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유니베라 총괄사장
지난 1989년 2월 미국 텍사스의 힐탑가든 농장. 이병훈 알로콥 사장은 일과를 마친 뒤 직원 몇 명과 시원한 생맥주로 피로를 풀고 있었다. 이역만리 텍사스에 첫 해외 농장을 마련해 알로에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10여 개월째. 힘겨운 농사일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올린 매출도 30만 달러에 달했다.텍사스는 미국 남부에 위치해 온화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알로에는 추운 곳에선 살 수 없는 식물이다. 영하로 떨어지면 곧바로 얼어 죽는다. 이병훈 사장은 유니베라(당시 사명은 남양알로에)의 창업자 고 이연호 회장의 아들로 위스콘신대와 동 대학원을 나온 뒤 유니베라의 미국 법인인 알로콥의 대표로 부임해 농장 일과 판매 등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간단한 맥주 파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TV를 켠 순간, 이 사장은 망연자실했다. 100년만의 냉해가 텍사스를 덮칠 것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는 그동안의 농사가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 년 동안 시장조사를 하고 고르고 골라서 가장 따뜻하다는 텍사스에 농장을 마련했는데 영하의 추위라니….’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 사장은 동이 트기도 전에 차를 몰고 농장으로 달려갔다. 영하의 추위가 엄습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로에는 새벽별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피땀으로 가꾼 92만 주의 알로에가 모두 얼어 죽을 판이었다.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차가운 냉기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끼며 드넓은 농장에 홀로 서 있었다.그때 미명을 가르며 멀리서 한줄기 불빛이 농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불빛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었다. 농장 직원들 역시 뉴스를 보고 새벽에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직원은 불과 40여 명이었는데 그날 새벽 농장에 온 사람은 250명에 달했다. 직원들이 가족 친족 등 구할 수 있는 일손은 모두 구해 달려온 것이다.3개조로 나눠 작업에 들어갔다. 자연재해에 맞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었다. 폐타이어를 찾아 군데군데 불을 지피고 비닐봉지를 구해 알로에 한 그루 한 그루에 씌웠다. 3일 밤낮으로 이런 노력이 이어졌다. 냉해가 물러가고 봉지를 벗긴 순간 대부분의 알로에는 흐물흐물 녹아내렸고 누렇게 썩어 있었다. 임직원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의 수고가 물거품이 된 것이다. 손실액은 무려 100만 달러. 중소기업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일로 100만 달러가 훨씬 넘는 소득이 있었다고 이 사장은 회고한다.“직원과 그 가족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알로에 살리기에 나선 순간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이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득”이라고 설명했다.텍사스 농장 준공으로부터 20년이 지난 2008년 4월 23일 중국 하이난섬. 동양의 하와이로 불리는 풍광 좋은 이 섬에 이병훈 유니베라 총괄사장이 모습을 보였다. 알로에 농장 확장과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휴양지 싼야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완링에 조성된 알로에 농장에는 파릇파릇한 알로에가 끝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농장 한쪽엔 중국식 건축 양식의 가공 공장이 우뚝 솟아 있었다.그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지난 20년간 이어져 온 해외 농장 개척사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텍사스에 이어 멕시코 러시아, 그리고 중국에 이르는 알로에 벨트가 완성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유니베라가 10년 전 하이난섬에 알로에 농장을 시작할 당시의 규모는 230만㎡ 수준이었다.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지형에 있던 야자나무 숲을 베어내고 조성한 것이다. 연중 섭씨 영상 23~25도의 좋은 기후와 토양 조건을 갖춘 하이난섬은 알로에 재배의 최적지 중 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430만㎡(130만 평)로 확대하고 아예 가공 공장까지 건설한 것이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알로에 원료는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호주 등 동남아와 오세아니아로 수출될 예정이다.