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공포 느낄때 탐욕스러워야 ‘성공’

다시보는 버핏의 투자 철학

워런 버핏은 세계 최고 부자다. 620억 달러의 재산으로 빌 게이츠를 올해 제쳤다. 그에게 붙어 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투자의 귀재’라고도 하고 ‘오마하의 현인’으로도 불린다. 그런 버핏은 해마다 5월 초면 세계 투자자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매는 한판 축제를 벌인다. 다름 아닌 그가 운영하는 벅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다.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3일 열린 올 주총에는 세계 40여 국에서 3만1000여 명의 주주가 참석했다. 27년 전 처음 시작한 주총에 단 12명이 참석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지난 2005년 2만 명을 넘어선 뒤 3년 만에 3만 명을 돌파했으니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주주가 주총에 참석할지 벌써부터 관심이다.이들이 비싼 돈을 들여가면 주총장을 찾는 큰 동인은 역시 버핏이다. 버핏을 보는 것만으로, 버핏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즐겁다는 이유에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버핏의 신도들’이다. 그만큼 버핏은 사람을 끌어 들이는 마력을 지녔다.버핏은 “월가에서 최악의 신용 위기는 지나갔다”고 진단했다. 지난 3월 베어스턴스 사태를 계기로 월가에 팽배했던 금융 위기는 고비를 넘겼다는 것. 버핏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발 빠르게 베어스턴스 사태를 처리함으로써 위기가 다른 금융회사로 급속히 파급되는 걸 막을 수 있었다”고 높게 평가했다.그렇지만 버핏은 “현재 미 경기는 분명한 침체 상태”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3개월, 6개월, 1년 전의 씀씀이와 현재의 씀씀이가 분명 달라졌다”며 “이런 체감적인 변화를 보면 현재 사람들이 느끼는 경제는 침체가 맞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인구가 해마다 1%가량씩 증가하는데 1분기 성장률이 0.6%라는 것은 바로 침체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버핏은 이에 따라 “개인들의 모기지 부담 등 고통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벌써 몇 년 전부터 “달러화 시대는 갔다”고 외치던 버핏은 달러화에 대한 약세 주장도 지속했다. 그는 “미 경제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 10년 동안 달러화 약세는 계속될 것”이라며 “미국 이외의 매출이 많은 기업 등이 투자 유망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원화 등 아시아 통화는 앞으로 달러화나 유로화에 대해 절상될 것으로 내다봤다.한국 주식 투자로 톡톡한 재미를 본 버핏의 한국 증시 사랑은 여전했다. 버핏은 “적은 돈으로 투자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주주의 질문을 받고 서슴없이 한국 투자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몇 년 전 기업 가치에 비해 아주 값싼 한국 주식을 발견했는데 기업 규모가 작아 벅셔해서웨이 규정상 많이 투자하지 못해 너무나 아쉽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이어 “중소 규모 주식(small stock)에 엄청난 기회가 널려 있다”고 말해 앞으로도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가 유망함을 시사했다. 벅셔해서웨이는 포스코의 지분 4%를 보유하고 있다. 버핏은 개인 돈으로 20여 개 한국 기업에 투자했었다.한국 증시에 대한 낙관론은 기자 간담회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증시는 평생 동안 봤던 시장 중 가장 값이 싼 시장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한국 증시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 중 하나”라며 “세계 25대 시장에 각각 투자할 경우 한국 증시의 투자수익률은 상위 50%에 들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또 미 금융주를 설명하면서 “미 금융주를 사느니 한국 주식을 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작년 주총 이후 한국 주식을 추가로 샀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벅셔해서웨이가 투자하려면 시가총액이 100억 달러를 넘어야 하는데 한국엔 이런 종목이 많지 않다”며 “아직은…”이라고 답해 추가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음을 시사했다.자리를 함께한 찰스 멍거 부회장은 “현재 한국 증시가 고평가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엄청난 실수를 하는 꼴”이라며 “작년에도 개인적으로 한국 주식을 추가로 매입했다”고 소개했다.버핏은 투자 전략에 대해서도 확고한 원칙을 들려줬다. 핵심은 특유의 역발상 투자. 그는 “작년 채권 재보증업에 진출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이용한 경우”라며 “아무리 어려운 위기가 와도 끈질기게 파고들면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대부분 시장 참가자들이 공포를 느낄 때는 탐욕을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탐욕적일 때는 공포감을 가져야 한다”며 “지금 상황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덧붙였다.포트폴리오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초보 투자자는 분산 투자가 원칙이지만 프로 투자자는 과감한 베팅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처음으로 100만 달러를 투자하는 초보 투자자라면 수수료가 적게 드는 인덱스 펀드와 분산 투자가 적절하다”며 그렇지만 “프로 투자자는 기회다 싶으면 전 자산의 75%를 투자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 기회는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만큼 판단이 빨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5분 안에 결정하지 못하면 5개월 후에도 결정하지 못한다”는 말로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그렇지만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기회 포착은 힘든 법. 버핏은 “매일 재무제표를 읽는 게 즐거움”이라며 항상 배우고 공부하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주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며 기업 및 기업이 속한 산업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투자 대상을 고르는 잣대로 “장기간 연평균 10%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으면 아주 훌륭하다”며 투자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버핏이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는 어린이 교육이다. 벅셔해서웨이 주총에는 어린이 주주들이 많이 참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 주총에서도 80명의 질문자 중 4명이 10대 이하의 어린이 주주들이었다. 어린이 주주들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나” “프로 야구단인 시카고컵스를 사는 게 어떠냐”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이에 대해 버핏은 습관과 부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릴 때부터 날마다 신문을 읽다 보면 경제에 눈이 트이고 자기가 어떤 분야에 흥미를 느끼는지를 발견하게 된다”며 “흥미 있는 분야를 찾아내면 더 배우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일찍 찾아내는 것”이라며 “자신은 다행히 좋아하는 현재의 일을 일찍 찾아냈으며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버핏은 또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며 “어린이는 부모를 따라하며 배우게 마련인 만큼 자녀들이 좋은 자산 관리 기법을 갖도록 부모들이 말보다는 행동으로 솔선수범해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버핏이 운영하는 벅셔해서웨이는 76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대부분 지분을 100% 소유한 회사다. 종업원은 23만 명이고 작년 매출액도 2731억 달러에 달했다. 보험사 신발회사 철도회사 캔디회사 건설회사 등 없는 게 없다. 완전 문어발이다.자회사 대부분은 실적이 좋다. 작년 순이익은 132억 달러로 전년보다 20%나 늘었다. 물론 특유의 변별력으로 좋은 기업을 사들인 것이 비결이다. 그렇지만 이런 그룹을 직접 이끌고 있는 최고경영자(CEO) 버핏의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버핏은 경영의 원칙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비결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그는 “돈보다는 일에 대한 열정(passion)이 있는 사람을 고른다”며 “그들의 눈에서 열정을 읽고 그들이 열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밝혔다. 이어 “이들에게 자회사 경영을 맡기고 구체적 경영 목표를 주거나 경영 실적을 보고하도록 하지 않는다”며 “이들에게 진정한 파트너 의식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하영춘·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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