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출신 ‘허리를 굽혀라’

인생 재설계 - 소자본 창업

5월 7일 오전 10시, 서울 등촌동 서울신기술창업센터 강의실엔 30여 명의 남녀가 진지한 자세로 강의를 듣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주 2회, 3개월 동안 진행되는 ‘하이서울 창업스쿨’의 9기 수강생들이다. 주간, 야간으로 진행 중인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는 총 270명. 각계 전문가의 강의와 현장 실습으로 이뤄진 커리큘럼을 통해 ‘창업의 기술’을 배우고 있다.수강생 가운데 절반 이상은 직장에 다닌 경험이 있거나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야간반의 경우 70% 이상이 퇴근 후 강의를 듣는 현역 직장인이다. 창업스쿨 업무를 맡고 있는 강명구 씨는 “1년에 두 차례 시행하는 수강생 모집에 800명 이상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이 3 대 1 정도”라면서 “언젠가 내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가진 직장인들이 특히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외환위기 이후 명예퇴직 등의 이유로 거리로 나온 화이트칼라 출신들이 소자본 창업 시장에 대거 합류하면서 이제 창업은 ‘샐러리맨의 인생 역전장’이 됐다. 창업자 연령층도 40대 이상 중장년층에서 20~30대 젊은 층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온라인 리크루팅 업체 잡코리아가 지난해 20~30대 직장인 812명을 대상으로 ‘자기 사업 선호도’를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77.5%가 ‘향후 내 사업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전직, 이직보다 창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그러나 직장 울타리 안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다가 모든 일의 주체가 되어 직접 돈을 버는 ‘사장’으로 변신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전혀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화이트칼라의 창업 성공률은 다른 직종 출신보다 현격히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이야기다.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은 “사무직과 관리직 출신 창업자들이 특히 많은 어려움을 겪곤 한다”면서 “창업 성공 요소인 경쟁의식이나 목표의식, 비즈니스 마인드, 영업력 부족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창업자로서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막연한 희망만으로 창업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도 “생활 밀착형 업종으로 승부하는 소자본 창업은 성공률이 50% 이하”라며 “흔히 외식업에 쉽게 접근하지만 오히려 다른 업종에 비해 성공률이 낮다”고 밝혔다.결국 화이트칼라 출신 창업자들은 창업 자체를 ‘쉽게’ 보는 탓에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여기엔 인터넷 등에서 쏟아지는 창업 정보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성공 사례 일색인 정보들 사이에서 옥석을 가려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 확률 100%’ ‘최고의 히트 브랜드’ 등의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가맹 본사의 신문 광고들도 ‘창업은 어렵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다.하이서울 창업스쿨 강사인 서정헌 넥스트창업연구소장은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직장인 출신 창업 희망자가 적지 않다”면서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또 직장에서의 지위를 버리지 못하고 고객과 종업원을 대하거나 ‘장사’를 업신 여기는 사고방식이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이는 평생을 책상물림으로 살아 온 사무직, 관리직 출신에게서 자주 엿볼 수 있는 문제다. 서정헌 소장은 “교육을 받으면서 스스로 얼마나 준비가 안 된 창업 희망자인지 깨닫는 경우가 많다”면서 “창업으로 성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아는 것부터가 창업 준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직장인의 사업가 변신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 강병오 대표는 “안정성 수익성 성장성을 바탕에 두고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실제 준비에 앞서 하이서울 창업스쿨(school.sba.seoul.kr)과 같은 교육 기회를 경험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현재 경기여성경제인협회, 소상공인진흥원 각 지역 센터 등에서도 실전 창업을 지원하는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업종을 고를 때는 유난히 바람몰이를 하는 유행 업종보다는 업종 수명이 긴 안정 업종 중심으로 선택하는 게 좋다. 