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은퇴 준비 문제 많아요’

데이비드 프라우드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

피델리티는 미국 보스턴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다. ‘뮤추얼펀드 제국 피델리티’라는 책은 세계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이들의 막강한 영향력과 드라마틱한 성공 과정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 신뢰의 상징으로 뿌리내린 게 가장 큰 성공 비결로 꼽힌다. 운용 자산이 1000억 달러에 달한 전설의 마젤란펀드가 이 회사의 간판 펀드다. 피델리티는 지난 2002년 투자 자문사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고 2005년 자산운용업 허가를 취득했다. 현재 운용 자산은 7조 원대로 화려한 국제적 명성에 비한다면 국내 펀드 시장에서의 비중은 아직 낮은 편이다. 하지만 자산운용사 전환 4년째인 올해 피델리티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2012년까지 운용 자산을 2배로 늘리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핵심 타깃은 퇴직연금을 포함한 ‘은퇴 시장’이다. 최근 피델리티가 한국 가계의 ‘은퇴준비지수’를 조사해 내놓은 것은 그 예고편이다. 지난 7월 1일 데이비드 프라우드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를 만났다.“한국인들의 은퇴 준비가 굉장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근로자 가계가 희망하는 은퇴 후 연간 소득은 은퇴 직전 소득의 62% 정도였어요. 반면, 국민연금이나 퇴직금, 기업연금, 개인연금, 저축 등을 모두 합해 실제 퇴직 후 얻을 수 있는 연간 소득은 은퇴 직전 소득의 41%에 불과했지요. 자신이 은퇴 후 원하는 것과 실제 준비된 것 사이에 21%포인트의 격차가 있는 겁니다.”“은퇴 준비 격차만 보면 한국은 21%포인트로, 영국(13%포인트)이나 독일(14%포인트)보다는 높지만 일본(22%포인트), 홍콩(24%포인트), 대만(27%포인트), 미국(27%포인트)보다는 낮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은퇴 준비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아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한국의 은퇴 준비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게 나타난 것은 ‘은퇴 후 희망 소득’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에요. 한국 가계의 은퇴 후 희망 연간 소득은 은퇴 직전 연간 소득의 62% 수준으로 조사 대상 7개 나라 중 가장 낮았어요. 목표 자체가 낮으니 격차도 낮게 나타난 거죠. 한국은 은퇴 후 실제 얻을 수 있는 소득 수준도 은퇴 직전 연간 소득의 41%로 7개 나라 중 최하위였어요. 한국에서 고령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사실 다른 나라와의 비교보다는 대다수 한국인이 은퇴 이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누구나 은퇴 후 이런저런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한국인 중 대다수가 그런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이번 조사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고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은퇴 후 자신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려면 더 이상 국민연금이나 퇴직금에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이 적극적으로 은퇴 설계를 시작해야만 합니다.”“그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요.(웃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재정적 목표를 갖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은퇴 준비는 맨 마지막에 오는 목표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합니다. 내 집도 마련해야 하고, 자녀 교육은 물론 결혼도 시켜야 합니다. 그런 걸 따라가다 보면 자연 은퇴 준비는 신경 쓰기 어렵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재정적 목표를 다 이루고 난 다음 은퇴 준비를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부모님을 모시는 전통이나, 부동산에 대한 지나친 의존 등도 은퇴 준비를 현실적인 문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특정 상품이 아니라 은퇴 설계가 중요하지요. 지금 당장 은퇴 설계를 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받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은퇴 설계는 일반화해 이야기할 수 없는 매우 개인적인 이슈입니다. 소득수준이나 은퇴 후 원하는 라이프스타일, 얼마나 리스크를 감수할 의향이 있는지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해요. 막연하게 바라기만 하는 것과 보다 현실적인 시각을 갖고 목표를 채우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지요.”“피델리티는 은퇴 준비와 관련된 많은 경험과 노하우, 상품을 갖고 있어요. 이 중 국내 실정 맞는 것들을 들여와 한국인들의 은퇴 준비와 관련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려고 합니다. 국내에 곧 소개할 것 중 ‘마이플랜’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현재 자산과 은퇴 시기, 은퇴 후 희망하는 생활수준 등을 개인 정보를 입력하면 현재 은퇴 준비가 얼마나 돼있는지 수치로 계산해 주는 거죠. 한마디로 ‘개인별 은퇴준비지수’라고 할 수 있어요. 피델리티는 ‘은퇴’라는 큰 영역에서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겁니다. 조만간 ‘피델리티 은퇴 백서’를 발간하고 세계 각국의 은퇴 관련 전문가를 초청해 포럼도 열 계획입니다. 한국은 은퇴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 중 하나예요.”“지난 상반기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시장이 예외 없이 변동성이 큰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처음이 아니지요. 피델리티는 지난 40년간 수많은 경제 사이클과 경기 변동을 지켜봤어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의 대폭락과 그 이후 시장의 반등 과정도 지켜봤습니다. 투자자들에게 현재 투자하고 있다면 돈을 빼지 말고 기다리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시장은 또다시 반등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만약 지금 투자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이 매수 기회라고 할 수 있어요. 다만, 한꺼번에 몽땅 집어넣지 말고 정기적으로 나누어 투자하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매달 일정액을 꾸준히 투자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일 수 있어요.”“올해 어떤 투자자는 손실을 봤지만, 또한 투자 수익을 거둔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피델리티 펀드 중에서는 EMEA(신흥유럽·중동·아프리카) 펀드의 실적이 꽤 좋았어요.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82%를 갖고 있는 중동 지역 등에 투자하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에 따라 실적이 좌우됩니다. 이처럼 좀 더 다각화된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좋아요. 친디아세안 펀드도 괜찮은 펀드라고 봐요. 중국은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 시장에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나라들에 투자하는 펀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펀드의 과거 실적을 보고 언제 들어갈지 고민하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과거 실적으로 보고 타이밍을 잡는 것은 아주 어려워요. 현재 나타나고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지요.”“투자라는 비즈니스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를 쌓는 겁니다. 증권사, 은행 등 우리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사와의 신뢰, 고객과의 신뢰 등 모두 중요하지요. 고객 조사를 해보면 판매사나, 고객 모두가 피델리티의 상품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신뢰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의 성과에 만족하고 있어요. 피델리티 전체 차원에서 한국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중 한곳이지요. 그래서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요. 장기적으로 한국에서 투자 시장이 매우 커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시장점유율을 늘리는데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한국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빠른 나라입니다. 미국 경제가 위축된다고 하더라도 현재 시점에서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아시아와 중동 시장에 수출이 많이 이뤄지고 있어요. 환율은 인플레이션을 적절히 통제하면서 수출 물량도 적절히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을 잘 유지하고 있어요. 물론 올해 성장은 다소 둔화될 겁니다. 하지만 이건 전 세계가 마찬가지죠. 중요한 건 한국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거예요.”데이비드 프라우드 대표는…1957년 영국 출생. 2000년 HSBC 이머징마켓 전자상거래 대표. 2001년 HSBC 아시아태평양 퍼스널뱅킹 대표. 2003년 엔젤인베스트먼트신디케이트 파트너. 2007년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현).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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