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급팽창…아시아 ‘빅3’ 각축

④ - 철강 시장에 국경은 없다

요즘 중국에서는 자동차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지난해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880만 대에 육박했다. 전년보다 21.9% 늘어난 수치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자동차 판매 증가율이 두 자릿수 밑으로 떨어진 해는 한 번도 없다. 올해에는 사상 처음 ‘1000만 대 판매’ 돌파가 예상된다. 이런 속도라면 중국은 2년 내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하게 된다.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급팽창은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하는 철강사들에도 ‘대박’을 안겨줬다. 중국 1위 철강사 바오스틸이 신일본제철, 아르셀로 미탈(당시 아르셀로)과 손잡고 지난 2005년 상하이에 완공한 ‘바오스틸·신일철자동차강판(BNA)’이 가장 큰 수혜 업체다. 바오스틸이 50%, 신일철 38%, 아르셀로 미탈 12% 지분을 보유한 이 업체는 가동 이듬해 흑자를 내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6억4000만 위안의 순이익을 거둬들였다. 수요 증가로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다.자동차 강판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품목이다. 자동차의 안전, 연비와 직결돼 웬만한 기술력으로는 넘보기 어렵다. 범용 제품 위주인 중국 철강사들에는 약한 고리인 셈이다. 최근 성과에 한껏 고무된 바오스틸과 신일철, 아르셀로 미탈은 추가 투자를 통해 2009년까지 BNA의 생산 능력을 2배 이상 늘리기로 합의했다.중국 자동차 강판 시장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포스코로서는 이런 움직임이 달가울 리 없다. 포스코는 고군분투하며 거의 맨손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처지다. 최근 약진하고 있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대부분 신일철, JFE 등 일본 철강사의 강판을 고집한다. 현대·기아차도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에 상당량을 의존한다. 포스코가 공략할 수 있는 남겨진 대상은 사실상 유럽계와 중국계 자동차 업체들뿐이다. 그나마 신일철, JFE, BNA 등과 경쟁해야 한다.하지만 포스코에 중국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포스코는 광양제철소를 ‘세계 최대, 최고의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로 발전시킨다는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다. 이를 실현하려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하는 게 필수적이다.중국 제1의 경제 도시 상하이. 동서남북으로 고가도로가 잘 발달한 상하이에서도 옌안루는 대동맥에 해당한다. 상하이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왕복 8차선 고가도로에 오르자 도로를 꽉 채운 차량 행렬이 중국 대륙에 불고 있는 ‘마이카 붐’을 실감나게 한다. 상하이에 등록되는 자동차는 하루 평균 700대씩 늘어나고 있다. 갑자기 많아지기 시작한 차량으로 교통난이 심화되자 몇 년 전부터 출퇴근 러시아워에는 ‘후()’로 시작하는 상하이 번호판을 단 차량만 고가도로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고가도로 위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고가 밑 일반도로는 수많은 차량이 뒤엉켜 북새통이다.상하이 시내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차는 폭스바겐이다. 한국에서는 고급차 이미지가 강하지만 중국에서는 가장 많이 팔려나가는 대중적인 승용차로 통한다. GM의 뷰익이 그 다음으로 많이 눈에 띈다. 혼다, 도요타, 닛산 등 일본차와 현대·기아차가 그 뒤를 잇는다. GM대우의 마티즈를 빼닮은 중국 토종 자동차 회사 치루이의 소형차 QQ도 간혹 발견할 수 있다.폭스바겐은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다국적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 1985년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는 최초로 중국에 진출해 상하이자동차와 50 대 50 합작 형태로 상하이폭스바겐을 설립했다. 올해로 23년째 중국인들을 위한 차를 만들어 온 것이다. 