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헌·세계적 대학 도약 ‘윈윈’

두산의 중앙대 인수 비하인드 스토리

최근 기업 인수·합병(M&A)에 왕성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두산그룹이 90년 역사의 학교법인 중앙대를 인수하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박범훈 중앙대 총장은 지난 8일 교내 총장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2일 두산그룹과 중앙대 법인은 중앙대를 매각·인수한다는 내용의 공동협약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박 총장은 이어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교수와 학생을 위한 장학연구기금 1200억 원을 출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1200억 원은 현금 형태로 현 중앙대 재단인 수림재단에 지원된다. 중앙대 관계자는 “이미 양해각서(MOU)가 체결됐고 오는 14일 재단이사회에서 이 매각안을 가결, 발표할 예정”이라며 “이미 이사진과 조율이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두산의 중앙대 인수는 중앙대 측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그룹 홍보팀 신동규 부장은 “올 초부터 중앙대가 두산 외에도 몇몇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대학 인수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두산은 그동안 모색해 온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사회 공헌 활동 추진을 통한 국가 사회 발전 기여’라는 오랜 숙원을 해결하기 위해 중앙대의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신 부장은 “두산은 그동안 연강재단의 장학사업 등 각 계열사별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추진해 왔지만 올 예상 매출 23조 원, 2015년 매출 100조 원 목표 달성 등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국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왔다”며 “마침 지난 3월 중앙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새로운 재단 영입을 추진하면서 의사를 타진해 옴에 따라 이를 수용하게 됐다”고 말했다.두산 관계자는 “중앙대는 사립대학교 정관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학교 운영에 투명성을 최우선으로 강조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대학으로 도약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두산은 이와 함께 현재 중앙대가 개교 100주년을 대비해 추진 중인 ‘CAU 2018 플랜’에 따라 중앙대가 ‘동양의 MIT’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중앙대는 부속 병원에 대해서도 과감한 투자와 두산의 선진 경영 기법을 도입해 국내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육성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 전액을 학교 발전에 재투자한다는 방침이다.재계에서는 두산의 중앙대 인수 배경이 다른 대기업의 대학 인수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학교법인은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대기업의 지분 참여가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다. 무엇보다 대기업이 학교법인을 소유할 경우 다양한 세금 특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처지에서는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 두산 측의 설명처럼 사회 공헌 측면에서 기업 홍보 효과와 인재 확보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현재 삼성은 성균관대, 현대는 울산대와 울산과학대, LG는 천안 소재의 연암대학, 진주 소재의 연암공대를 소유하고 있다. 한화는 천안북일고와 북일여고의 소유 지분을 갖고 있다.◇= 올해로 개교 90주년을 맞은 중앙대는 그동안 현 재단의 열악한 지원으로 재정난에 허덕여 왔다. 중앙대는 최근 흑석동 중앙대병원과 로스쿨 건물을 지으면서 학교법인과 법인 산하 기업체의 부채 규모가 7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두산이라는 새 재단을 맞아 이 같은 적자를 해소하고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부분의 기업들이 수익이 나지 않는 대학을 인수하려 하지 않지만 두산그룹은 사학 육성을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중앙대의 한 관계자는 이번 매각 배경과 관련해 “현재 김희수 중앙대 이사장이 재일 교포 출신인데다 고령(84세)의 나이 때문에 학교를 정리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의 자녀들은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으며 교육 사업에는 뜻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김 이사장은 경남 창원 출신으로 13세이던 1937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전기대를 졸업하고 기업 활동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일본 현지의 학교법인 ‘가나이학원’과 슈린외국어전문학교 등의 명예이사장이기도 하다. 김 이사장은 재일 교포 출신으로 국내 대학 재단 이사장이 된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1987년 취임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앙대는 두산그룹을 등에 업고 사실상 ‘제2의 개교’를 선언했다. 지난 1996년 삼성이 성균관대를 인수해 대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이후 또 하나의 모범적인 ‘대학-기업’ 협력 모델이 탄생될지 주목된다.중앙대의 발전 방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동양의 MIT’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앙대는 이번 두산의 재단 영입으로 현재 마스터 플랜으로 계획하고 있는 △글로벌 대학 육성을 위한 시설 투자 확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연구 중심 대학으로 육성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박 총장은 “이번 두산의 재단 영입은 대학-기업 간의 모범적인 협력 사례가 될 것”이라며 “새로운 재단과 함께 조만간 더욱 구체적인 중앙대 장기 비전 및 발전 전략을 수립해 시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특히 두산과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공과대 발전에 초점이 맞춰질 예정이다. 두산그룹이 보유한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과 연계할 경우 공과대 발전의 시너지가 배가될 것이라는 얘기다.그동안 서울 지역 대학 중 공대 건물이 한 동 뿐인 대학은 중앙대가 유일해 교내에서도 소외된 공대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김영탁 공대 학장은 “재단이 바뀌는 것은 학교의 발전 방향을 바꾸는 큰 변화”라며 “공대 교육은 시설이 중요한 만큼 공간과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이 학교 박성원(기계공학과 05학번) 씨는 “공대 학우들이 내는 등록금은 학교 전체 예산의 40%를 차지했지만 학교 측의 공대 투자 비율은 2%에 불과했다”며 “앞으로 시설 확충은 물론 장학금 혜택 등이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두산의 중앙대 인수가 알려지자 중앙대 홈페이지에는 대체로 환영한다는 의견이 많이 올라 왔다. 자신을 중앙대 졸업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현재와 같은 기업 경영 환경에서 대그룹이 종합대학을 인수해 사회 공헌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대단한 용단으로 보입니다. 지난 수년간 지속적으로 침체된 중앙대의 학풍 진작과 명문대로 도약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생각입니다. 김희수 재단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고 떠나는군요. 여하튼 졸업생으로서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인수가 성사되면 최대 수혜자는 공대생들이 될 듯싶군요. 어쨌거나 올해 입시에서 중앙대 커트라인 폭등하겠네요”라고 말했다.한편 두산은 이번 중앙대 인수를 계기로 형제간 역할도 분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두산그룹은 박용성(3남) 용만(5남) 회장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 때문에 두산그룹 사회 공헌 재단인 연강재단을 이끌고 있는 박용현(4남) 이사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이사장은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장과 11, 12대 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두산건설 대표이사 회장직을 가지고 있다.중앙대의 두산그룹 재단 영입은 14일 중앙대 이사회 승인을 얻은 뒤 최종 확정되며 중앙대 이사장 및 이사회 구성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승인을 얻어 결정된다.김재창 기자 changs@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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