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북적북적’… IB시대 ‘핵’떠올라

지난 5월 대우증권은 투자은행(IB) 사업 전략 수립과 영업 지원을 담당하는 IB사업추진단을 신설하고 외국계 IB 출신 이건표 전무를 담당 임원(단장)으로 영입했다.대우증권의 외국계 출신 IB 담당 첫 임원인 이건표 전무는 서울대 경제학과, 와튼스쿨을 졸업하고 뱅커스트러스트컴퍼니(BTC), 리먼브러더스, 바클레이스캐피털, SG증권, 코메르츠방크 등 외국계 IB에서 20여 년간 트레이딩, 채권영업, 파생상품, 기업 금융 등을 맡아온 IB 전문가다.대우증권 관계자는 “외국계 금융 회사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이 전무의 영입으로 IB 사업 부문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외부에서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전문가를 적극 영입해 글로벌 IB로 도약하는 기간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이에 따라 이 전무는 취임과 동시에 대우증권의 IB 전략을 ‘동남아시아 시장 선점’에서 ‘범화교권 공략’으로 수정했다. 그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시장 선점’보다 ‘시장 확대’가 우선”이라며 “유동성 측면에서 홍콩 중국 대만 등 범화교권 국가가 동남아 국가보다 우위에 있다”고 강조했다.우리투자증권은 해외에 신설된 헤지 펀드를 올해 초 영입한 김중백 상무(해외시장운용센터장)에게 맡겼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 6월 싱가포르에 자본금 5000만 달러 규모의 IB센터 현지 법인을 세웠다.특히 IB센터와 함께 자기자본 1억 달러를 투자해 ‘우리앱솔루트파트너스’란 이름의 헤지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이를 총괄하는 김중백 상무는 1969년생으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와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글로벌마켓 아시아, 골드만삭스 재팬 등에서 일해 왔다.우리투자증권은 또 이 펀드의 채권 분야 운용을 위해 채권 전문가인 송근철 부장도 영입했다. 송 부장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JP모건, 도이치은행을 거쳤다. 모건스탠리 등에서 리서치를 담당했던 박승욱 차장, 골드만삭스 한국지점 출신 고형호 차장 역시 헤지 펀드 운용을 위해 영입한 해외파다.아울러 2005년부터 기관·리서치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박천웅 전무도 ‘해외파’ 인재다.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노트르담대 MBA를 졸업한 박 전무는 메릴린치 인베스트먼트 자산운용, 모건스탠리증권 상무를 거쳤다.삼성증권은 미국 뉴욕 현지에서 전문 인력 영입을 위한 안테나를 세워놓고 있다. 현지 법인에 스카우트 담당 인력도 파견된 상태다.성과도 나오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상품 전문가로 알려진 제롬 베키 차장을 영입한 데 이어 올 2월에는 권경혁 전무를 리스크관리 부문 최고책임자로 영입했다. 해외 법인에선 5~6명의 트레이더도 채용했다.권경혁 전무는 미국 알비언 칼리지와 시카고대 MBA를 졸업했으며 1984년 제너럴모터스 전략기획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산업계’ 출신이다. 하지만 1989년부터 자금부에서 12억 달러 규모의 머니마켓펀드(MMF) 운용과 유동성 위험 관리를 맡으며 리스크 관리 분야에 첫발을 디딘 후 1994년 메릴린치로 자리를 옮겨 자금 조달·운영·예산 관리 담당, 기업 리스크 관리 그룹 이사, 글로벌 유동성 및 리스크 관리 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낸 ‘리스크 관리’ 전문가다. 제롬 베키 차장은 스위스 UBS증권 근무 후 만국우편연합(Universal Postal Union) 금융 서비스 담당 등을 거쳐 지난 1월 상품 개발 파트에 해외 상품 전략 및 개발 담당 차장으로 영입됐다.이들 회사 외에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쟁쟁한 대형 증권사들 역시 해외파 인재에 대한 영입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김종원 이사를 국제본부 법인CM사업부 담당 임원으로 영입한데 이어 최근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 회사 출신의 관련 영업 인력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김종원 이사는 미국 브랜다이스대 졸업 후 메릴린치 인턴을 거쳐, JP모건 도이치뱅크 씨티그룹 리먼브러더스에서 14년간 한국 주식 전문가로 일해 왔다. 