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게 더 짜릿하게’… 전국 방방곡곡 식힌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워터파크는 전국을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 설악 한화 워터피아, 대명비발디파크 오션월드, 아산 스파비스 정도가 워터파크라는 이름으로 불릴 뿐이었다.하지만 지난해부터 생소한 이름의 워터파크가 하나 둘씩 신장 개업 소식을 알리더니, 지금까지 10여 군데가 문을 열었다. 업계에선 워터파크 간판을 건 업체가 전국에 20개 이상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년여 만에 5배 정도가 늘었다는 얘기다.올해 처음 문을 여는 워터파크들은 규모나 지역이 다종다양하다. 몇 년간 공을 들여 시설을 업그레이드한 곳도 있고, 고지대 황무지를 개간한 수백억 원짜리 프로젝트도 있다. 인구 10만 명의 소도시에도 ‘동양 최고’를 장담하는 워터파크가 들어서는 중이다.워터파크의 ‘원조’인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는 웬만한 워터파크 하나 크기의 테마존 ‘와일드리버’를 증설했다. 워터파크 붐이 이는 만큼 획기적인 재투자를 통해 확실한 차별화를 기하기로 한 것이다.용평리조트와 휘닉스파크는 스키장 일색이던 강원도 산골짜기에 ‘물의 제국’을 건설해 놓았다. 사계절 리조트로의 변신을 꾀하면서 워터파크만 한 효자가 없다고 판단, 동시에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여기에 전성기 지난 퇴물 취급을 받던 충남 아산의 도고와 경남 창녕의 부곡도 가세했다. 모두 워터파크를 통해 옛 영화의 재현을 꿈꾸고 있다.삼성에버랜드의 캐리비안베이는 국내 최초 최대의 워터파크다. 1996년 오픈해 규모나 방문객 수 등의 측면에서 1위를 고수해 왔다. 10년 이상 ‘지존’의 자리를 지켜온 셈이다.이는 세계적으로도 톱클래스 수준의 실적이다. 지난해 미국테마엔터테인먼트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캐리비안베이는 연간 방문객 140만 명으로 세계 워터파크 3위에 올랐다. 입장객 수와 시설 규모 등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평가다.이처럼 독보적인 위치의 캐리비안베이가 개장 12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증설을 단행했다. 1만6500㎡의 땅에 1092m의 국내 최장 슬라이드를 비롯해 타워래프트, 타워부메랑고 등 최신 물놀이 시설을 설치하고 ‘와일드리버’라고 명명했다. 증설이라고는 하지만 웬만한 중소 워터파크를 새로 들여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규모다.와일드리버는 3년 전부터 기획을 시작, 1년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공됐다. 김대석 파크기획팀장은 “테마파크는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르고, 고객 수 증가에 따른 이용 편의를 돕기 위해 증설을 결정한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그는 “7월 1일 오픈 이후 고객 반응이 폭발적”이라면서 “향후 입장객이 10~15%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와일드리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초대형 슬라이드다. 세계 최초로 산사면에 설치된 ‘와일드 블라스터’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도록 설계됐다. 특히 탑승자가 가려고 하는 방향과 수로를 선택할 수 있는 ‘DIY형’이란 게 별나다. 총 20개의 코스를 ‘생각대로’ 고를 수 있다.캐리비안베이는 와일드리버를 만들면서 부대시설도 많이 늘렸다. 로커 1만8000개, 물품 보관소 3000개, 도시락 보관소 2100개를 비롯해 동시에 1000명이 식사할 수 있는 초대형 레스토랑 산후앙을 새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고질적인 문제였던 ‘줄 서기’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올 여름 새 워터파크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강원도 평창의 이웃인 휘닉스파크와 용평리조트의 변신이다. 두 군데 모두 겨울 한철 스키장 영업에 머무르지 않고 사계절 리조트로 변신하는 신호탄으로 워터파크를 선택했다.휘닉스파크는 그리스의 도시 산토리니를 메인 콘셉트로 잡아 ‘고품격 지중해풍 물놀이 공간’을 표방한다. 워터파크 이름도 ‘블루캐니언(푸른 협곡)’이다.블루캐니언은 기존 워터파크의 ‘상식’을 깨는 시도로 눈길을 끈다. 1등급 수질의 천연광천수를 사용하고 패션에 민감한 여성을 위해 수영 모자를 쓰지 않아도 되게 한 게 그것이다. 거센 파도를 타넘게 만든 유수풀 ‘웨이브 리버’와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업힐 슬라이드’ 등 스릴 넘치는 시설들도 적지 않다.용평리조트가 새로 만든 워터파크 ‘피크 아일랜드’는 ‘조용하면서도 품격 있는 리조트’를 표방하고 있다. 수도권 워터파크가 1일 여행객 중심이라면 이곳은 적어도 1박2일의 체류를 원하는 가족 단위를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래서인지 워터파크 시설의 구조가 독특하다. 찜질방, 야외 불가마, 노천 테마탕, 물놀이 시설 등이 하나의 동선이 이어진다. 어른과 아이가 제각각 원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놓았다.