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장에서 빛나는 가치주 펀드
이보다 안 좋을 순 없다. 경기 둔화, 인플레이션, 신용 위기 등 모든 악재들이 국내 주식시장을 괴롭히고 있다. 최근 1개월 사이 코스피지수가 9.7% 급락했고 2008년 초부터 시작됐던 조정도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주목받는 펀드가 있다. 바로 가치주 펀드다. 지난 7월 1일 기준으로 1개월 주식형 펀드 수익률 상위를 살펴보면 상위 10위까지 모두 가치주(또는 배당주) 펀드가 차지하고 있고 20위까지를 보더라도 17개의 가치주 펀드가 이름을 올려놓았다.가치주 펀드란 주가수익률(PER)과 주가순자산배율(PBR)이 낮거나, 배당을 많이 하는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즉, 기업의 내재 가치에 비해 저렴한 주식을 매수해 기업의 본래 가치에 맞는 수준까지 주가가 상승하면 매도해 수익을 올리는 펀드다. 가치주 펀드가 늘 각광받는 건 아니다. 2005년 가치주 펀드가 잠시 인기를 누리는 듯하더니 2006년 조정 장세에서는 해외 펀드, 특히 중국 펀드가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하는 통에 소외됐고 2007년 상승장에서는 성장주 펀드의 그늘에 가렸다. 그러던 중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채권 부실, 국제 유가 급등 등 외부 변수로 인해 국내 증시가 흔들리자 가치주 펀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크게 2가지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첫째, 주식시장이 약세일 때 가치주 펀드는 성장형 펀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인다. 성장형 펀드는 향후 기업 실적이 크게 개선될 전망을 보이는 주식에 투자하기 때문에 경기에 대한 주가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다. 반면, 가치주 펀드는 저평가된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하락장에서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둘째, 가치주 펀드는 짧은 기간 동안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에서 수익을 추구한다. 강세장에서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수익을 덜 낸다는 점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하지는 못했으나 꾸준한 수익률을 보이면서 최대한 위험을 회피해 안정된 수익률을 취하고자 했던 투자자들에게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아왔다. 그러다가 최근 과거와 달리 장기 투자에 대한 긍정적 생각을 가진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가치주 펀드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그렇다면 가치주 펀드는 얼마나 안정적일까. 이는 표준편차와 베타(β)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6개월 표준편차를 살펴보면 일반 주식형 펀드는 20.46%다. 즉, 현재 일반 주식형 펀드 6개월 수익률이 마이너스 12%이므로 최근 6개월 사이 약 마이너스 32%에서 플러스 8%의 움직임을 보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가치주 펀드 중 설정액 규모 100억 원 이상 펀드 35개의 평균 표준편차는 16.3%로,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무려 4%나 위험이 낮다.벤치마크(예: KOSPI, S&P500) 상승률과 펀드 수익률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지표인 베타를 비교해 보자. 베타란 펀드 수익률이 시장 상황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베타가 1이면 펀드 수익률이 지수 상승률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뜻이고 1보다 크면 시장 수익률을 상회한다는 의미다. 언뜻 생각해 보면 1보다 크면 무조건 좋은 게 아닌가라는 오해를 할 수도 있다.물론 베타가 클 경우 증시가 상승할 때는 초과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처럼 조정을 보이는 약세장에서는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일반 주식형 펀드의 1년 평균 베타는 1.03으로 최근의 시장 상황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하락 폭이 커졌으나 35개의 가치주 펀드의 평균 베타는 0.85로 시장 상황에 흔들림이 적었다.배당주 펀드는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하는 가치주 펀드 중 배당을 좀 더 고려하는 펀드다. 따라서 가치주 펀드의 특수한 형태로 생각하면 된다. 배당주 펀드란 말 그대로 고배당 기업(S-Oil, SK 등)에 투자하는 펀드다. 배당수익률이 과거보다 높아짐에 따라 안정적이고 높은 배당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요즘처럼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배당주 펀드는 배당 수익률뿐만 아니라 주가 상승 시 그에 따른 시세 차익을 통한 수익률도 기대할 수 있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펀드임에 분명하다.보통 기업들이 연말에 배당하므로 배당형 펀드의 자금 유입은 상반기보다 하반기, 특히 10월과 11월에 집중된다. 2007년에도 11월에 6000억 원의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다. 이러한 자금은 대부분 단기 배당 수익을 노린 투자 자금이다. 12월 배당락으로 인해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1월 효과(연초 낙관적 기대로 인한 주가 상승 현상)로 인한 주가 상승으로 하락을 만회하면서 고스란히 배당을 받고 3개월 안에 환매하겠다는 단기 전략 추구 자금인 것이다.실제로 2007년 1월부터 4월까지 배당형 펀드 자금은 순유출 됐고 2008년도 역시 4월과 5월 자금이 유출됐다. 그러나 배당을 노린 단기 펀드 투자 전략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최근 3년 사이 기대했던 1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투자자가 원하는 수준의 단기 수익을 얻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가치주 펀드는 인내심을 가지고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한다. 주가가 낮게 형성된 주식을 매수, 적정 가치에 도달했을 때 매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펀드이므로 시간이 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국밸류10년투자주식’이라는 펀드가 있다. 이 펀드는 정말 펀드를 10년 이상 가져갈 투자자에게만 팔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처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목표로 가치주 펀드에 투자해야 한다.자신의 투자 목적을 명확히 세우고 그에 부합하는 가치주 펀드에 투자해야 한다. 가치주 펀드의 범위는 솔직히 명확하지 않다. 삼성전자나 POSCO는 운용사나 펀드매니저의 운용 철학에 따라 성장주가 될 수도 있고 가치주로 구분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가치주 펀드들의 편입 종목은 많이 다르다. 따라서 가치주 펀드 투자자들은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본인의 투자 목적에 부합하는 종목들을 편입하고 있는지 운용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2008년 들어서 주식형 펀드는 물론 가치주 펀드 역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가치주 펀드를 포함한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기를 망설일 수 있지만 지금은 저가 분할 펀드 매수 전략을 취해야 할 시기다. 하반기 후반으로 갈수록 경기 방향과 기업 이익 성장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강화되면서 전고점 돌파를 시도하는 전약후강의 흐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플레이션이라는 악령이 경기 및 기업 이익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인플레 압력도 서서히 완화될 것으로 보여 현재 시점이 펀드를 분할 매수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된다.안정균·SK증권 펀드 애널리스트 jkahn@sk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