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진작과 정책 조합(policy mix)

경기는 하락하는데 물가는 오르면서 정책 당국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경기를 살리려고 부양책을 쓰자니 물가 오름세가 만만치 않고 물가를 잡으려고 긴축을 하기에는 경기가 부담이 된다.우선 경기 흐름을 보면 경기 하강세가 심상치 않다. 현재 또는 경기선행성을 갖는 지표들이 상당히 우려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 일자리 창출이 정부의 계획치는 고사하고 일반적인 예상치보다 크게 낮은 18만 명까지 줄어들었고 소비와 투자 심리가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향후 경기 흐름을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 상승률이 급격히 둔화되는 등 이대로라면 경기 하강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이런 어려운 국면에서 새로 출범한 경제팀은 물가 안정보다 경기 진작 쪽을 택했다. 재정 지출 확대를 위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시도하고 있고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원화 환율 상승이 바람직하다는 신호를 노골적으로 시장에 전달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경기 부양책을 도모하고 있다.이렇다 보니 정책 당국이 물가 문제를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수요 진작책에 환율 상승을 유도하는 정책까지 가세한다면 정책 당국이 아무리 물가 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있지 않다고 강변해도 시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는 확산될 것이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경기 진작책으로서 재정 지출 확대를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외환위기 이후 재정 부문도 기업이나 금융 부문 등 여타 부문과 마찬가지로 보수적, 안정적 운영이 강조돼 왔다. 그 결과 재정수지는 줄곧 흑자 기조를 유지해 왔고 지난해의 경우는 통합재정수지뿐만 아니라 관리대상수지까지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된 기업과 금융, 정부 부문의 안정 지향적, 보수적 경영이 한국 경제의 저성장 체제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안정성과 건전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지나치면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상황에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재정의 경기 조절 기능은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재정 확대 효과는 감세를 통해 이뤄질 수도 있다. 다만 새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감세보다는 재정 지출 확대가 더 효과적일 것이다.한편 원화 환율 상승을 유도하는 정책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클 것으로 판단된다. 환율 상승의 물가 파급 효과는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경기 하강세를 감안하면 통화 및 재정 확대와 같은 수요 진작 대책이 물가를 실질적으로 자극하는 압력은 크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수입 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환율의 상승은 직접적으로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효과를 갖는다. 경기 진작 효과와 관련해서는 환율 상승이 내수를 위축시키는 효과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환율의 수출 파급 효과가 과거에 비해 많이 무뎌진 반면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이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려 오히려 내수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이런 복잡한 계산들이 아니더라도 환율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겨두고 외환시장 개입은 시장의 변동성을 줄여주는 최소한의 개입에 그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수요 진작을 위한 통화 및 재정 확대 정책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다만 경기 진작책 시행에 앞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차단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 인위적인 환율 상승 유도 정책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경기 진작책은 환율 정책과의 유기적인 정책 조합(policy mix)을 전제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약력: 1961년생. 서울대 경제학 석사. KAIST 금융공학 박사. 2004~05 UC버클리 객원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팀장.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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