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는 김충근 상무는 “워터파크 오픈 후 객실 예약률이 16% 정도 증가했다”면서 “9홀 골프장과 호수를 끼고 있는 빼어난 경관 등으로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피크아일랜드의 개장에 따른 해외 관광객 수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상무는 “연간 13만 명에 달하는 동남아 관광객 수를 내년에는 16만 명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면서 “탄탄한 해외 판매망이 갖춰져 있어서 워터파크 개장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높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워터파크 개발 붐은 지방에서 더 뜨겁다. ‘전통적인’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통한 워터파크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대표적인 예가 경북 영주 소백산 인근에 들어서는 판타시온. 콘도, 골프장과 함께 9만9096㎡의 대형 워터파크가 들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판타시온 관계자는 “워터파크 규모와 시설로 보면 동양 최고라고 할 수 있다”면서 “7월 19일 개장을 앞두고 벌써부터 관심이 대단하다”고 밝혔다.판타시온에는 국내 최고 높이의 고공 슬라이드가 설치된다. 30m 높이에서 떨어지는 슬라이드가 번지점프를 하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는 설명이다. 또 74~170m에 달하는 다양한 슬라이드 타워, 최첨단 수치료 시스템을 갖춘 실내 워터파크 ‘죽계수궁’, 20톤의 물폭탄 시설인 ‘해모수 요새’ 등도 자랑거리다.판타시온은 특히 워터파크 전용 회원권 ‘W’를 출시,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콘도나 골프장이 아닌 워터파크 회원 혜택을 강조한 회원권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또 경북 지역 수요뿐만 아니라 서울 수도권, 강원권 수요까지도 흡수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2시간대 도착이 가능하다”면서 “강원권 리조트보다 입지 여건이 낫다”고 말했다.워터파크 붐에는 왕년의 대표 휴양지 온천도 가세했다. 충남 아산의 도고온천에 위치한 파라다이스와 경남 창녕의 부곡하와이가 주인공이다.이들 온천은 ‘좋은 물’로 승부한다. 대형 워터파크에 비해 시설이 뒤떨어질 수는 있어도 ‘기본’인 물만큼은 최고라는 것이다.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는 휴식, 놀이, 건강을 아우르는 복합 휴식 공간을 표방한다. 기존의 파라다이스호텔에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외 워터파크 시설을 갖췄다. 특히 동양 4대 온천수로 꼽히는 최상급 유황온천이라는 게 최대 강점이다. 이 회사 이덕범 부장은 “6월 말에 실시한 무료 행사에 2만여 명이 찾아와 호평을 했다”면서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를 계기로 도고온천단지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워터파크 개발 붐은 선발 주자들의 ‘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 1996년 문을 연 캐리비안베이는 줄잡아 10년을 ‘독주’했다. 대명리조트가 지난 2006년 강원도 홍천 비발디파크에 오션월드를 지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덕산 스파캐슬과 아산 스파비스가 문을 열면서 불이 붙었다. 사업성이 증명되면서 워터파크 사업 희망자가 급증한 것이다.홍영기 대명리조트 이사는 “2~3년 사이 새로 개발된 워터파크가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고 붐이 일기 시작한 것 같다”면서 “도시 피서객을 불러들이는 세련된 휴가지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워터파크 전국시대가 시작된 셈”이라고 진단했다.겨울 스키장 운영에 매진하던 강원도 일대 리조트들이 워터파크에 뛰어든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사계절 운영 가능한 리조트로의 변신을 위해선 워터파크가 필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김충근 용평리조트 상무는 “스키, 골프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가족 전체가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부족했고 이에 따라 수지도 악화됐다”면서 “워터파크를 통해 40% 미만이던 객실 투숙률을 60%선까지 끌어올리려고 한다”고 밝혔다.올 7월을 기점으로 문을 여는 워터파크가 적지 않지만, 앞으로 개발이 대기 중인 곳은 더 많다. 관련 업계에서도 일일이 체크하지 못할 만큼 동시다발로, 다양한 규모로 생겨나고 있다. 올해 10개 안팎의 새 워터파크가 문을 연 것은 ‘신호탄’일 뿐이다.각 지방 관광공사를 비롯한 레저 관련 기업들이 선두에 섰다. 신규 개발하는 리조트라면 백발백중 워터파크가 포함돼 있을 정도다. 강원랜드는 정선의 스키장 하이원리조트에 고급 워터파크와 스파 시설 신축을 위해 826억1500만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강원도개발공사도 평창에 짓는 리조트 알펜시아에 워터파크를 조성하기로 했다. 한국토지공사 부산울산지역본부는 양산신도시에 워터파크를 만들기로 했고 충남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인 안면도 개발 사업에도 워터파크가 포함돼 있다. 태안관광레저도시 프로젝트, 강원도 동해 사계절 체류형 관광도시 프로젝트, 보광의 제주 섭지코지리조트 프로젝트 등에도 워터파크가 ‘감초’처럼 끼어 있다.기존 선발 업체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는 분위기다. 에버랜드가 수백억 원을 들여 와일드리버를 신설한 데 이어 대명리조트는 내년 중 물놀이 시설을 ‘손 볼’ 계획이다. 