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받치던 ‘등’

눈은 무서웠다. 도통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온 천지가 퍼붓는 눈보라에 제압당한 듯했다. 개 한 마리 짖지 않았다.아버지와 내 발을 휘감는 눈이 내는 이빨 가는 소리만 뽀드득뽀드득 들려왔다. 숨은 가빠지고 목뒤는 계속해서 섬뜩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의연했다. 아버지의 등은 흔들림 없는 산 같았다.“어여 와라!”가끔 뒤돌아보며 나를 이끄는데, 아버지의 몸놀림이 너무 익숙해 보여 늘 다니던 길처럼 여겨질 지경이었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어 문득문득 주르르 미끄러져 논바닥으로 들어갔어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으셨다. “여긴 길이 아닌갑다.” 툭 내뱉곤 다시 길을 잡아 걸음을 재촉하셨다.그럴 때마다 나는 “제가 앞장설게요”라고 말해 보지만 언 입은 내 말소리를 뒤틀었다. 쏟아지는 눈발에 바짝 얼은 내 소심함을 이미 읽고 계셨는지 아버지는 한사코 앞걸음을 고집했다.꼭 장정이 노인네한테 업혀 가는 꼴이었다. 나는 일곱 시간 동안 아버지 등 뒤에 숨어 칼날처럼 할퀴어오는 눈발을 피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버지 등은 여전히 든든하고 정정했다. 아버지 등에 바짝 붙은 채 나는 벅찬 눈물을 질금거리며 뒤를 따랐다.중풍이 두 번째 들이닥쳤을 때 아버지는 차츰차츰 발걸음을 더듬기 시작하셨다. 셋째 동생과 함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께 세상 안부를 전하고 오신 다음날부턴 자리보전을 하고 누우셨다.집 안마당이 아버지가 내다보는 세계의 전부였다. 바람이 전하는 말이나 댓잎에 실려 오는 바스락거림이 거의 유일한 바깥 창구였다. 하지만, 신통하게도 아버지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 꿰차고 계셨다. 나는 굳이 군말을 달 필요가 없었다.가끔씩 아버지는 마루 벽에 기대어 마당가를 서성이는 햇살들을 무릎 쪽으로 불러들이고는 했다. 햇살은 강아지처럼 느즈런히 아버지 무릎을 핥고 지나갔다. 나는 적이 안심했다. 그래, 아버진 아직 멀쩡하셔.하지만 그건 내 마음의 오류였다. 목욕을 시켜 드리기 위해 다가간 나는 흡! 일순간 호흡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세월과 병마에 갉아 먹힌 아버지 등은 참으로 안쓰러웠다. 그 꼿꼿한 등이 10여 년 만에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흐물거렸다.나는 내 등을 내어드리고 싶었다. 세상 다시 짊어지시라고 허리와 어깨도 빌려드리고 싶었다. 내가 잠깐 흐느꼈는가, 아버지 등이 주춤거리더니, “보기 흉하냐?” 넌지시 물어오셨다. 나는 부러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아버지! 산도 짊어지시겠는데요?”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거짓말처럼 집이 스러졌다. 멀쩡하던 집이 문득 빛을 잃고 잡풀이 자라고 이끼가 끼었다.내 시 ‘집이 떠나갔다’에서 표현한 대로, “아버지 사십구재 지내고 나자,/ 문득 서까래가 흔들리더니/ 멀쩡하던 집이 스르르 주저앉았다.” “아버지 숨소리 끊기자 모두 다 빛을 잃었다./ 아버지 손때 묻은 재떨이와 붓, 벼루가/ 삭기 시작했고 문고리까지 맥을 놓았다.”나는 집을 떠받치고 있던 아버지 등이 사라지자, 집이 흔들거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과 함께 고향집에 머물러 있던 내 등도 허전해졌다. 나는 훌훌 집을 벗었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기인 줄만 알았던 내 딸이 등 뒤로 다가와 나를 가만히 껴안는 게 아닌가. 그러자, 내게도 불쑥 아버지 등이 생겨났다.나는 그제야 비로소 그때 기어코 앞걸음을 고집하셨던 아버지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 큰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아버지 마음으로 보면 여전히 여리고 아린 안쓰러운 존재일 뿐이다.내 마음을 읽었는지 툭툭, 아버지가 등 두드리신다. 돌아보니 글 쓰는 내 등 뒤에 걸린 족자에서 아버지가 힘차게 붓글씨 쓰고 계신다. 아버지 등은 여전히 꿋꿋하시다.정우영·시인196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숭실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1989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집이 떠나갔다’가 있고, 시평 에세이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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