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이냐 ‘분열’이냐…대지진 후폭풍 심각

기로에선 국가 운명

중국이 기로에 섰다. 세계적 문병 비평가 기 소르망은 베이징 올림픽을 생각하면 1936년 베를린 올림픽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떠오른다고 했다.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인정받은 베를린 올림픽처럼 공산당의 전제주의가 인정받을지, 아니면 민주화로 이어진 서울 올림픽처럼 민주주의의 시작이 될지는 서구인들의 손에 달렸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을 3개월여 앞두고 중국에서 터진 대지진 역시 중국을 새로운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지난 5월 12일 쓰촨성 원촨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8.0의 대지진은 외견상 중국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구심점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빈부 격차가 부각되고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중국 지도부의 골칫거리인 사회 분열을 부추길 수 있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미국 재산 조사 컨설팅 업체인 AIR월드와이드는 지진으로 발생한 사망자의 보험금과 붕괴 건물의 재건축 비용 등 경제적 손실 규모가 총 1400억 위안(21조 원)에 이를 것이라며 추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는 지난 1월 폭설 당시 21개 성의 농경지 등의 피해로 입었던 손실액 1111억 위안(15조5540억 원)을 넘어서는 수치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추정하고 있는 사망자 수는 5만 명이고 직접적인 피해자 수는 무려 1000만 명에 이른다. 완전히 붕괴된 가옥만도 540만 채에 이른다. 직접 피해를 본 지역도 면적이 6만5000㎢으로 한국 국토 면적인 9만9000㎢의 66%에 해당한다.하지만 중국의 사회 분열은 이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 사회 분열은 과거 중국 역사에서 왕조의 몰락으로 나타났다. 1949년 집권하면서 중국 대륙을 통일한 공산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사회 분열이다. 사회 분열은 특히 5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하며 세계 경제 성장 동력 역할을 해 온 중국의 성장은 물론 체제 안정에도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지진 참사 사태가 중국에 단결을 가져올지, 아니면 사회 불안의 도화선이 될지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중국에는 요즘 ‘집을 다시 짓자(重新家園)’란 신곡이 뜨고 있다. 장위 등 유명 가수 5명이 지진과 맞서 싸운 사람들을 위해 바친다며 지진 발생 이틀째인 5월 13일 이 노래를 만들었다. “우리는 한가족, 두려워하지 마세요, 뜨거운 손을 내밀어요, 사랑으로 재난을 녹여요”라며 단결을 강조하는 이 노래는 중국 국영 CCTV는 물론 시나닷컴 소후닷컴 등 인터넷 매체에도 울려 퍼지고 있다. 이 노래뿐만 아니다. “울지마, 원촨. 울지마, 아이야. 조국은 너희를 버리지 않는다. 생사를 함께하며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르길 기다리자.” ‘울지마, 원촨(汶川, 別哭)’의 한 구절이다. 비슷한 내용의 또 다른 노래 ‘친구여, 함께 이겨나가자(親人, 我們一起抗爭)’도 유행하고 있다.중국의 일반인은 물론 해외 화교들의 성금도 답지하고 헌혈을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는 장면은 CCTV를 통해 이들 노래와 함께 오버랩 되며 중국의 하나됨을 이끌고 있다. 특히 지진 피해 지역을 종횡무진 누비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모습은 중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연일 장식하고 있다. 지진 발생 사흘째인 5월 14일 진앙지 원촨현에 들어간 원 총리의 “당과 중앙은 여러분을 잊지 않는다”는 생생한 목소리는 CCTV의 전파를 타고 전 대륙에 퍼졌다. 원 총리가 재난 지역으로 향하는 특별기에 몸을 실은 것은 12일 오후 4시 40분(현지 시각). 원촨현에서 지진이 발생한 지 2시간 12분 만이었다. 