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등 곡물 값 ‘껑충’…국제공조 절실

지구촌 덮치는 식량위기

쌀 등 곡물 값이 폭등하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지구촌이 식량 파동에 몸살을 앓고 있다. 각국이 가격 안정을 위해 곡물 수출 제한 조치 등을 취하면서 국제 곡물 값이 더 뛰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불안해진 시민들이 사재기에 나서는가 하면 캄보디아 이집트 등 일부 국가에선 폭동 등 소요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국제 쌀값은 올 들어 석달여 만에 50% 이상 뛰었다. 가공하기 전 쌀의 선물 가격은 올해 초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100파운드당 13.96달러(톤당 274.79달러)에 거래됐으나 8일 현재 21.45달러(톤당 422.22달러)로 급등했다. 이는 작년 전체 쌀값 상승률 33%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14년 만에 가장 가파른 오름세다. 1월에 톤당 380달러 수준이었던 태국산 중질미도 톤당 850달러를 넘어섰다. 주요 쌀 생산국들이 자국의 곡물 재고 확보를 위해 수출을 제한하면서 가격 상승세가 가속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세계 2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올해 수출량을 작년보다 11%가량 줄일 계획이다. 인도는 바스마티(길쭉하게 생긴 쌀) 품종이 아닌 쌀의 수출을 3월 31일부터 금지했고 바스마티의 최저 수출 가격도 톤당 1100달러에서 1200달러로 올렸다.각국의 쌀 수출 규제로 주요 쌀 소비국들은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최대 쌀 수입국인 필리핀은 식당에서 제공하는 밥의 양을 절반으로 줄이고 정부미 배급을 1인당 하루 4kg으로 제한하는 등 초긴축에 들어갔다. 태국의 일부 슈퍼마켓은 1인당 쌀 판매 상한을 정했다. 홍콩에선 시민들의 쌀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만의 뤼수롄 부총통은 “쌀값 폭등이 고유가보다 (대만에)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콩 옥수수 밀 등 다른 곡물 가격도 작년에 비해 상승 속도는 주춤해졌지만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곡물 값 급등의 근본적인 이유는 공급이 수요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곡물 수요는 최근 몇 년간 경제 성장 속도가 빠른 중국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지만 생산은 이상 기온이나 병충해 피해 등으로 부진하다. 유가 상승과 이에 따른 대체에너지 수요 확산도 대체에너지 원료로 사용되는 옥수수 등의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올 곡물연도(2007년 9월~2008년 8월)의 세계 곡물 재고율을 사상 최저치인 14.6%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1970년대 초 식량 파동 당시의 15.4%보다 낮은 수치다. 골드만삭스는 “계속되는 수요 증가와 공급 부족으로 인해 국제 곡물가가 계속 치솟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곡물 값 급등으로 각국의 인플레이션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1년 만에 최고치인 8.7%(전년 동기 대비)까지 폭등했다. 3월 물가도 8%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중국의 물가 상승률은 2.7%에 머물렀다. 인도의 대표적 물가 지표인 주간 도매물가는 3월 22일 기준으로 7%나 급등했다. 3년 만에 최고치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3월 소비자물가도 각각 6.4%와 8.2%로 20개월과 18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베트남 역시 지난 3월 19.4%까지 치솟은 물가가 경제의 최대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고유가에 최대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중동 국가들도 치솟는 물가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월 물가가 8.7% 급등했다. 미국의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최근 블룸버그통신 기고문에서 “신용 위기보다 곡물 값 폭등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아시아의 더 큰 위험”이라고 지적했다.물가 폭등에 따른 시위와 폭동 등 사회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불법 곡물 수출 단속하기 위해 경찰력을 투입했으며 남미의 아르헨티나에선 수출 제한에 항의하는 시위가,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 카메룬에서는 폭동이 발생했다. 이집트에서도 고물가와 저임금에 항의하는 시위와 함께 총파업 성격의 시민 불복종운동이 야당과 시민운동 단체 주도로 펼쳐졌다. 세계은행은 현재 33개국이 치솟는 식량과 에너지 값으로 잠재적인 사회적 불안에 직면에 있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이 1930년대 대공황 극복을 위해 뉴딜 정책을 취했던 것처럼 식량 위기 타개를 위한 국제사회 공조가 시급하다”며 선진국들이 중심이 된 ‘제2의 뉴딜 정책’을 촉구했다.박성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psw@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