오랫동안 수익성이 검증된, 수요가 탄탄한 아이템을 골라야 한다. 유행 업종은 경쟁이 치열하고 수명도 짧기 때문에 ‘치고 빠지는’ 경험이 부족한 초보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준비 기간을 길게 잡는 것도 중요하다. 창업 전 교육에서부터 자금 계획, 운영 전략 등을 천천히 준비해야 한다. 관련 업종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다면 성공률을 더욱 높일 수 있다. 현장 체험을 통해 판매 서비스나 직원 관리 등 점포 운영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스스로에게 잘 어울리는 분야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장사할 입지와 점포를 고를 때는 과학적인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점포 후보지의 유동인구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접근성 및 가시성이 좋은지, 업종과 궁합이 맞는 자리인지, 권리금과 임대료가 적당한 수준인지 등은 직접 발로 뛰면서 알아내야 한다.경험이 없는 초보 창업자라면 프랜차이즈 가맹 창업이 유리하다. 이 경우 프랜차이즈 본사의 관리 능력과 경영 시스템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물류 공급이 원활하고 가맹점 관리에 문제가 없는 본사를 선택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기존 가맹점 5곳 이상을 방문해 본사에 대한 평가나 사업 실태를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개정된 가맹사업법에서 프랜차이즈 본사의 정보공개서 등록을 의무화한 만큼 계약 전에 반드시 본사의 정보공개서를 검토하도록 한다.마인드 컨트롤도 중요한 창업 준비 가운데 하나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발목을 잡히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정액수의 월급에 길들여진 직장인 출신 창업자라면 수입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일정하지 않은 수입 구조에 적응하는 것도 가볍지 않은 일이다.창업 준비 과정에선 보수적인 자금 운용 계획이 필수다. 처음부터 기대를 충족하는 수익을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 자금 계획을 세워 두는 게 안전하다. 여유 자금을 충분히 확보해 두는 한편, 초반 3개월은 홍보와 점포 경영 시스템 구축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게 좋다. 이경희 소장은 “창업 컨설턴트에게 창업 준비를 맡긴다 하더라도 결국 운영은 창업자 스스로가 하는 것”이라면서 “창업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발로 뛰며 사업을 개척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실제 사업에서도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죽을힘을 다해 뛰는 사람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가 창업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의미다. 1. 너 자신을 알라 왜 창업을 하려고 하나. 나는 창업에 적합한 타입인가.2. 싹이 보이는 업종을 선택하라 인생을 걸고 투자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수익성이 검증된 안정 업종이 최고다.3. 자금에 맞는 그림을 그려라 가진 돈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크기에 맞게 시작하라. 무리수를 두는 순간 위기가 닥친다. 작게 시작해 크게 키우는 것이 장사의 제1원칙이다.4. 천천히, 그러나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하라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 돈 벌 욕심에 서둘러 창업부터 하고 보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마음먹은 후 최소 3년은 준비하라.5. 경험을 쌓아라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실전 경험을 쌓아라. 경험이 보배다.6. 경력을 살려라 직장 생활을 통해 터득한 경험과 지식들을 최대한 활용하라. 미국에선 퇴직자의 70% 이상이 원래 일했던 분야와 연관 있는 창업을 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7. 체면치레 버리고 서비스 정신을 키워라 왕년에는 누구나 다 잘나갔다. 직장에서의 지위를 생각하고 형식과 체면에 얽매이면 돈을 벌 수 없다. ‘고객이 왕’이라는 생각으로 허리를 굽혀라.8. 장밋빛 환상은 내다버려라 창업만 하면 떼돈을 벌 것 같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편안하게 돈 많이 벌 수 있는 업종은 없다. 장사는 직장 생활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9. 제대로 된 프랜차이즈 본사를 골라라 초보 창업자에겐 탄탄한 프랜차이즈가 친구나 다름없다. 단, 정보공개서를 제대로 읽어보고 건강한 업체를 선택하라.10. 퇴직금을 올인하지 말라 퇴직금은 최후의 보루다. 창업자금에 전부 쏟아 붓는 것은 미친 짓이다. 최소 3개월 정도의 운영자금은 남겨 놓아야 한다.※자료 : FC창업코리아(www.changupkorea.co.kr)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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