한화 워터피아 역시 리뉴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후문이다.워터파크 붐은 인력의 대이동을 동반하고 있다. 한 레저 관련 기업 관계자는 “업무 경험자를 찾다 보니 기존 업체에서 스카우트하려는 수요가 많다”면서 “안전 요원들도 스카우트 대상”이라고 밝혔다.헤드헌팅 업체들은 워터파크 운영 경험자를 찾느라 분주하다. 한 헤드헌터는 “지방 워터파크에 근무할 수 있는 경험자를 찾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면서 “연봉 1000만 원 이상 올려주는 정도로는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워터파크 붐은 겉으로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한편에선 ‘경계론’이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400억~500억 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투자 사업이 냉정한 타당성 분석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다. ‘돈 많이 번다더라’는 따라 하기식 사업 추진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문을 연 중소형 워터파크 가운데 몇 군데는 벌써부터 경영난에 시달리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홍영기 대명리조트 이사는 “워터파크의 증가가 레저 산업의 새로운 장을 여는 긍정적인 현상이 될 수도 있지만 일부 지역의 시설들은 수요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수요 측정에 따른 손익 계산 없이 장밋빛 미래만 담보한 경우 구조 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경고다.이는 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 대부분이 동의하는 것이다. 김대석 에버랜드 파크기획팀장은 “지방 중소형 워터파크 가운데 상당수가 수준 미달”이라고 지적하고 “본격적인 워터파크 시대의 개막이 아니라 옥석이 가려지는 과도기가 시작됐다”고 밝혔다.일본 레저 업계가 겪은 수순이 앞으로 국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날 것이란 예상도 있다. 일본에선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워터파크 등 테마파크 개발 붐이 일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몇 되지 않는다. 붐 이후엔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마련이고 국내 워터파크 업계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와 있다. 워터파크는 레저 시설 경영의 기본기는 물론 놀이 시설 설계, 안전을 위한 마감 시공, 수질 관리, 배수 시스템 등에 노하우가 필요한데도 이를 제대로 갖춘 곳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콘도나 스키장, 골프장 등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아니라 워터파크만으로 운영하는 경우 경쟁력 약화를 걱정해야 할 것”이라면서 “고유가에 물가 상승까지 겹쳐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만큼 ‘돈 된다더라’식의 접근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대형 워터파크에서 하루 잘 놀기 위해선 빵빵한 지갑이 필요하다. 한강시민공원 수영장의 ‘착한’ 요금을 생각한다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내로라하는 워터파크들은 눈이 번쩍 뜨이는 시설과 함께 비싼 이용 요금으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캐리비안베이, 오션월드 등 대형 워터파크들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를 최고 성수기로 정했다. 최고 입장료는 7만2000원(성인)을 받는 영주 판타시온. 와일드리버를 증설한 캐리비안베이와 대명리조트 오션월드는 최고 6만5000원을 받는다.하지만 이 가격을 그대로 내고 입장하는 이는 많지 않다. 업체와 제휴된 신용카드를 활용하면 30~40% 할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도 ‘워터파크 싸게 가기’ 등의 ‘비법노트’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만일 수영복, 수영 모자, 타월 등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대여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 특히 대부분의 워터파크들이 수영복과 수영 모자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어 ‘대충 입고 들어가지’라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단, 올 7월부터 문을 여는 평창 휘닉스파크 블루캐니언은 여성들의 패션을 위해 수영모 착용을 ‘면제’하고 있다.또 도시락 등 음식물 반입을 금하고 실내 푸드코트 등에서만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이에 따른 추가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요즘 지어지는 워터파크는 전용 코인을 발급하거나 전자팔찌로 계산, 퇴장 시 일괄 정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취재= 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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