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제 도전은 끝나지 않았어요’

여성 보디가드 고은옥

고은옥(30) 퍼스트레이디 대표를 본 사람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우선 모델을 연상하게 하는 늘씬한 키와 빼어난 외모에, 그리고 또 하나는 그렇게 여성스러운 자태에도 불구하고 태권도 4단, 경호무술 4단, 용무도 4단 등의 무술 고수라는 사실에 놀란다.“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어요. 다른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나 인형놀이를 할 때도 전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아니면 공놀이를 하곤 했었지요.(웃음)”딸만 셋인 집안에 둘째 딸로 태어난 그녀다. 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아들노릇은 내 몫’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원래부터 활동적인 성격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좀 더 적극적이고 활발해진 것 같아요.”부모님은 그런 그녀를 언제나 믿음직하게 지켜봐 줬다. 그녀가 태권도를 배우고 육상을 하며 남다른 운동신경을 뽐낼 때도, 다른 사람들이 “계집애가 운동은 무슨 운동이냐”며 면박을 줄 때도 “여자이기 때문에 못할 일은 없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뭐든지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준 것은 항상 부모님이었다. 특히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몸으로 딸 셋을 키우면서도 “힘들다”는 말씀 한 번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그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경호원을 꿈꾸게 된 건 대입 시험을 마치고 난 뒤였어요. 경찰이나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여성에게는 여러 가지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고민할 때였지요.”당시만 해도 여경 간부 후보생이나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제외하면 여군 장교가 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순경이나 하사부터 출발해야 했지만 그 역시 하는 일에 있어서 여성의 영역을 크게 뛰어넘지 못할 것 같았다. 대신 적성에 맞는 다른 직업을 고민하다가 결심하게 된 것이 바로 여성 경호원의 길이다.그녀가 ‘보디가드’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당시 그녀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던 대학생이었다. 당시 중국에서 무역업과 통역, 바이어 상담 등을 하던 언니의 영향으로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경호원이 되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 일도 등한시하지 않았다. 결국 사단법인 대한경호협회와 인연이 닿으면서 훈련을 거쳐 본격적인 경호원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첫 임무는 모 유명 가수의 공연장에서 장내 질서를 유지하고 연예인을 수행하는 일이었죠.”당시 파견된 신변 보호 요원 10여 명 중에서도 여성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그녀를 본 공연 기획 이벤트사 현장 담당자는 “왜 여자가 왔느냐”며 “여자는 필요 없으니 남성 요원으로 교체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결국 공연이 끝난 후 행사 담당하시던 분이 미안하다고, 고생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때 깨달았어요. 편견이 있더라도 결국 스스로 자신의 몫을 다하면 그 편견은 깨질 수 있다는 것을요.” 본격적인 경호원으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대학을 휴학했다. 1년 반의 휴학 기간에 캄보디아 훈센 총리 경호실에 경호 시범을 보이는가 하면,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수행, 할리우드 톱 스타인 톰 크루즈가 방한했을 때 경호 업무를 담당했으며 그 외 국내 경제인, 연예인, 정치인 등의 경호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경호 회사를 다니면서 다시 복학해 공부와 일을 병행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일과 학업을 병행하려다 보니 하루에 주야간 수업을 모두 수강하는 등 2~3일 동안에 학교 수업을 끝내고 그 나머지 시간은 모두 경호원으로서의 일에 매달려 살았죠.” 주말과 휴일도 모두 반납한 채 야근과 출장까지 하며 학교 공부와 경호원으로서의 일, 양쪽 모두에 최선을 다했다. 자다가도 호출을 받으면 뛰어나가야 했고 밤샘 근무는 셀 수도 없었다. 경호 업무를 하다 보면 온몸에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그렇지만 보디가드라는 자부심이 있어 견딜 수 있었어요.”다행히도 시간이 흐르면서 금녀의 구역이라고 여겨지던 경호 업계에도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돼 갔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와 함께 꼼꼼하게 업무를 추진하는 여성 경호원을 찾는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대학원 공부와 경호 프리랜서 생활을 지속하면서 창업 준비를 한 끝에 2003년 여성 경호 전문 기업 ‘퍼스트레이디’를 창업했다. 법인명 ‘퍼스트레이디(First Lady)’는 ‘영부인’을 뜻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각계각층의 ‘최상급 여성’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경호 업계의 최상급 여성 경호원들로 하여금 의뢰인을 영부인처럼 수행하고 의전(儀典)하겠다는 의미로 제가 직접 붙인 이름이에요.” 여군 출신에서 경호학과 졸업생, 체육 관련 전공자 및 각종 무술 유단자 등을 창업 초기 멤버로 포진했다.“여성 경호원이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연예인이나 정치인들만 경호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죠.”여성 기업인의 ‘비서와 기사를 겸한 경호’에서부터 스토커에게 시달리는 여성, 학교 폭력의 피해 학생, 가수들의 콘서트장, 모델 하우스 안전 요원, 일반 기업 행사 등 여성 경호원을 필요로 하는 현장이 많다는 얘기다. “특히 요즘은 유괴, 납치, 협박 등이 횡행하다 보니 우리를 찾는 분들이 더 많아졌죠.” 이 외에도 VIP 의전, 외국인 수행 및 통역, 출장 경호, 행사 및 이벤트 안전 관리, 시설 경비 등이 여성 경호원의 업무들 중 하나다.“이 때문에 우수한 요원 육성 및 확보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죠.” 그래서 (주)퍼스트레이디에서는 ISO 인증을 통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대학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훌륭한 예비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가 하면 자사 경호원들을 대상으로 정기 무술 교육과 함께 외국어와 컴퓨터 등의 기능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남성들을 선호하는 고객들을 위해 남성 경호원들로 구성된 ‘피닉스 경호단’을 출범시키고 인적 자원을 다양화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004년부터는 TV 홈쇼핑에 개인 경호 상품을 내놓으면서 경호를 특정 계층의 전유물에서 일반 상품으로 대중화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통신 판매 등록을 통한 쇼핑몰 판매, 경호 운전·비서·수행 업무를 진행하는 1인 3역의 경호 비서 파견, 일본 후지TV 방송과 함께한 일본 판로 개척 등 흔히 생각하는 ‘보디가드’의 역할을 뛰어넘은 다양한 성과를 이뤄냈다. 그런 다양한 노력들 덕에 현재 (주)퍼스트레이디는 경호 업계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아직 멀었어요. 경호원, 특히 여성 경호원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하거든요. 아직 제 도전은 끝나지 않았어요.” ‘성공은 도전하는 자의 미래에 달려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고은옥 대표는 이 때문에 오늘도 내일에 도전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여성 보디가드’에 대한 편견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다.김성주·자유기고가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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