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커도 두뇌는 ‘빈약’…기업 ‘골치’

만성화된 고급 인재 부족

고급 인력 부족이 주식회사 중국의 고성장을 위협하고 있다. 경제 고성장에 따라 경영자 조종사 회계사 변호사 의사 엔지니어 등 고급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교육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인재난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중국민항총국은 지난 4월 18일 둥팡항공의 2개 항공노선을 취소하고 150만 위안(약 2억1000만 원)의 벌금 처분을 내렸다. 지난 4월 1일 둥팡항공 조종사 11명이 임금에 불만을 품고 1000명의 승객을 태운 항공기들을 회항시킨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기 때문이다. 앞서 3월 중순 상하이항공과 둥싱항공의 조종사 40명과 11명은 각각 집단 병가를 냈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는 항공 업계의 조종사 난을 보여준다고 국영 CCTV가 최근 보도했다.중국 조종사들의 월평균 급여는 대졸 초임의 10배 이상인 3만5000위안(약 490만 원)이지만 신생 항공사들이 2배 이상을 주겠다며 스카우트를 벌이고 있는 통에 기존 항공 업계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게다가 앞으로가 더 문제다. 에어버스는 최근 “오는 2020년까지 중국에 추가로 필요한 여객기가 2800여 기에 이른다”고 내다봤다. 소득수준 향상으로 항공기 이용객이 늘어나는 것도 항공기 수요가 급증하는 이유 중 하나다. 중국에는 50년 전에 생긴 중국민용항공비행학원이 조종사를 양성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조종사 양성을 위해 캐나다 호주 스페인에 연수를 보내고 있다. 특히 일부 항공사는 브라질 등으로부터 외국인 조종사를 채용하고 있지만 수요를 맞추기에는 태부족인 상태다.중국에는 현재 1200여 기의 여객기가 있고 조종사는 1만2000명에 달한다. 그러나 조종사가 부족해 대부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민항총국은 현재 5000명의 조종사가 모자라고 2010년까지는 6000명의 조종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조종사뿐만 아니다. 기업의 경영자급 인력 부족은 중국 진출 기업들의 최대 고민으로 떠올랐다. 중국에 있는 3개의 미국 기업인 단체가 현지에 진출한 324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7%가 규제 관료주의 불법복제보다 고급 인력 확보를 가장 큰 경영 문제로 꼽았다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지난해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니트(EIU)가 아시아에 있는 기업을 대로 한 조사에서도 중국에 있는 기업들의 최대 고민은 인재 부족으로 나타났다. 임금 상승과 인재 이직도 주요 고민거리로 꼽혔다. EIU는 특히 일반 노동자보다 경영자급 인재 부족이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금융 인재 부족도 심각하다. 중국에서 지난해 국부 펀드인 중국투자공사가 출범하면서 월가에 있던 중국인 금융맨들 일부가 귀국했지만 중국의 금융 인재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6년 말 은행업이 완전 개방된 중국에선 외국은행들이 법인 전환을 하면서 본격 확장에 따른 대대적인 인력 확충에 나서고 있다. 중국 은행들에 인재 단속 비상이 걸린 이유다.중국의 인재 부족 현상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중국에서 인재 부족에 면역력을 가진 업종은 없다고 지적했다. 인재난으로 중국의 정보기술(IT) 전문가 엔지니어 등 전문 인력의 급여 수준이 5년 내 서구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글로벌 경영 컨설팅 업체인 헤이그룹은 “중국에서 경영자급 인력의 임금이 급격히 오르는 버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에서도 스톡옵션(주식 매수 선택권)과 성과급 등으로 수십억 원대의 거액 연봉을 받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핑안보험의 마밍저 회장은 지난해 보너스를 포함해 총 6610만 위안(약 92억5400만 원)을 받았다. 중국 기업 CEO 중 가장 많은 액수다. 이 가운데 보너스는 4132만 위안(57억8000만 원)에 달한다. 핑안보험은 9명의 고위 임원에게도 각각 14억 원 이상을 줬다. 핑안보험은 지난해 순이익이 1920억 위안(26조8800억 원)으로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나자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듬뿍 줬다. 작년 주식시장 활황으로 증권사 사장들의 연봉도 큰 폭으로 올랐다. 디이상하이투자의 라오우안 회장이 2210만 위안(30억9000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중국해양석유공사 푸청위 회장의 작년 연봉은 다른 석유회사 CEO 평균보다 10배 이상 많은 1010만 위안(14억1000만 원)에 달했다. 인터넷 업체인 알리바바닷컴의 웨이저 사장과 텐센트홀딩스의 라오치팅 사장은 작년에 보너스로만 각각 3250만 위안(45억5000만 원)어치와 1536만 위안(21억5000만 원)어치의 주식을 지급 받았다. 이 때문에 중국 근로자의 평균 연봉이 1만6000위안 수준에 머무르는 것에 비해 국영기업 총수 등의 임금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중국의 인재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는 낙후된 교육 시스템이 꼽힌다. 맥킨지에 따르면 중국의 대졸자는 연간 310만 명으로 미국(130만 명)의 두 배를 크게 웃돌지만 다국적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재는 졸업생의 10%도 안 된다. 박사 배출 규모도 지난해 미국을 앞질렀지만 질은 아직도 크게 처진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작년에 배출한 박사 수가 5만여 명으로 미국에 비해 많은 것으로 추정됐다. 2006년에는 중국의 박사 배출 수가 4만9000명으로 미국의 5만1000명에 비해 다소 적었다.국무원 학위판공실 양위량 주임은 “중국은 박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대학과 기관의 수가 310개로 미국의 253개를 앞섰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도교수 1명이 10명의 박사학위 과정 준비생을 지도하고 있고 석사의 경우 지도교수 1명이 수십 명의 대학원생의 논문을 지도하고 있어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염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인재 부족은 중국 진출 다국적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중국 기업에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인재 양성을 국가 과제로 적극 추진하고 있다. 세계 100위권 내의 대학이나 연구소의 석학 1000여 명을 초빙,중국 내 상위 100위권 대학에 10명씩 배치해 세계 최고의 연구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골자의 ‘111계획’을 세워 2006년부터 시행해 오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해외 저명학자들에게 주택과 의료 서비스는 물론 여비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상하이의 쯔주원구처럼 산업단지 인근에 대학들을 한곳에 밀집시킨 대학촌을 만들어 산학 연계를 유도하기도 한다.다국적기업들은 현지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자체적으로 인재 양성에 나서기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40여 개의 중국 대학과 연구소에 연계한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MS는 지난 2002년 중국 교육부와 공동으로 시작했다. MS는 최근 베이징에서 2010년까지 2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세울 R&D센터 기공식을 가졌다.이 R&D센터는 미국 이외 지역에 설립된 MS R&D센터 중 최대 규모로, 이에 따라 MS의 중국 내 R&D 인력은 현재 1500명에서 3000명으로 두 배 늘어나게 된다.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에 세워질 새 R&D센터는 중국 시장에 적합한 IT 개발에 주력한다. 중관춘은 중국에서 대학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세계 최대 휴대전화 업체인 노키아도 전 세계에서 팔고 있는 휴대전화의 절반 이상을 중관춘에 있는 R&D센터에서 개발하고 있다.중국 진출 기업들도 이젠 인재 경영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