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리치의 ‘로망’…‘구름 위 저택’ 돌풍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억만장자 리처드 기어는 거리의 여인 줄리아 로버츠를 자신의 펜트하우스로 데려가 최고급 샴페인 모엣 샹동과 캐비어를 나눈다. 관객들이 보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삶의 한 장면. 영화 ‘올드보이’에선 엘리베이터에서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유지태의 펜트하우스가 클라이맥스 배경이다. 넓고 세련된 그 공간은 부자가 사는 집 이상의 의미를 내뿜는다. 영화 속 슈퍼 리치(거부)들이 사는 집 펜트하우스가 한국 주택 시장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미분양이 넘쳐나는 요즘, 펜트하우스만은 숱한 화제를 뿌리며 분양 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구름 위 세계 펜트하우스. 그 꿈같은 세상으로 구경 한번 떠나 보자.“부산의 신흥 주거지로 부상하고 있는 해운대 마린시티에 건립하는 최고 72층 규모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해운대 아이파크에 청약이 쇄도해 부산지역 부동산 경기 침체를 무색케 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에 따르면 1월 21일부터 진행된 해운대 아이파크의 1, 2순위 청약을 합친 전체 평균 청약률이 165%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최고 분양가(3.3㎡당 4500만 원, 분양가 57억6000만 원)로 관심을 모은 슈퍼 펜트하우스(423.4㎡) 2가구는 1순위에서 4명이 청약해 2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연합뉴스 1월 23일자)한 채에 57억 원이 넘는 집이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는 소식에 많은 이가 놀랐다. 그것도 내로라하는 서울 노른자위가 아니라 미분양 악명이 높은 부산 지역이다. 아무리 해운대 푸른 바다를 정원 삼는 집이라지만 도대체 어떻게 지었기에 공급 가격이 수십억 원일까, 그걸 사는 이는 누구일까 궁금증이 도지는 것이 당연하다.펜트하우스(Penthouse)는 아파트나 호텔의 맨 위층에 있는 고급 주거 공간을 말한다. 보통 330㎡(100평)가 넘는 초대형 주택이다.보통 사람들은 뉴욕 맨해튼 펜트하우스가 몇 백억에 매물로 나왔다는 가십 또는 억만장자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펜트하우스를 접하곤 한다. 왠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다른 세상의 주거 공간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천문학적인 가격과 ‘억만장자의 보금자리’라는 수요의 특수성,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 때문이다.최근 국내에서 공급되는 펜트하우스도 이런 특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40층 이상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의 맨 꼭대기 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는 그곳에 사는 것만으로 저절로 발아래에 세상을 거느릴 수 있다. 얼마 전 해운대 마린시티에선 80층 높이의 아시아 최고층 펜트하우스가 나오기도 했다. ‘구름 위의 집’이 따로 없다.한 건물당 1~2채 밖에 없다는 희소성의 가치도 한몫한다. 청약통장 가입자로 청약 자격이 제한되면서부터는 추첨을 해서 주인을 가려야 하니, 경쟁자가 많을 경우 돈이 많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의 기준으로 말하는 상위 1%가 아닌, 0.1%의 슈퍼 리치들의 집이 바로 펜트하우스인 셈이다.한국 주택 시장에서 펜트하우스의 역사는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초고층 주상복합의 펜트하우스는 지난 2002년 완공된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여의도 트럼프월드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은 2003년에야 펜트하우스를 ‘신어’로 수록했을 정도다. 트럼프월드 분양을 맡았던 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맨 꼭대기 가구는 비로열층이라고 해서 1층과 함께 기피 대상이었지만 도심 밀도가 높아지고 조망권이 부각되면서 최고급 가구를 꼭대기로 전진 배치해 펜트하우스 문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외환위기 직후에 여의도 트럼프월드를 분양했던 김 사장은 당시 VIP 고객들을 초청해 헬기에 태우고 실제 펜트하우스 높이에서 조망권을 확인하게 해 분양을 성공으로 이끌었다.최근 선보이는 펜트하우스는 시설이나 인테리어, 가격 면에서 6년 전의 모델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2월 해운대에서 분양한 두산위브더제니스 80층 꼭대기의 325.30㎡(98평) 펜트하우스의 경우 총분양가가 44억2900만 원에 달한다. 3.3㎡당 4500만 원 꼴이다. 인근 해운대 아이파크 역시 423.40㎡(128평) 슈퍼 펜트하우스가 총 57억6000만 원으로 3.3㎡당 4500만 원선이었다. 이는 웬만한 강남 주상복합 아파트 뺨치는 가격인 것은 물론 전국 최고 분양가 기록이다. 또 지난 3월 뚝섬에서 공급된 주상복합 아파트 갤러리아 포레의 펜트하우스 377㎡(114평) 2가구는 3.3㎡당 분양가가 4598만 원이었다.펜트하우스 가격은 투입된 재화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가치를 나타내는 수치의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같은 단지의 다른 주택형보다 분양가 수준이 2배 가까이 높은 곳이 적지 않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펜트하우스는 원가가 얼마이므로 분양가가 얼마라는 식의 공식에서 예외”라면서 “원가 이외에도 희소성의 가치, 마케팅 비용 등이 감안돼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의미도 된다.이들 펜트하우스는 계약에 필요한 돈만 해도 웬만한 집 한 채 값을 넘어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양 개시와 함께 팔려나가는 게 요즘 추세다. 최근 분양한 부천 리첸시아 중동의 344㎡(104평) 펜트하우스 2가구는 3명이 1순위에서 지원했고 뚝섬 갤러리아 포레 역시 2가구에 2명이 지원해 마감됐다.