시장 선점의 효과는 지금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 상하이 시내를 달리는 택시는 모두 상하이폭스바겐의 산타나 모델이다. 20~30년 된 모델이지만 중국인들 사이에 산타나가 승용차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아 지금도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이 회사는 지난해 중국 내에서 44만 대의 승용차를 팔았다. 중국인들은 상하이폭스바겐을 ‘상하이따중(上海大衆)’이라고 부른다. 독일어로 ‘국민차’를 뜻하는 폭스바겐(Volkswagen)의 의미를 살린 것이다.중국 자동차 강판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포스코가 마련한 핵심 거점인 쑤저우자동차강판가공센터(posco-cspc)는 상하이폭스바겐 공장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최대 잠재 고객사인 상하이폭스바겐 옆에 처음부터 입지를 고른 것이다. 실제 떨어진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각자 소속된 행정구역은 다르다. 상하이폭스바겐은 상하이의 서북쪽 경계 지역인 안팅에 속한다. 반면 포스코 가공센터는 장쑤성 쿤산시가 주소지다. 쿤산은 ‘동양의 베니스’로 유명한 쑤저우에 속하는 현급 시로 중국 정부가 실시하는 ‘중국 100대 현’ 선정에서 1~2위를 다투는 한창 잘나가는 신흥 산업도시다. ‘리틀 타이베이’로 불린 만큼 대만 기업이 밀집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포스코가 쑤저우자동차강판가공센터의 첫 삽을 뜬 것은 지난 2003년이다. 포스코가 해외에 지은 자동차강판가공센터 1호다. 광양제철소에서 냉연 코일을 배로 실어와 고객사의 요구에 맞게 잘라 공급한다. 중국 내 완성차 업체와 이들에게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이 주 타깃이다. 현재 완성차 업체 중에서는 상하이폭스바겐과 상하이GM, 그리고 중국 2위 토종 자동차 업체인 지리자동차가 대표적인 고객사다.온경용 쑤저우자동차강판가공센터 사장은 “유럽계와 중국 로컬계 자동차 회사가 주고객 기반”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회사와 철강사의 관계는 독특하다. 물건을 한번 팔고나면 끝나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품질 인증, 생산에 이르기까지 함께 손발을 맞춘 자국 철강사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과 철강사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공급받는 철강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품질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유럽 자동차 업체들도 초기에는 유럽 철강 제품만을 고집했다. 하지만 해상 운송 비용이 급등하고 극한적 원가 절감 경쟁이 벌어지면서 중국 현지 조달 형태로 바뀌었다. 중국 업체들의 경우 중국 철강사 제품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자동차 강판 생산 능력을 갖춘 중국 철강사가 바오스틸 등 몇 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쑤저우가공센터는 판재류를 폭 방향으로 절단하는 시어링 라인, 길이 방향으로 자르는 슬리팅 라인, 성형 절단이 가능한 블랭킹 라인들을 갖추고 있다. 기초적인 단순 절단 작업만 가능한 기존 코일센터에서 한발 더 나간 것이다. 소재 보관이나 운송 업무도 병행해 고객사의 물류 부담도 덜어준다. 최근에는 고객사에서 금형을 가져와 아예 프레스 작업까지 해 보내주고 있다.온 사장은 “금형을 내 준다는 것은 두 회사가 단순한 협력 관계를 넘어 ‘결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쑤저우가공센터는 현재 상하이폭스바겐에서 금형 13개를 받아와 프레스 작업을 해주고 있다. 조만간 2차로 40개의 금형이 추가로 들어온다. 이런 후반 작업이 더해질수록 당연히 부가가치는 올라간다.하지만 쑤저우가공센터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올 초 GM의 메이저 부품사인 오스템과 공동으로 가공센터 인근에 자동차 섀시 및 몸체용 부품을 생산하는 합작법인 포스-오스템(Pos-Austem)을 설립하기로 하고 건설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스코가 국내외에서 자동차 부품 사업에 직접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온 사장은 “중국 내 자동차 고객사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쑤저우가공센터는 포스코가 추진하는 ‘글로벌 EVI(Early Vendor Involvement) 전략’의 전진기지다. EVI는 자동차 업체의 제품 개발 초기 단계인 디자인 단계부터 철강사가 함께 참여해 새 모델에 가장 적합한 고유의 맞춤형 자동차 강판을 개발 공급하고 관련 가공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새로운 개념이다.