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업 실적 ‘흐뭇’… 중장기 전망 ‘굿’

황제의 귀환, IT 펀드

2008년 초, 정보기술(IT) 산업은 2007년과 마찬가지로 부진하거나 2008년 2분기 이후 개선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몇 개 되지도 않는 IT 섹터 펀드는 투자자들에게 관심 밖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당초의 전망을 뒤엎고 IT 기업(삼성전자 LG전자 하이닉스 등)의 수익률이 코스피 대비 모두 상회(Outperform)하면서 국내 증시의 반등을 주도했다. IT 펀드 설정액 역시 올 초 1315억 원에서 5월 말 현재 1547억 원으로 18% 증가하면서 IT 펀드에 봄날이 찾아왔다. 2000년 IT 버블 붕괴 이후 줄곧 시장수익률을 하회하던 IT 업종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일까.지난해 첫선을 보인 IT 펀드가 시작부터 수익률이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초 윈도 비스타 효과가 IT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면서 IT 펀드의 수익률도 양호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IT 펀드의 수익률은 국내 주식형 펀드 전체 수익률보다 낮았다. 1분기와 2분기 수익률은 각각 마이너스 2.74%, 20.28%를 기록, 1.38%, 23.83%였던 국내 주식형 펀드에 못 미쳤고, 3분기와 4분기는 역시 6%포인트 이상 낮은 성적을 보이며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IT 펀드의 부진 원인은 3가지로 분석된다.첫째, 기업의 실적이 악화됐다. 가장 대표적인 IT 기업인 삼성전자의 2007년 영업이익률은 2001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2005년 14%, 2006년 11%, 2007년 9.4%로 3년 연속 하락했다. 전체 영업이익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반도체 부문의 부진이 기업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2007년 D램 가격 하락률이 49%에 달했다. 더군다나 이 같은 하락률이 계절적 비수기 영향으로 인한 하락뿐만 아니라 비트 그로스(Bit Growth· 메모리 반도체의 전체적인 성장률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메모리 용량을 1비트 단위로 환산해 성장률을 계산하는 것) 공급 과잉으로 인한 구조적인 국면에 진입, 발생했다는 사실이 더욱 큰 충격을 줬다. 또한 윈도 비스타의 수요가 부담스러운 하드웨어 사양과 전용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증가하지 못하면서 수급 여건이 악화된 것이다.둘째, 원화 강세다. 2007년 원·달러 환율이 900원까지 하락하며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원화 강세가 지속됐다. 이로 인해 해외 수출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일본 업체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을 기록했다. 즉, 기회비용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이야기다.2007년 IT 수출을 살펴보면, 수출액이 전년 대비 10.5% 증가했다. 또한 IT 산업 수지가 전체 산업 수지 적자에 불구하고 흑자를 기록하면서 외관상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D램 공급 과잉 해소 지연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2006년 대비 5.2% 증가에 그쳐 다른 IT 부문의 수출 증가율을 상쇄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휴대전화, 액정표시장치(LCD) 등 산업별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국내 IT를 대표하는 반도체의 부진은 IT 업종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마지막으로, 글로벌 수요 둔화 전망이다. 이것은 2008년 현재에도 IT 부문의 발목을 지속적으로 잡고 있는 원인 중 하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계기로 달러 약세 현상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대안 투자처인 원유 등 상품 시장에 글로벌 유동성이 흡수되며 상품 가격이 급등, 인플레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인플레로 인해 글로벌 수요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2007년 4분기 펀드 수익률 급락으로 이어졌다.2008년 역시 2007년과 마찬가지로 IT 펀드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2008년 하반기부터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인해 IT 펀드를 주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1월 중순부터 글로벌 증시의 완만한 상승 추세 속에 IT 업종이 가장 먼저 탄력을 받으면서 IT 펀드의 수익률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자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이러한 수익률 개선의 주된 이유는 국내 IT 기업이 수년간 지속돼 온 해외 IT 기업과의 치킨게임(어느 한 쪽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게임)에서 승리하면서 2008년 1분기 실적이 예상치보다 크게 웃돌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08년 1분기 매출 17조1100억 원, 영업이익 2조1500억 원을 기록했다. 2007년 4분기보다 매출은 2%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21%나 증가하면서 ‘어닝 서프라이즈’를 실현했다.반도체 부문의 경우 전년 대비 수익성은 악화됐으나 D램의 시장점유율은 2007년 27.7%에서 2008년 30%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IT 부문의 전망을 더욱 밝게 해 주고 있다. 또한 이번 실적 발표를 통해 D램 비트 그로스는 100% 이상, 낸드플래시 메모리 비트 그로스는 1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장기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더욱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이닉스의 경우 2008년 1분기에 4820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으나 시장 예상치인 5500억 원보다 적었고, 해외 경쟁사 대비 기술 우위에 따른 원가 경쟁력 향상으로 하반기 흑자 전환 기대감을 갖기에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이러한 기업 실적 개선에는 환율도 한몫했다. 2008년 5월 원·달러 환율이 1049원까지 상승하면서 지난 10월 최저점 대비 원화 가치가 14.2%나 절하됐다. 이로 인해 반도체 부문 외에 LCD,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 등 모든 IT 관련 수출품들이 일본이나 대만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서 수익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또한 이머징 마켓의 수요 증가 전망도 IT 업종에 호재다. 미국의 경기 침체 및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으로 감소하는 교체 수요를 견실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이머징 마켓의 신규 수요가 상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TV, 휴대전화, 반도체 등 IT 업종에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2008년 5월 IT 수출입 실적에서 중국의 반도체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40.2% 증가하면서 반도체 수출이 9개월 만에 증가세로 전환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고유가나 미국의 경기 침체가 IT 경기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회복을 섣불리 얘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IT 업종의 하방경직성이 확보됐다는 것에는 이견이 거의 없으므로, 적립식으로 IT 펀드에 투자하면서 단계적으로 접근하길 권한다.중장기적으로 보유하기로 결정한 투자자는 거치식으로 투자하는 것도 괜찮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바이오테크에 있다. 최근 고공비행 중인 고유가, 탄소배출권 등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등 대체에너지 사업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체에너지 사업 자체가 아니라 대체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다. 즉, 태양광이나 LED는 반도체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결국 대체에너지 시장은 국내 IT 산업에 또 다른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지금 대체에너지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러나 석유를 사용하는 비용보다 대체에너지를 사용하는 비용이 훨씬 더 저렴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3년 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안정균·SK증권 펀드 애널리스트 jkahn@sk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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