원촨에서 가까운 청두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7시 10분. 66세의 총리는 다시 차를 타고 진앙지 인근 두장옌으로 가 밤 10시에 가랑비 속에서 무너진 병원 건물에 매몰된 사람들을 구조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했고 이런 장면은 시시각각 중국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총리뿐만 아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까지 현장으로 달려가고 시진핑 국가부주석과 리커창 정치국 상무위원 등 차세대 지도부들도 대거 현장에서 이재민들을 위로하는 장면이 TV 화면과 신문 지면을 크게 장식하고 있다. 5월 19∼21일을 애도의 날로 선포하고 올림픽 성화 봉송까지 일시 중단하면서 대륙의 하나 됨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하지만 한쪽에서는 ‘분열된 차이나’를 부추기는 모습도 감지된다. 낙후 지역에 집중된 날림 학교 공사를 비판하는가 하면 원 총리의 심각한 얼굴을 보는 게 짜증스럽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톈야라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왜 관공서는 멀쩡한데 학교만 그리 쉽게 무너졌나”,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몸을 더 중시하고 있다”는 등 비판이 글이 쏟아졌다. 도시화를 위해 필요한 기금의 일부가 호화스러운 관공서를 짓는데 전용됐다는 지적도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급기야 7000여 개 학교 건물 붕괴를 조사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인터넷에선 또 한 유명 운동선수가 기부하는데 사실은 빈손인 모습을 잡은 화면이 떠도는가 하면 폭설이 내린 1월 25일, 티베트 사태가 발생한 3월 14일, 지진 참사가 일어난 5월 12일 모두 각 숫자를 더하면 8이 나온다며 올림픽 개막 시점인 8월 8일 오후 8시와 연계하는 유언비어도 나돈다.중국 지도부가 언론 검열을 강화하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리창춘 정치국 상무위원이 5월 13일 4000여 개의 방송과 신문에 단합과 사회 안정에 기여하는 보도를 할 것을 긴급 지시한 것도 이 같은 비판적 시각이 자칫 분열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진앙지 원촨현에 구조대와 함께 방송 기자를 투입할 만큼 속보를 내보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유언비어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를 두고 “마오쩌둥 시대를 연상케 한다”며 “중국은 아직도 권력이 총과 펜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특히 이번 지진 피해가 낙후 지역에 집중된 데다 인플레 압력을 키울 것으로 우려되면서 중국 지도부는 단결이라는 과제를 놓고 부심하고 있다. 높은 인플레는 빈부 격차를 확대하기 때문이다. 이미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5%로 3개월 연속 8%대 고공행진을 벌이면서 올해 물가 목표치(4.8%)를 크게 웃돌고 있는 상황이다. 한화증권 조용찬 중국팀장은 “시설 복구를 위한 막대한 자금 방출과 항공 도로 마비로 인한 물류 차질로 물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 중국 정부는 피해 복구를 위해 700억 위안(10조50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창설하기로 했다. 5월 20일부터 적용한 지급준비율 0.5% 인상을 지진 피해가 심한 6개시의 은행들에는 적용하지 않는 등 통화 긴축 무풍지대로 인정하는 조치도 잇따라 취해지고 있다. 더욱이 지난 4월 총통화(M₂) 증가율이 16.9%를 기록, 시장 예상치(16.2%)는 물론 지난 3월(16.3%)보다 높게 나타나 통화 팽창 압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쓰촨성은 물가 상승의 최대 주범인 돼지고기의 중국 최대 산지인데다 서부지역의 곡창지대로 불릴 만큼 농산물이 풍부한 곳이라는 점에서 인플레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쌀 생산량은 중국 31개 성과 시 가운데 3위로 중국 전체의 10%를 차지한다. 하지만 지진 피해가 낙후된 서부의 거점지역에 집중되면서 사회 단합을 위해 야심차게 진행해 온 서부 대개발 계획의 차질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와 인근 충칭은 서부 대개발의 거점도시로 지난해 6월 도농 일체화를 위한 종합개혁시험구로 지정된 바 있다.1976년 2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탕산 대지진보다 강도와 범위가 더 크다고 원 총리가 인정한 중국의 대지진 재앙이 중국 지도부의 숙명적인 과제인 사회 단결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 주목된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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