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필요한지 찾았니?’

“뭐가 필요한지 알았다면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아버지가 연을 만들어 날리실 때 곧잘 하시던 말씀이다. 아버지는 항상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 필요한 물건들을 손수 만들어 내곤 하셨다. 가장 큰 수혜자는 나였기 때문에 내 책상에는 늘 나무로 만든 배라든가 필통, 연필꽂이 등이 가득했다. 지금도 여전히 내 책상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들로 가득하다. 내 일은 나무로 독서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일을 처음 시작한다고 했을 때 지인들은 내게 어떻게 독서대 만드는 일을 시작했느냐고, 그게 뭐냐며 신기한 듯 묻곤 했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일이었고 전망이라고는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겐 당연한 일처럼 시작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목제품들과 함께 자란 나로선 필요한 것을 찾고 또 그것을 나무로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아버지는 늘 산에 다니셨다. 산에서 돌아오시는 길에는 주우셨다는 굵직한 나무를 한 움큼 가져와 나를 옆에 앉혀 놓고 이것저것 원하는 것을 만들어 주셨다. 내가 연을 만들어 달라 하면 나무를 깎아 연 살을 만들고 집 한구석에 놓여 있던 창호지를 가져 오셔서 뚝딱 만들어 주셨다. 팽이를 만들어 달라면 또 몇 분만에 하나를 완성해 주셨다. 내 눈에는 무엇이든 쉽게 만들어 내시는 아버지의 손이 마치 마법사의 손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자연히 나 또한 필요한 걸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하지만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그런 나를 못마땅해 하셨다. 내가 갑작스럽게 신학대를 가겠다고 했을 때도 나는 아버지께 지금 내가 뭐가 필요한지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신학대를 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그런 나를 저어하셨지만 졸업할 때가 됐을 때는 내가 평범한 목회자의 길을 걷기를 은근히 지원해 주셨다.하지만 졸업을 하고 얼마 뒤 내가 독서대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게 반대 의사를 밝히셨다. 나는 그날도 역시 아버지에게 같은 말씀을 드렸다. “뭐가 필요한지 알았다면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이번에는 확실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나를 보면서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화를 내셨다. 더욱 힘들었던 점은 당신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그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줄 아느냐며 다그치시던 아버지의 말보다, 그 말이 나에게 있어 핑계나 변명처럼 혹은 방패막이로 뱉어졌다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사업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째가 되어간다. 운 반 노력 반으로 자리를 잡은 나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조용히 침묵 중이시다. 얼마 전, 지병으로 고생 중인 아버지 병문안을 갔다. 아버지의 얼굴에선 예전에 나를 혼내시던 무섭던 얼굴도 연을 만들어 주시던 다정한 모습도 사라져 있었다. 낙심한 듯한 눈동자와 메마른 입술들이 자책으로 다가올 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 나게 슬프거나 괴롭지 않았다. 이 병문안의 시간이 또 침묵으로 끝나리란 것도 짐작하고 나선 걸음이기 때문이었다.그날은 아버지 곁에 내가 만든 독서대를 조용히 놓아두고 병원 문을 나섰다. 아직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그래도 이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것을 알아주십사 하는 어린 마음도 있었다. 그날 저녁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뭐가 필요한지 찾은 모양이구나….” 힘에 부친 목소리의 아버지였다. ‘네 아버지. 바로 그거예요. 저는 필요한 게 뭔지 드디어 찾았어요’라고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아버지의 입버릇 같던 그 말이, 정말 어려운 건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는 일’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른 나이에 겁 없이 달려든 내 사업이지만 자라면서 아버지가 반복하셨던 그 말이 결국 나를 이렇게 이끌었다는 버거운 감정 때문에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버지, 병석을 털고 일어나실 때는 아버지표 독서대도 함께 만들어요.”글쓴이 이영창은 서울 광신고와 그리스도 신학대 신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목공예품이나 독서대 등 나무로 ‘무언가’를 만드는 ‘위즈템’을 세웠다. 현재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이영창·위즈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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