다. 2006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하며 세상에 이들 부부의 재능을 알리게 했던 ‘불친절한 헤교씨’와 엠파스에서 연재했던 ‘뱀파이어 연대기’도 모두 박 작가가 글을 쓰고 김 작가가 그림을 그린 이들 부부의 작품들이다. 모두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와 수려한 그림체로 평단과 대중에게서 능력을 인정받았다.“모두 김 작가 덕분이죠. 김 작가의 그림만 보면 대부분 남자 작가가 그린 줄 아시더라고요. 순정만화도 잘 그리지만 시침 뚝 떼고 남자 작가처럼 그리는 것도 아주 잘하죠.(웃음)”“박 작가의 힘이 컸어요. 그림에 비해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박 작가와 함께 작업하면서부터 탄탄한 스토리에 주목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거든요.”가난해도 행복한 이유

각종 걸출한 상도 받고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가난하다.“뭐 어디 우리뿐이겠어요? 사실 만화계에서 이현세 강풀 허영만 선배님들을 제외하면 사정은 다 비슷비슷해요. 일은 힘들고 원고료는 짜고. 그래도 만화가 좋으니까 이 일을 계속하는 거죠.(웃음)”(박기홍)“제 꿈은 원래 만화를 그리면서 원할 때 제가 좋아하는 피자를 시켜먹을 수 있는 그런 삶이었어요. 지금은 그 정도는 되니까 아, 좋아라~하죠.(웃음)”(김선희)특별히 원대한 야망이나 명예욕, 물욕은 없다는 이 동갑내기 부부 작가는 그래서 시종일관 서로를 향해 웃어 보인다. 작년 11월, 김 작가가 만화가들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어깨 부상 때문에 슬럼프 아닌 슬럼프에 빠졌을 때에도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건 바로 동료이자 동반자인 박 작가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우리의 꿈은 소박해요. 앞으로도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면서 사는 것, 그게 바로 우리 꿈이죠.”(김선희)“욕심이 있다면 일본 만화계에 진출하는 거죠. 지금도 추진 중이긴 하지만 워낙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 여러 가지 요건들이 걸리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하리라고 봐요.”개와 고양이처럼 서로 다르지만 다른 만큼 서로의 부족함을 완벽히 채워주는 이들 부부 만화가가 그려낼 내일의 만화를 기대해 본다.김성주·자유기고가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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