이후 3년간 리먼브러더스 코리아 세일즈 부문 대표를 지낸 뒤 지난 3월부터 미래에셋증권에서 재직 중이다.한국투자증권에서는 김범준 투자금융그룹 전무와 손석우 투자금융본부 전무가 해외파로 꼽힌다. 김범준 전무는 대우증권 4년차 만에 런던 현지법인 국제영업담당 이사로 발탁된 후, LG증권, 체이스맨해튼은행 런던·홍콩법인을 거쳐 JP모건 서울지점 상무를 지냈다. 이후 2005년부터 한국투자증권 IB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손석우 전무는 1988년 금성사(현 LG전자)에서 첫발을 내디뎌 동양증권 런던지점, 뱅커트러스트, 도이치뱅크 홍콩 등을 거쳤다.2007년 굿모닝신한증권에 영입된 정인석 채권 파생상품 총괄 상무는 채권 분야 전문가로, 1996년 크레디트스위스, 1998년 도이치뱅크 아시아 본부(싱가포르) 등을 거쳤다. 아울러 KB투자증권의 이민섭 IB본부장은 리먼브러더스에서 기업 금융 부문 총괄 책임자로 있으면서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킨 전문가이며 김명한 대표이사 역시 체이스맨해튼, 케미컬뱅크, 도이치뱅크 등에서 투자은행 업무를 담당해 왔다.최근 출범한 KTB투자증권도 골드만삭스 출신 호바트 옙스타인 대표를 영입한데 이어 IB 부문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외국계 출신 전문가 영입을 저울질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DBS캐피털에서 M&A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중국인을 중국 상하이사무소 이사로 영입하기로 했다.사실 그동안 증권가엔 해외에서 대학을 나오거나 MBA를 마친 인력이 끊임없이 수혈돼 왔다. 하지만 최근 2~3년간의 큰 트렌드는 해외 유명 금융사 출신들이 국내 금융사의 임원급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같은 트렌드의 원인으로 업계에선 몇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첫째,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간 국내 증권사는 브로커리지 위주의 영업을 해왔다. 하지만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둔 국내 증권사들은 글로벌 IB로 성장하기 위해 보다 선진화된 금융 기법을 통한 다양한 수익 창출의 필요성이 생겼다. 이를 위해 세계 시장의 한복판에서 선진 금융 기법을 몸소 실천해 온 노하우를 축적한 인재들을 영입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다.실제로 최근 영입된 대다수의 해외파 인재들은 국내 증권사들의 경험이 모자란 IB·리서치·리스크 관리·장외파생상품 설계 및 운용 등에 집중된다. 한 증권사 임원은 “또 금융감독원에서도 국내에 낯선 상품을 개발·출시할 때는 관련 경험자 1~2명을 사내에 두기를 권고한다”고 말했다.둘째, 해외 금융사들의 구조조정 바람이다. 금융 1번가로 불리는 뉴욕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감원 바람이 거세지면서 씨티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JP모건체이스 등이 인력 감원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했던 고급 인재를 ‘비교적 저렴하게’ 데려올 수 있다는 것.또 아직 세계 시장에서 ‘마이너리티’인 한국인에겐 글로벌 금융사에서 ‘유리벽’이 있다는 점도 이들의 발길을 고국으로 돌리게 하고 있다. 메릴린치에 근무하다 국내 증권사로 자리를 옮긴 한 임원은 “IB 분야는 능력이 최우선 되는 게 분명하다”며 “하지만 그 능력 중엔 인적 네트워크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 보스는 이탈리아인이었고 그가 영업하는 대부분의 회사도 이탈리아 계열 회사들이었다”고 귀띔했다.셋째, 그간 글로벌 금융사와 국내 금융사의 연봉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리서치 분야 인력보다 IB나 파생상품 관련 분야의 국내 증권사 진출이 늘고 있는 이유에는 ‘인센티브’ 제도도 한몫한다”고 말했다. 즉, 5년차 정도의 해외파라면 대부분 최소 1억~3억 원의 연봉을 보장하지만 IB 분야나 파생상품 관련 분야 인력의 경우 실적에 따라 연봉의 수십 배까지도 가능한 인센티브가 기다리고 있다. 이 분야 전문가는 능력만 있다면 해외건 국내건 간에 비슷한 수준의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반면 성과를 명확히 나타내기 어려운 리서치 분야의 경우 해외와 국내의 차이가 있는 편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홍콩에서 웬만한 애널리스트의 연봉 수준은 10억 원 정도”라며 “이 정도 보수는 국내에선 ‘특급 수준’”이라고 말했다.