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좋고 값싸고 …‘스타벅스는 Go’

대구 토종 커피 전문점의 ‘반란’

얼마 전, 출장차 오랜만에 대구를 찾은 직장인 오민영 씨는 최고 번화가인 동성로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대구에 사는 친구를 만난 곳은 ‘다빈치’라는 커피 전문점. 처음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서울의 여느 대형 커피 전문점과 다르지 않은 세련된 인테리어와 젊은 고객들, 그리고 ‘착한’ 커피 가격이었다.테이크아웃한 커피를 손에 들고 동성로와 공평동 일대를 걸어 다니면서 오 씨는 다시 한 번 눈이 둥그레졌다. ‘슬립레스인시애틀(이하 시애틀커피)’, ‘커피명가’, ‘핸즈커피’, ‘안 에스프레소’ 등 생소한 이름의 커피 전문점들이 스타벅스, 커피빈, 엔젤리너스 등 내로라하는 대형 커피 전문점들 사이에 ‘쫙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들 점포를 찾는 고객 수가 다국적·대기업 계열 커피 전문점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오 씨처럼 오랜만에 대구를 찾는 이들은 유달리 많은 커피 전문점에 고개를 갸웃거리곤 한다.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 브랜드와 생소한 브랜드가 뒤섞인 대구 중심가는 ‘커피 전쟁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전국의 커피 전문점 브랜드가 모여 자존심을 건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전쟁은 대구에서 태동한 토종 커피 브랜드들이 점화했다. 최근 1~2년 사이 저마다 ‘내공’을 갖춘 업체들이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점포 수를 늘리면서 대구가 난데없는 ‘커피의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에 따라 탄탄한 브랜드 파워와 자금력을 자랑하는 대형 브랜드들이 토종 업체들 때문에 고전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국 대도시 중심 상권을 휘어잡는 대형 커피 브랜드들이 유독 대구에서만큼은 체면을 구기고 있다는 이야기다.현재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신생 커피 브랜드는 다빈치를 비롯해 모두 5개 업체가 손꼽힌다. 모두 대구에서 태어난 순수 토종 브랜드로, 대구 지역의 매장 수를 모두 합하면 120개가 넘는다. 이는 대구지역 전체 커피 전문점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비율이다. 스타벅스, 엔젤리너스 등이 6~7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숫자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셈이다.대구 토종 커피 전문점은 대구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주요 상권은 물론 신흥 주택가, 대학, 병원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에나 가맹점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다빈치커피는 지난 2000년 대구 공평동에 직영점을 내고 2002년부터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해 현재 110개 가맹점을 확보하고 있다. 이 가운데 40개 가맹점이 대구 지역에 있다. 2년 전에는 서울 경기권에 진출해 이미 서초동과 홍대, 인천 구월동 등에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시애틀커피는 1996년 첫 커피 전문점을 내고 2004년부터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전국에 76개 가맹점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4개가 대구 지역에 있다.규모로 압도하는 두 업체에 비하면 커피명가(8개 매장)와 핸즈커피(11개 매장)는 ‘마니아’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두 곳 모두 핸드 드립 커피(바리스타가 주전자로 물을 부어 우려내는 커피)를 전문으로 한다. 특히 커피명가는 1990년 첫 오픈해 20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대구의 명물로 유명하다.이들 커피 전문점들이 인기를 끄는 요인은 ‘좋은 품질, 저렴한 가격, 세련된 서비스’로 요약된다. 우선 품질. 커피 전문가를 자처하는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커피 콩 수입에 나서고 로스팅을 책임진다. 다빈치 정상형 사장은 “자체 공장에서 로스팅하는 원두의 유통 기한을 국내 최단 시간인 10일로 제한하고 있다”면서 “남미 유럽 등지의 원두 수입처를 직접 개척하는 등 품질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인터뷰를 한 날에도 원두 수입을 위해 브라질로 출장을 떠났다.명인이 직접 만드는 커피도 있다. 커피명가는 현재 방영 중인 커피 CF에 출연한 ‘원조 바리스타’ 안명규 사장이 선택한 우량 원두를 사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커피명인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이라는 프리미엄이 대단하다는 평이다.유난히 대구에서 토종 커피 브랜드가 태동한 이유는 이런 특징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형 커피 전문점이 지방 출점을 시작하기 전부터 형성된 에스프레소 문화가 토종 브랜드의 성장을 도왔다는 것이다. 정상형 사장은 “스타벅스 출점 전에 대구 사람들의 입맛을 에스프레소로 단련한 게 성장의 발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두 번째 요인은 저렴한 가격에 있다. 높은 품질에 비해 가격은 기존 커피 전문점보다 30~40% 싸다. 가장 많이 팔리는 카페라테 가격이 2500원 안팎이다. ‘밥값보다 비싼 커피 값’에 혀를 내두른 경험이 있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크게 어필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쿠폰 제도도 후하다. 다빈치 등은 9잔 마시면 10잔째를 무료로 제공, 다른 업체보다 1잔을 ‘절약’하게 해준다.이런 전략은 수도권에 비해 낮은 부동산 가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중심 상권이 아닌 곳에서도 낮은 가격으로 영업을 하기 위해선 부동산 관련 지출 비중이 적어야 하는 만큼 서울 수도권에 비해 조건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대형 업체가 중심 상권 위주로 출점하는 반면 중소 토종 브랜드는 대구지역 어디든 누빌 수 있다는 것도 확연히 다른 점이다.세 번째 요인은 나무랄 데 없는 서비스. 다빈치, 시애틀 등은 스타벅스식 테이크아웃 매장을 운영하면서 좀 더 안락한 서비스를 위한 331㎡(옛 100평) 안팎의 대형 매장 출점에 나서고 있다. 핸즈커피는 아늑한 인테리어에 종업원이 자리로 와 주문을 받는 ‘옛날식 다방’ 서비스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그러나 대구에서 벌어지는 커피 전쟁을 마냥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만 없다는 게 창업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칫 토종 업체들끼리 과당경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구에서 태동한 토종 업체들은 이미 전국을 무대로 가맹점을 확장하기 시작해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토종 업체들이 전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만큼 철저한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요구된다”면서 “가맹 희망자 입장에선 본사의 영업 지역 보장, 수익 예상 없이 가맹점을 개설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말했다.요즘 트렌디한 직장 여성들 사이에 ‘번(BUN)’이 유행이다. 커피크림, 버터 등이 들어 있는 고소한 맛의 빵인 번은 말레이시아가 고향. 지난해 3월 서울 이대 앞에 직영점을 설립한 이후 1년 만에 전국에 69개 점포를 확보, 바람 몰이를 하고 있다.로티보이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번과 함께 질 좋은 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로티보이가 선보이는 커피는 100% 최고급 아라비카종으로, 스타벅스에 생두를 납품하는 브라질 친환경 커피 회사인 이파네마로부터 직수입한 것이다. 그런데도 커피류 가격은 2000~3500원선으로 기존 대형 커피 전문점보다 30%가량 낮은 수준이다.로티보이 상륙 이후 비슷한 콘셉트의 프랜차이즈 업체가 속속 등장하면서 중저가 커피가 확산되고 있다. ‘좋은 품질, 낮은 가격’ 혁명이 시작된 셈이다. 이미 파파로티, 로티맘 등이 ‘번+커피’를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번+커피는 당분간 새로운 아이템으로 주목받을 것”이라면서 “스타벅스처럼 새로운 커피 문화를 만들어낸다면 롱런 아이템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라고 밝혔다.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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