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국회 앞에 속타는 ‘민생’

18대 국회의 개원 지연으로 경제 부처 합동으로 만든 고유가 대책의 시행 시기가 자꾸만 늦춰지고 있다. 지난 20일 과천 청사에서 만난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고유가로 인한 고통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서민들을 위해 백 가지 처방을 내봐야 국회가 열리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 아니냐”며 “속이 탄다”고 조급한 심정을 털어놓았다.정부는 지난 17일 국무회의를 열고 ‘고유가 극복을 위한 민생종합대책’과 관련한 ‘연 24만 원 세금 환급(tax rebate) 법안’과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을 의결했다. 법률안의 시행 시기도 ‘공포 즉시’로 못 박아 6월 임시국회서 처리하고 7월에 곧바로 시행한다는 스케줄을 내놨다.이런 일정을 짠 것은 세금 환급 절차 때문이다. 근로자의 경우 원천징수의무자(고용주 등)가 전년도 연간 급여를 따져 대상자에 대한 신청을 국세청에 올려야 한다. 정부가 공언한 대로 2008년 하반기분 12만 원이 10월에 환급되려면 적어도 7월부터는 신청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7월 시행은 이미 물 건너간 분위기다. 세환급법안과 추경예산안을 처리해야 할 18대 국회가 아직 원 구성도 못한 탓이다. 고유가 민생 대책만 지연되는 게 아니다.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추경안에 따르면 정부는 세계잉여금 4조9000억 원 가운데 3조 원은 고유가 대책을 이행하는데 쓰고 나머지 1조2000억 원은 대중교통 지원과 서민 생활 안정 등 추가 지원에 전액 쏟아 붓기로 했다.정부는 ‘고유가 대책’에 따른 세금 환급에 총 7조 원가량의 ‘실탄’을 마련해 두고 있다. 이 중 기존에 예산이 이미 배정돼 있는 화물차 버스 등의 경유 유가 보조금 2조 원을 빼면 추가적으로 5조 원에 대해서는 국회 의결을 거쳐 조세특례제한법을 고치는 과정이 필요하다.추가 감세 여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서도 정부는 예상보다 충격이 큰 고유가 상황을 맞아 대대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는데 기존에 갖고 있던 감세 재원의 대부분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국회가 열리지 않으면 이 같은 지원책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정부가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놔 봐야 국회가 열리지 않으니 시행할 방법이 없다는 데 과천 공무원들의 고민이 있다. 한 차관급 관료는 “여·야 대립이나 국회의원 간의 이견 때문이라면 열심히 국회 상임위를 쫓아다니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라도 통과시키는 노력을 해보겠지만 지금은 18대 의원들의 소속 상임위조차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누구를 상대로 ‘로비’를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재정부 공무원들의 우려대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중산층 이하 계층에 연간 최대 24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다. 버스와 화물차에 유가 상승분의 일정 비율을 정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책도 시행이 연기될 수밖에 없다. 즉, 정부가 화물연대와의 협상에서 보조금 지급 기준이 되는 경유 값을 리터당 1800원으로 정해 놓고 이보다 올라가면 약 50%를 정부가 보조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국회에서 법처리를 하지 못하면 말짱 ‘공수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현재 18대 국회는 상임위원회 구성은 물론 국회의장 선출조차 못하고 있는 상태다.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기획재정위 지식경제위 국토해양위 등 소관 상임위의 예비 심사를 거쳐 예산결산특위와 본회의에서 의결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17대 국회 때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가 기싸움을 하느라 7월 말에야 원구성이 마무리됐던 점을 감안하면 민생 대책의 7월 시행은 사실상 어렵다는 평가다.재정부 관계자는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가서 시행 시기가 10월이 되더라도 올 하반기 전체에 소급 적용해 약속한 대로 세금 환급을 시행할 수는 있다”며 “다만 한시라도 빨리 고유가로 비어버린 서민들의 ‘주머니’를 채워줘야 하는데 여·야 국회의원들이 민생 문제의 심각성을 공무원만큼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시민 단체도 “정쟁을 하더라도 국회에서 하고 민생 법안을 빨리 처리해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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