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육 ‘일석이조’ 박물관은 살아있다

산업화의 역사가 긴 나라들은 대부분 유명한 산업 박물관을 갖고 있다. 특히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은 산업화의 유적들을 단순히 보존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이를 새로운 문화유산, 인기 있는 관광 자원으로 되살려 내고 있다. 반면 그동안 국내에서는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꿈과 눈물이 깃든 산업화의 흔적들이 파괴되거나 폐허 속에 방치돼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크고 작은 산업박물관들이 문을 열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야 과거를 돌아볼 만큼의 여유를 갖게 된 셈이다.◇= 농협중앙회가 운영하는 농업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농업사 전문 박물관이다. 지난 1987년 처음 문을 열었고 2005년 현대적 시설로 신축, 개관했다. 서울 시내 중심지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비교적 최근 신축해 체험 위주로 입체적으로 잘 꾸며져 있다. 전체 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줄었지만 최근 국제 농산물 가격 폭등에서 보면 것처럼 농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수입 농산물과 국산 농산물을 구별하는 체험 코너와 농축산물 생산 이력 추적 시스템 체험 코너가 특히 인기가 있다. 박물관 측은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손을 잡고 찾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한다.농촌에서 누에치기도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40대 이상은 아직도 어린 시절 뽕잎을 따 누에에 먹이던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충북 청원군에 있는 한국잠사박물관에 가면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은 인공 사육실에서 키운 누에를 볼 수 있지만 5월 27일~6월 20일 사이에 가면 누에 생태 학습과 오디 따기 체험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고치 인형 만들기, 실뽑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물레로 누에고치에서 직접 실을 뽑아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잠업진흥원 내에 있으며 경부고속도로 청주 인터테인지에서 5분 거리다.경제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유통과 물류다. 신세계 한국상업사박물관에 가면 우리나라의 상업 발달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소와 말이 끌었던 달구지의 원형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달구지를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원형을 갖춘 완전품을 찾기 힘든 상태다. 세계 최초로 상용된 복식부기법인 송도사개치부법으로 작성된 장부도 자랑거리다. 어린이들에게는 5일장 모형과 벽란도 매직 비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제시대 종로에 있던 점포에 내걸렸던 재미있는 선전 문구가 적힌 간판도 눈길을 끈다. 안성 미리내 성지가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삼성화재 교통박물관은 전 세계 자동차들을 모아 놓은 자동차 전문 박물관이다. 용인 에버랜드에 인접해 있어 관람객이 많은 편이다. 에버랜드 연간 회원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고 당일 에버랜드 이용권을 제시하면 관람료를 1000원 깎아준다. 토요일과 일요일 진행하는 ‘신나는 박물관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최고 인기다. 박물관이 준비한 활동지를 함께 풀어보고 점토로 자동차 마스코트를 만들어 본다. 클래식카를 타고 박물관 내 공원에서 직접 시승도 할 수 있다. 참가비는 1만 원이며 인터넷으로 신청하거나 현장에서 접수하면 된다.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박물관에는 어린이 체험 공간으로 ‘자동차 나라(유치원, 초등생)’와 ‘자동차 체험나라(중고생)’가 마련돼 있다.철도는 한때 산업화와 근대화의 대표적인 상징물이었다. 1899년 노량진~제물포 간 철도 개통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서 역사적인 이벤트였다. 천지를 진동시키며 기적을 울리던 증기기관차는 사라지고 이제 최신 고속철도 KTX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한 기차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경기 의왕에 있는 철도박물관에서는 수많은 기차 모형은 물론 거대한 증기기관차 실물까지 직접 볼 수 있다. 철도 체험실에서는 직접 기관사가 돼 기차를 운전하는 가상 체험도 할 수 있다. 의왕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고 인근에 있는 자연학습공원에서 습지 및 실개천 수생식물 관찰, 왕송호수의 조류 탐사 등도 즐길 수 있다.최근 한국 최초의 우주인 탄생으로 항공우주 분야에 대한 관심이 한껏 고조돼 있다. 경남 사천에 있는 항공우주박물관은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가 먹은 김치로 만든 우주 식량과 우주정거장에서 사진을 찍는데 사용한 카메라를 직접 볼 수 있다. 200여 개의 항공기 모델과 25대의 실물 항공기가 전시돼 있다. 1970년대까지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된 C-54 스카이마스터는 내부가 전시관으로 개방돼 있다. 실제 비행기 조종 체험을 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터도 인기 아이템이다. 사천공항에서 차로 10~15분 거리고, 고성 공룡박물관을 연계 코스로 많이 찾는다.◇=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다. 