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FTA 공세 관전법

올해 중에 여러차례 연쇄적으로 개최될 한·일 정상회의에서 일본 측은 우리나라와의 FTA 협상 재개를 강도 높게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5월 27일 한·중 정상회의에서 중국 정부가 그동안 진행된 양국 간 FTA 연구 및 정부 간 협의를 바탕으로 공식 협상을 요청할 것으로 보여 중국과 경쟁 의식이 높은 일본은 한·일 FTA 협상 재개에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지난 2004년 한·일 FTA 협상 중단의 원인을 제공했던 일본은 최근 몇 년 동안 한·일 FTA 협상 재개를 위한 논리 개발에 주력해 왔고 우리나라 오피니언 리더들을 중심으로 자국의 논리를 전파하고 있다. 즉, 한국 정부의 FTA 추진은 수출 증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산업 효율성을 제고하고 지역 전체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제제휴협정(EPA)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일본 측 주장을 그대로 들으면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의 상생 협력 및 공동체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들릴 수 있고 일본의 정책이 우리나라보다 ‘한 수’ 높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하지만 일본의 주장은 과거 1980년대 일본 학계가 주장했던 ‘날아가는(飛上) 기러기 산업 모형’의 재판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즉, 동아시아에서 산업 발전 수준이 가장 높은 일본이 기러기 편대의 맨 앞에 서고 싱가포르 한국 대만이 중간단계의 산업에,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은 저부가가치 산업에 특화하는 구조를 고착화하자는 구상이다.5월 21일 서울 트레이드타워에서 지식경제부 주최로 한·일 및 한·중 FTA에 대해 산업계의 입장을 논의하는 세미나가 개최됐다. 2004년에는 섬유, 석유화학 등의 산업이 한·일 FTA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이제 이들 산업도 일본과의 FTA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예외를 상당 부분 허용하는 ‘낮은 수준’의 협정을 체결하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협정 체결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설득력 있게 들렸다.우리나라가 미국과의 FTA 타결에 이어 유럽연합(EU)과의 협상 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어 FTA 역량이 크게 제고됐지만 일본과의 FTA에 대한 인센티브가 낮은 편이다. FTA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관세의 경우 일본은 전 세계적으로 1%대의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우리나라에 민감한 자동차와 전기전자 등에 대해 우리나라는 6~8%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그렇다면 일본 측이 요청하는 한·일 FTA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먼저 우리 정부가 일본과의 FTA에서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에 대해 입장이 정해져야 한다. 일본의 논리를 철저하게 분석해 우리 산업 및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정하고 일본 측과의 비공식 협의를 통해 FTA의 경제성을 확신할 수 있을 때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자국의 입장을 강조해 온 일본이 우리의 FTA 방안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우리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한·중 FTA 카드를 적절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의 FTA 검토는 단지 양국 간 FTA 검토를 넘어 한·일 FTA 추진과도 연계해 검토해야 한다.앞으로 잇달아 개최되는 한·일, 한·중 정상회의에서 최대 이슈는 FTA가 될 것이고 주변국들은 FTA 추진을 강하게 요청할 것이다. 쇠고기 파문에서 봤듯이 통상 문제는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실패하기 쉽다.국민 정서, 이해관계자, 정치권과의 소통을 통해 국내 추진 분위기를 먼저 조성하고 상대국과의 논의를 진전하는 것이 국론 분열을 방지하고 경제 이익을 확보하는 길이라는 것을 정책 결정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정인교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약력: 1961년생. 85년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95년 미 미시간주립대 경제학 박사. 96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2000년 동아시아비전그룹(EVAG) 사무국장. 2004년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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