이로써 유니베라의 알로에 벨트는 멋지게 구축됐다. 264만㎡ 규모의 미국 ‘텍사스 힐탑가든 농장’과 알로에 단일 농장 규모로는 세계 최대인 615만㎡의 멕시코 ‘탐피코 농장’에서는 연간 5만6000톤의 알로에를 생산한다. 이들 지역에서 생산된 알로에 원료는 미국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40여 개국 700여 기업에 공급되고 있다. 유니베라는 전 세계 알로에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연해주에 있는 러시아 농장은 2148만㎡의 부지에서 쌀, 옥수수 등의 곡물과 가시오가피, 황금 등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이들 4개 지역을 합친 해외 농장 면적은 여의도의 4배가 넘는다.“이번 하이난 농장 확장과 공장 준공으로 앞으로 세계 알로에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사장은 내다보고 있다. “특히 하이난 알로에 공장은 큐-매트릭스(Q-Martix) 공법이라는 새로운 설비와 공정으로 ‘4세대 알로에’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인다. 큐-매트릭스 공법은 “공정 과정에서 알로에 본질의 향, 색의 손실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유효 성분을 유지, 보존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공법”이라고 이 사장은 설명한다.이 사장은 “중국 하이난 농장 확장 및 공장 준공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더욱 힘을 쏟을 수 있게 됐다”며 “무엇보다 새로운 생산 공정을 통해 안전하고 효능이 높은 알로에를 국내외에 공급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그는 “과거엔 국가가 영토를 확장했지만 지금은 글로벌 기업이 세계를 무대로 경제 영토 확장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유니베라 역시 한국의 경제 영토를 넓히는 전쟁에 앞장서겠다”고 밝힌다. “특히 친환경 소재 개발을 통해 ‘그린오션(Green Ocean)’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설명한다.유니베라는 웰니스(wellness) 리조트 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하이난에 총 9000만 달러를 투자해 리조트와 웰빙 건강 개념을 결합한 단지인 ‘웰니스 타운’ 건설에 나서고 있다. 농장 인근 바닷가에 웰니스 타운 건설에 들어갔다. 이 타운은 총 60동의 단층 빌라와 풀장 스파를 비롯해 알로에 등 천연 약용식물을 활용한 건강 회복 시설을 갖춘 일종의 휴양 시설이다.웰니스 타운의 면적은 약 400만㎡에 이르며 인근 알로에 농장을 합칠 경우 이 지역의 총 규모는 830만㎡(약 250만 평)에 달한다. 유니베라는 웰니스 타운을 오는 2010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휴양 시설뿐만 아니라 박물관 식물원 민속마을도 단계적으로 조성할 계획이다.유니베라가 이 지역에 웰니스 타운을 건설하는 것은 상하의 섬인데다 물과 공기가 깨끗해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연간 10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이곳을 관광 특구로 지정하고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후진타오 주석 등 중국 수뇌부가 참가하는 보아오포럼도 매년 이곳에서 개최되고 있다. 게다가 알로에 농장도 성공적으로 정착돼 이를 기반으로 한 연계 사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이 사장은 “웰니스 타운은 알로에 사업과 전혀 별개의 사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웰니스 타운에 대해 10년 이상 연구해 왔다”며 “휴양과 식생활 개선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알로에 등 천연 식물을 기반으로 건강을 증진시키는 사업”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웰니스 타운 건설과 관련, “총 9000만 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지역은 하이난 남쪽의 관광 중심 도시인 싼야에서 북쪽 행정중심도시인 하이커를 잇는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철도공사도 진행되고 있다.이 사장은 “유니베라 기업 철학은 ‘자연의 혜택을 인류에게(Nature’s Best)’인데 이는 자연에서 좋은 것을 찾아내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하겠다는 의미”라며 “이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매년 1000만 달러 정도를 연구·개발에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연구·개발은 더욱 가속될 것”이라고 덧붙인다.약력: 1962년생. 87년 미국 위스콘신대와 동 대학원 졸업(사회학 석사). 88년 미국 알로콥 대표이사. 94년 남양알로에 상무. 96년 유니베라 대표이사(현). 2002년 세계경제포럼 선정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 수상 미국 할링젠시 최우수경영인상 등.〈 회사 개요〉창업: 1976년주요 생산품: 알로에 원료 및 제품, 천연식물 등해외농장: 미국 멕시코 러시아 중국매출: 2007년 약 1100억 원(국내법인 판매, 소비자가 기준)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