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착륙 vs 연착륙…물가 잡기에 달려

갈림길에 선 경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글로벌 경제 침체 우려가 높아지면서 세계의 시선이 중국으로 쏠리고 있다. 중국 경기의 향방에 따라 미국발(發) 충격이 증폭될지, 아니면 완화될지 좌우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 성장에 가장 많이 기여했다.일단 중국의 1분기 경제 성적표는 다소 안도감을 안겨준다. 1분기 성장률은 10.6%. 작년 1분기(11.7%)보다 1.1%포인트 둔화된 것이지만 블룸버그통신(10.4%)이나 다우존스(10.0%)의 예상치를 웃도는 수준으로 14분기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간 것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지난 4월 16일 1분기 경제 점검 국무회의에서 50년래 폭설이 강타하고 미국 서브프라임 충격이 옮겨 붙기 시작한 상황에서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고 자평했다. 모건스탠리의 중화지역담당 왕칭은 “점진적인 연착륙이 눈앞에 있다”고 평가했다. 글렌 맥과이어 소시에떼제네랄홍콩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탄력적인 성장이 아시아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주요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중국 경제가 고공행진을 이어간 것은 우선 내수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1분기 소매 매출은 2조5555억 위안(1위안은 약 14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0.6% 늘었다. 작년 1분기에 비해 증가율이 5.7%포인트 확대된 것이다. 리샤오차오 국가통계국 대변인은 “소매 매출 증가세는 수년래 가장 빠른 속도”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999년 중국 소매 지표를 집계한 이후 가장 빠른 증가세라고 분석했다. 리 대변인은 “올해 실시된 노동계약법으로 임금이 더 많이 오르고 의료보험 등 사회 보장 체계가 강화되면서 소비가 촉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소비가 7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경제 성장의 일등 공신으로 오른 데 이어 주요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수출은 증가세가 둔화돼 성장 동력으로서의 역할이 축소됐다. 1분기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전년 동기에 비해 49억 달러 감소했다.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유럽으로의 수출 증가율이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15%포인트, 10.3%포인트 둔화될 만큼 위축된 탓이다. 하지만 이머징마켓으로의 수출이 급증하면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중국 경제의 고공행진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과열 국면으로 반등할 가능성도 있다(리 대변인)는 지적이다. 과열 경제를 이끌었던 고정자산 투자의 증가세가 확대돼 이 같은 우려를 낳고 있다. 1분기 고정자산 투자는 2조1845억 위안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24.6% 증가했다. 작년 1분기 증가율에 비해 0.6%포인트 더 높은 것이다. 도시의 부동산 개발 투자 증가세가 여전히 높고 상대적으로 가난한 농촌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난 때문이다. 도시의 부동산 개발 투자는 4688억 위안으로 전년 동기보다 32.3% 증가했다. 증가율이 전년 동기에 비해 5.4%포인트 확대된 것이다. 특히 폭설 이후 부족한 철도 등 인프라의 중요성이 부각돼 투자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1분기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 경제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던 국제 금융 회사들이 다시 이를 올리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JP모건체이스는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10.3%에서 10.5%로, 골드만삭스는 10%에서 10.5%로 상향 조정했다.중국 경제가 고공행진을 하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급강하할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 대변인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영향이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데다 위안화 절상 압력이 강하고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이 계속 올라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중국 경제가 과도하게 하강할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올해 10대 중점 사업을 발표하면서 경기 과열 방지만을 거론하다가 경기 하락 방지를 처음 추가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 때문이다.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경착륙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올 들어 1∼2월 주요 대기업의 순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16.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증가율이 27.3%포인트나 둔화된 것이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중국연구부의 왕지하오는 “경제성장률은 올해 계속 둔화돼 2분기에는 10%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최악의 경우 중국 경제성장률이 올해 7%대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중국 경제는 11.9% 성장했다. ADB는 △세계 경제 둔화가 중국 수출에 더 큰 타격을 입히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 약세가 소비 위축과 은행 부실화에 따른 금융 긴축 강화로 이어지고 △인플레 압력이 높아져 공격적인 긴축으로 연결되는 식의 3가지 최악의 시나리오가 함께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중국 경제가 과열과 급랭이라는 갈림길에 있는 셈이다. 중국 경기 향방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그러나 경기 과열과 하강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물가다. 1분기 물가상승률은 8.0%로 작년 1분기에 비해 5.3%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3월 물가상승률이 8.3%로 전월의 8.7%보다는 둔화됐지만 여전히 11년래 가장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국제 곡물 가격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대외 여건도 좋지 않다. 돼지고기와 식품 가격이 주도하던 중국 인플레가 최근엔 다른 공산품으로 확산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하이얼이 가전제품 가격을 올린 데 이어 치루이자동차가 4월에 2~4%의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게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 모두 대표적인 공급 과잉 품목으로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는 점에서 그만큼 인플레 압력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불투명한 중국 경기의 향방에 따라 중국 정부의 긴축은 금리 인상보다 은행 지급준비율 인상과 위안화 절상 카드를 혼합하며 적정 수위를 찾아 나가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만 6차례 사용한 금리 인상 카드는 급증하는 핫머니 유입을 부추길 위험 때문에 꺼내더라도 올해 한두 번에 그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중국에는 올 들어서만 3월 말까지 유입된 외자 가운데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이 850억 달러에 달하는 데다 외국인 직접 투자(FDI)로 유입된 자금의 적지 않은 부문도 부동산을 겨냥한 핫머니로 추정되고 있다. 핫머니 유입은 통화 팽창 억제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빠져나갈 경우 중국 경제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요주의 대상이다. 특히 금리 인상은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아가는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경기 하강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사용하기가 쉽지 않은 카드다.반면 중국 당국은 이 같은 부작용이 덜한 은행 지준율 카드를 많이 사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1분기 경제성장률을 발표한 지난 4월 16일 인민은행은 은행 지준율을 16.0%로 0.5%포인트 인상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지난해 10차례 은행 지준율을 올린 인민은행은 이로써 올 들어서만 세 차례 이 카드를 사용하게 됐다.위안화 환율도 중국이 사용 중인 과열 억제 카드다. 위안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이미 4% 이상 오르면 달러당 6위안대 시대에 진입했다. 위안화 가치가 작년 한 해 동안 6.9% 오른 것에 비하면 절상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안화 상승 속도가 너무 빨라질 경우 수출 기업들의 도산과 이에 따른 실업자 양산 리스크가 나타 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속도 조절이 예상된다. 외관상 경제가 고공행진을 하는 중국이지만 지도부의 긴축 정책 줄타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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