현재 포스코는 전 세계에 27개의 가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11개가 중국에 있다. 포스코의 중국 지주회사인 포스코차이나 김동진 사장은 “중국 전역을 아우르는 영업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게 포스코의 최대 강점”이라며 “초기에 중국 각지에서 다양한 분야에 광범위한 투자를 단행한 철강사는 세계적으로 포스코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신일철이나 아르셀로 미탈, 티센크룹만 해도 1~2개 프로젝트에 대한 부분적인 투자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포스코차이나 상하이영업소는 쑤저우가공센터와 장자강포항스테인리스 공장이 있는 장쑤성은 물론 인근 저장성과 안후이성, 후난성, 쓰촨성까지 포괄한다. 김우풍 상하이영업소장은 “자동차 강판과 가전 쪽 판매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대략 자동차 강판 80%, 가전 15%, 조선 및 컨테이너 5% 정도 된다. 조선용 후판은 한국에서도 공급이 달려 물량을 줄이고 있다. 가전 분야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80%가량을 차지한다. 중국계 가전사는 하이얼을 제외하고는 얼마 되지 않는다.김 소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급 과잉으로 철강 가격 하락이 예상됐는데 쓰촨성 지진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며 “지진으로인한 피해 복구에 필요한 철강재 수요 증가로 가격이 다시 상승 추세로 돌아섰다”고 전했다.김 소장은 향후 경쟁의 핵심 포인트로 물류를 꼽았다. 거대한 중국 대륙을 국내 시장처럼 만들려면 물류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해 코스트를 최대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물류를 그대로 놓고는 경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상하이영업소가 담당하는 지역의 철강가공센터는 지난해 초만 해도 2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2년 새 크게 늘어, 올 연말이면 7개가 된다. 이들 가공센터를 연결하는 물류 시스템도 구축된다. 김 소장은 “내년이면 이 지역의 판매망을 완전히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q쑤저우자동차강판가공센터는 지난 2003년 착공해 이듬해 5월부터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포스코가 해외에 설치한 첫 자동차강판가공센터다. 지난해 자동차용 강판 20만 톤을 판매해 1억56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자동차 강판의 가공과 판매, 물류, 고객 관리를 함께하는 복합가공센터다.“한국 본사에서는 중국 내 고객사에 고객 대응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제는 단순히 철판을 자르고 가공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고객 니즈에 맞춰 철저하게 납기와 품질 관리를 해줘야 한다. 자동차 회사는 한번 납품에 문제가 생기면 생산에 치명적이다.”“완성차 업체와 부품사가 주 고객이다. 국적별로는 유럽계 업체와 중국 현지 업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상하이폭스바겐의 자동차 강판 메이저 공급사고 상하이GM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아르셀로 미탈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중국 바오스틸이 전체 시장의 50% 정도 차지하고 있고 일본 철강사가 30%, 포스코가 10%가량 점유하고 있다. 기타 나머지 중국 철강사들이 10%쯤 한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한국은 매우 유리한 위치다. 샌드위치가 아니라 천혜의 입지다. 상하이 바오스틸과 광양제철소에서 동시에 선양 BMW 공장으로 물건을 실어 보내면 우리가 이틀 빨리 간다. 물류가 그만큼 잘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워낙 넓어 상하이에서 가나 광양에서 가나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광양이 유리하기도 하다. 실제 창춘 아우디의 주공급자는 포스코다. 물류에서 효율성만 갖추면 팔 곳은 얼마든지 있다.”베이징·상하이·장자강·쿤산(중국)=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협찬: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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