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는 두산그룹이 국내외 귀빈을 위한 영빈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대 아이파크의 경우 2가구에 4명이 지원해 2 대 1의 경쟁률을 보였지만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 현재는 새 주인을 찾고 있다.펜트하우스는 물량이 귀한 만큼 거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수요 역시 귀해서 매매시장에서 오랫동안 대기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시세만큼은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김은경 스피드뱅크 리서치팀장은 “펜트하우스는 각 동별로 1~2가구뿐인데다 오랫동안 거래가 없는 경우가 많아 시세가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래도 공시가격은 매년 높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2007년 펜트하우스 공시가격 1위는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343㎡(104평)다. 2006년 39억9200만 원으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48억2400만 원을 기록했다. 펜트하우스 가운데 1위는 물론 전국의 모든 아파트 가운데 가장 비싼 곳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달랑 2가구뿐이어서 거래가 드물기 때문에 실제 시세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삼성동 중개업소들은 “3.3㎡당 6000만 원이 넘는다”고 입을 모은다. 60억 원이 훨씬 넘는다는 이야기다.도곡동 타워팰리스 펜트하우스는 3.3㎡당 5000만 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3차 69층에 위치한 340㎡(103평)의 경우 지난해 공시가격이 40억 원, 시장에서는 52억 원선에 시세가 매겨져 있다.펜트하우스는 시세뿐만 아니라 원래 분양가를 알기도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주상복합 아파트 청약에 반드시 청약통장을 사용하게 한 것이 지난 2004년 3월 30일부터인 만큼, 그전에 공급된 펜트하우스들은 원래 공급 가격이 오리무중이다. 분양가가 공개되지 않은 데다 대개 수의계약 또는 임의계약 형태로 판매됐기 때문이다. 타워팰리스, 현대 아이파크 등 대표적인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여기에 해당된다.베일 속에 싸인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바로 펜트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다.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부자들이 대부분인 만큼 외부로 알려지는 것에 극히 민감해 하고, 같은 동네 생활 편의 업종 종사자들도 말을 아끼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도곡동 E부동산 관계자는 “거래를 주선한 중개업자들도 소유주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고 말하고 “여기는 모든 장사치들이 말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라고 덧붙였다.이는 새로운 부유층 주거지 해운대 마린시티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동 C부동산 관계자는 “부산을 기반으로 삼는 사업가, 재일교포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영화배우 L, J 등 유명인사가 더러 있지만 펜트하우스를 소유하고 있진 않다”고 덧붙였다.서울의 주상복합 펜트하우스도 주로 기업인들이 선호하는 편이다. 지난해 심상정 의원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타워팰리스의 410㎡(124평) 펜트하우스는 삼성그룹 관계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이건희 회장의 비서인 박명경 상무 등이 주인들이다. 타워팰리스 일반 층에도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광해 전략기획실 부사장, 전용배 전략기획실 상무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삼성그룹 임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공시가격이 가장 높은 삼성동 아이파크 펜트하우스는 W병원장과 개인 사업가가 소유한 것으로 파악됐다.펜트하우스는 사는 값이 최고로 비싼 만큼 거주 비용도 최고 수준이다. ‘타워팰리스나 삼성동 아이파크는 1년 기본 유지비가 1억 원’이라고 할 정도다. 타워팰리스 410㎡형(124평형)의 경우 지난해 종합부동산세가 8000만 원 이상인 데다, 관리비만 하더라도 3.3㎡당 1만7000원선으로 한 달에 2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 그대로 아무나 살(buy) 수도, 아무나 살(living) 수도 없는 집인 셈이다.20~30대 젊은 층이 분양 받은 경우라면 증여세 폭탄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계약자 본인이 분양가의 80% 이상을 자력 부담한다는 내용의 자금 출처를 세무서에 보고하지 않는 이상 과세 표준 금액에 따라 10~50%의 세율이 적용되는 증여세를 피할 수 없다. 분양가가 41억2500만 원선이었던 갤러리아 포레 299㎡를 자녀가 분양받았다면 14억2800만 원이 증여세로 부과된다. 이나마 당첨자가 자진 신고 후 납부하지 않고 부모가 대신한다면 2배의 증여세 중과도 각오해야 한다.이렇듯 무거운 세금에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집에 산다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펜트하우스는 당분간 주택 시장의 맹주로 자리를 잡을 전망이다. 주택 건설 업계가 계속해서 최고급 기록을 경신하는 상품을 내놓으며 슈퍼 리치들의 소유욕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펜트하우스를 전면에 내세워 고급 주택 마케팅에 활용하는 트렌드도 강해질 전망이다.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좋은 입지에 지어지는 초고층 주상복합의 펜트하우스는 높은 자산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면서 “뉴욕 맨해튼, 도쿄 등지의 펜트하우스가 그렇듯 특화된 주택 영역으로 아성을 쌓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취재= 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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