마지막으로 한국에는 보다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헤드헌터사인 할씨언 서치의 김선미 대표는 “이머징 시장임에도 탄탄한 산업적·경제적 기반을 갖춘 한국 금융시장은 해외 금융인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주목되고 있다”며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 뉴욕의 ‘노랑머리’ 외국인들도 대우 우리 미래 한국 삼성 등 대형 증권사로의 이직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물론 이 같은 외국계 출신 인력에 대한 시각은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다. 가중되는 인력난과 변화하는 환경, 글로벌화하는 경쟁 속에서 해외 유수의 IB 출신 인력의 수혈이 절실하기는 하지만 천문학적인 몸값 부담과 명성에 맞는 가시적 성과를 현실화하기에는 아직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도 많다는 지적이다.김범준 한국투자증권 투자금융그룹 그룹장(전무)은 “보다 많은 해외 인재 영입을 위해서 금융사 내의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무는 특히 “IB는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진정한 IB로 발돋움하려면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와 연구가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런던은 아시아와 유럽, 미주의 금융시장 모두를 포괄할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다. 이유는 세계 표준시가 영국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금융 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가 강력하며 실제로 이를 통해 최근의 성장을 이뤘다. 홍콩의 큰 장점은 낮은 세율이다. 또 외국인이 타국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모든 여건이 글로벌화돼 있다.”“한마디로 ‘시스템’이다. 웬만한 글로벌 금융사들은 적어도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쌓아올린 각종 시스템은 직원들이 어떠한 고민도 없이 자신의 직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소위 ‘잡무’가 전혀 없다. 또 직원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주거 교육까지 회사가 책임진다. 대신 직원들은 내 연봉의 10배를 버는 게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를 못하면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직장 내의 다양성을 서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 IB면 IB, 리서치면 리서치, 브로커리지면 브로커리지 등 각 직종의 업무적 특성과 이에 조직의 구성과 성과 보상 등에 대한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각자의 전문성에 대한 기회비용이 다른데 어떻게 모두가 같은 수준의 연봉을 받을 수 있겠는가. 물론 글로벌 금융사처럼 각 직원 들에 대한 투명하고 합리적인 성과 보상 시스템 마련이 선결 과제일 것이다.”“많은 경영자들이 IB라고하면 IPO와 M&A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IB 업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증권사가 M&A와 자문에만 집중한다면 KPMG, 딜로이트 같은 회계법인을 어떻게 따라잡겠는가.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이 M&A를 통해 수백억 원을 벌었다고 하면 그 뒤에는 다양한 파생상품 거래를 통한 몇 배 이상의 수익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바로 이 같은 분야에서 더욱 큰 경쟁력을 키울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신용연계증권(CLS)에 주목하고 있다.”“먼저 수학이나 금융공학에 대한 지식을 넓혀야 한다. 또 회계사, 변호사급의 회계·법률 지식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제너럴, 스페셜을 넘어 르네상스형 인물이 이 분야에 진출해야 한다. 20년 전 내가 일을 배우던 시기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후배들이 불쌍하다(웃음).”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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