이 때문에 전기 사용량과 경제 성장률은 강한 상관관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내에 있는 전기박물관에 가면 이처럼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를 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 체험을 통해 전기의 원리를 배우는 다양한 학습 기구가 마련돼 있는데, 그중 인기 있는 곳은 사람의 몸에 전기가 통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인체 전지’ 코너다. 좀 더 짜릿한 현장 체험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경기 안성의 한국전력 765kV송변전설비전시관을 권한다. 한국전력이 동양 최초로 성공한 765kV 초고전압설비를 전시해 놓은 곳으로 국가 보안 등급 지정 시설이라 방문 5일 전까지 사전 신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허가 절차가 까다로운 것은 아니다. 초중고생에게는 수준에 맞는 전기 안전 교육을 해준다.국내 산업 박물관 중 양적, 질적으로 가장 앞선 분야는 석탄박물관이다. 과거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던 경북 문경, 강원 태백, 충남 보령에 각각 석탄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문경 석탄박물관은 대한석탄공사 은성광업소 폐광 자리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예전에 쓰던 갱도를 전시실로 리모델링해 입구에서 230m 지점까지 들어가 볼 수 있다. 당시 광원들이 생활하던 사택도 복원해 놓았다. 박물관 방문 전에 미리 읽어 보고 올 수 있도록 만든 ‘셀프 가이드’를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e메일로 보내준다. 현장에서 문화예술 해설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TV 드라마 ‘연개소문’ 촬영지인 가은오픈세트장과 함께 있어 관람료도 통합해 받고 있다. 석탄을 실어 나르다 지금은 폐선된 문경선에서 철로 자전거도 탈 수 있다. 대여료는 어른 3명이 탈 수 있는 철로 자전거 1대가 1만 원이다.충북 음성에 있는 철박물관은 철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동국제강 창업자 상속인들이 출연한 세연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야외 전시장에 현대의 제강 공정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다. 동국제강 부산제강소에서 25년간 사용하던 집채만 한 크기의 전기로도 볼 수 있다. 현재 박물관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라 야외 전시장만 개방되고 있다. 공사는 6월 말까지 계속된다. 철박물관은 여름방학에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대장간 체험과 제강공장 견학 등으로 구성된 철문화 체험 교실도 개최한다.◇=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은 어린이들의 필수 견학 코스로 인기가 높다. 최근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어린이들이 박물관 관람에 활용할 수 있는 체험 학습지도 발행했다.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집에서 출력하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미리 살펴보고 오면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박물관 현장에서 체험 학습지를 나누어 주지는 않는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무료 가이드 투어를 실시하고 있으며 음성안내기를 통해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지난해 확장 공사를 하며 공을 들인 세계 화폐 전시 코너가 볼만하고 화폐에 직접 자기 얼굴을 합성해 출력할 수 있는 크로마키 시스템도 아이들이 좋아한다.경기도 일산에 있는 증권예탁결제원 증권박물관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제 교육의 명소다. 지난 2월 리모델링을 끝내고 재개관해 더욱 쾌적하다. 단체(10명 이상)로 사전 예약하면 친절한 가이드 투어를 해주고 25명 이상 신청하면 무료 경제교육도 받을 수 있다. 처음에는 증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으나 지금은 초보자나 어린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모의 주식을 직접 만들어 보는 ‘나만의 증권 만들기’가 최고 인기 코너다. 어른들은 가장 비싼 삼성전자 주식을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어린이들은 자기가 커서 만들고 싶은 회사의 주식을 주로 만든다고 한다. 지하철 3호선 백석역에서 걸어서 5~10분 거리다.우리은행과 신한은행도 각각 은행사박물관과 한국금융사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은 본점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다. 세계의 명품 저금통을 모아놓은 전시 코너가 유명하다. 은행사박물관은 현재 세계에서 수집한 6700여 개의 저금통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중 400여 점을 테마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측은 “은행사박물관은 세계 3대 저금통 컬렉션”이라고 전했다. 금과 루비로 장식돼 가격이 3억 원이 넘는 ‘귀족 마차 저금통’과 2000년 전 로마시대의 토기 저금통이 대표적이다.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은 광화문지점 3~4층에 마련돼 있다. 박물관 관람을 도와주는 체험 학습지가 준비돼 있고 각종 화폐의 문양 찍어보기 코너도 있다. 용돈 기입장 기입 요령과 통장을 만드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금융경제교실 동영상도 상영한다.취재=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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