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 잇따라…한목소리 절실

정부 내 엇박자

이명박 정부의 경제팀이 조화로운 화음보다는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리지 못해 생기는 거친 마찰음을 토해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책임자들마다 하는 얘기가 다르다 보니 각 경제 주체들로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정부와 여당의 말이 다르고 정부 내에서도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에서 엇갈린 발언이 하루 이틀 차이를 두고 터져 나오기 일쑤다. 범위를 더 넓혀보면 통화 정책에 관한 한 사실상 정부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은행과 재정부 사이의 금리와 환율에 대한 견해차는 따로 옮길 필요도 없을 정도로 널리 드러나 있다. 게다가 국책연구기관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해 재정부의 거시경제팀과 상당히 차이 나는 진단과 처방을 내놓기도 했다.재정 환율 금리 등의 정책 운용 방향은 물론이고 ‘성장이 우선이냐 물가 잡는 게 먼저냐’는 기본적인 경제 철학에서조차 정부의 경제 정책 수장들이 서로 조율되지 않은 돌출 발언을 쏟아 내고 그때마다 시장은 출렁거린다. 각자 기대고 있는 논리와 널리 펴고 싶은 소신이 있겠지만 지금처럼 너무 엇갈려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일관성을 잃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 참여자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정부와 여당은 추가경정예산 편성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웠다. 재정부는 하강 국면에 진입한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추경을 통해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한나라당은 인위적인 경기 부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 의장은 “지금 경제 상황이 재정 지출을 더 늘려야 할 만큼 위기라고 보지 않는다”고 발언해, 고용 불안 등으로 체감 경기 악화 가능성을 집중 제기하며 ‘추경 애드벌룬’을 띄우던 정부를 무안하게 만들기도 했다.청와대 경제팀과 재정부의 주장이 엇갈렸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강만수 장관이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으로 제시한 ‘메가뱅크(초대형 은행)안(案)’에 관한 불협화음이다. 당시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산은 단독 민영화’를 주장했고, 곽승준 수석이 전 위원장을 지원해 강 장관과 대립각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치열한 인수·합병(M&A)전을 치르고 있는 금융권으로서는 산업은행과 그 자회사인 대우증권이 언제쯤 어떤 크기의 매물로 나오는지가 현재의 전략적 판단에 굉장히 중요한데 정부 내에서 하나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금리를 놓고 재정부와 한은이 벌이고 있는 줄다리기도 시장 참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강만수 장관은 취임 이후 줄곧 ‘물가보다는 성장’에 치중하고 ‘경상수지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환율 상승은 용인한다’는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던지고 있다. 강 장관의 이 같은 태도가 시장의 원·달러 환율 상승의 촉발점이 돼 실제 환율은 1050원선까지 뛰어올랐다. 금리도 마찬가지다.성장률에 신경을 써야 하는 재정부는 한은에 대한 금리 인하 압박도 불사하고 있다. 최중경 재정부 1차관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차가 2.75%포인트까지 벌어졌는데 내외 금리 차가 크면 외국 자금이 급격히 흘러 들어오고 나가는 시장의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가 금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한동안 금기시됐지만 최근 들어 ‘선을 넘는’ 발언이 종종 나오고 있는 것. 이성태 한은 총재는 반대로 그동안 “한은의 최고 목표는 물가 안정”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은 천장을 한번 테스트해 본 것”이라는 등의 발언으로 강 장관과 은근히 맞서고 있어 정책 금리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오리무중인 형편이다.정부 내에서, 그리고 정부와 여당 사이에 경제 정책에 관한 철학 차가 이처럼 수시로 노출됨에 따라 앞으로 경제 형편이 점점 더 어려워질 텐데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확산되고 있다. 사실상의 경제팀장인 강 장관에게 정책의 주도권을 주고 김중수 경제수석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전광우 금융위원장 이 총재 등 청와대 비서진과 또 다른 경제 관료들이 적극 협조해 통일성 있고 일관된 정부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차기현 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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