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한파로 고객 ‘뚝’…‘허리띠 졸라매자’

도박의 메카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에도 불황의 한파가 불어 닥치고 있다. 도박은 전통적으로 불황에 강한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주택 경기 급랭과 유가 폭등의 협공에 흔들리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오랫동안 활황을 누렸던 도박 산업 경기가 보기 드물게 위축되고 있으며 라스베이거스 도시 전체가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라스베이거스의 중심지가 다운타운에서 지금의 스트립가로 옮겨온 1980년대 후반 이후 스트립가 매출이 감소한 것은 2001년 9·11사태 직후를 포함해 단 두 차례였다. 그러나 두 번 모두 짧은 홍역 정도로 지나갔다. 요즘은 라스베이거스가 도박뿐만 아니라 쇼핑 도시로 부상하면서 경기에 민감한 영향을 받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도박 산업이 라스베이거스 전체 매출의 58%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그 비중이 41%로 감소했다. ‘블랙잭’이나 ‘바카라’ 등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쇼핑 또는 근사한 외식을 위해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관광객들도 많아졌다는 얘기다.지난 4월 라이베이거스 전체의 도박 수입은 전년 대비 3.3% 감소했다. 90~95%의 숙박률을 자랑하던 호텔들도 빈방이 늘자 가격 인하에 나서고 있다. 한때 평균 숙박료가 135달러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최근엔 스트립가의 유명 호텔들 중에서도 100달러 이하의 방을 찾을 수가 있다. 호텔들은 이 같은 할인 혜택을 드러내고 광고하길 꺼리지만 스트립가의 가장 큰 호텔인 MGM미라지가 지역 신문들에 이 같은 이야기들을 흘리면서 업계에 ‘가격 전쟁’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최근 몇 년간 붐을 이뤘던 컨벤션 비즈니스도 상황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지난 1분기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회의 등 각종 행사의 참석자 수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7.1% 감소했다. 통상 컨벤션 참석자들은 일반 관광객보다 평균 2배 이상 돈을 쓰고 가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징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형 호텔·카지노 운영사 중 컨벤션 고객 유치에 가장 집중해 온 라스베이거스 샌즈코프는 1분기에 예상치 못했던 손실을 냈다. 샌즈코프가 가장 최근에 문을 연 ‘팔라조’호텔은 투숙률이 79%에 불과했다.이 같은 현상들은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카지노 업체들의 개발 바람 및 이에 따른 공급 과잉 우려와 맞물려 있다. 윈리조트는 윈라스베이거스 앙코르에 이어 22억 달러 규모의 호텔을 또 짓고 있다. MGM도 시티센터라는 약 30만㎡ 규모의 프로젝트에 92억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향후 4년간 라스베이거스엔 중국 베이징이 오는 8월 올림픽 때 제공할 호텔 객실 수의 약 3배에 달하는 4만 개 이상의 신규 객실이 생길 예정이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객실 수는 이미 미국 전체의 7% 에 달한다. 이 때문에 경기 둔화가 아니더라도 지난 20년간 라스베이거스가 누려온 호황이 지속되긴 힘들 것이란 예상들이 나오고 있다.일부 호텔들은 경영 여건이 악화되자 경비 절감에 나서고 있다. 벨라지오호텔과 맨달레이베이 리조트 등을 운영하고 있는 MGM은 400명의 중간 관리 직원들을 감축했다. 그러나 요즘은 씀씀이가 적은 고객들조차 최상의 서비스를 요구하기 때문에 비용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고객들의 정보를 수집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해외 고객 유치에 힘쓰는 방법 등으로 불황에 대처해 나가고 있다.일부 낙관론자들은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지금은 상황이 다소 어렵지만 경기가 나빠지고 달러 가치가 떨어질수록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미국 내 관광객 수도 늘 것이라고 주장한다. 해외에서 비싸게 휴가를 보내느니 라스베이거스로의 국내 여행을 택할 것이란 기대다. 그리고 ‘고래(whales)’라고 불리는 거액의 도박사들은 경제 상황과는 무관하게 라스베이거스를 찾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라스베이거스는 1990년대 초 대형 호텔들의 건설 바람이 불었을 때도 과잉 공급이 우려됐었다. 그러나 오히려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적어도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러한 법칙이 또 한 차례 현실화될지 관심거리다.박성완·한국경제 기자 ps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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