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보다는 고용 불안 해결이 먼저’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가 크게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물가에 치우쳐 있던 것이 고용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2일 경제금융점검회의에서도 물가 불안보다 고용 불안이 더 큰 문제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배경은 간단하다. 물가 불안은 어차피 정부의 의지대로 잘 해결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외부 변수가 크게 작용하는 까닭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용 위축은 국내 경제 주체들의 심리 불안에 따른 우리나라만의 문제로 분석된다.실제로 고용은 올해 들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11월까지 28만~29만 명을 유지하던 신규 취업자 수(전년 동월 대비 증가 인원)는 12월 들어 26만8000명으로 줄었다. 또 올해 1월은 23만5000명, 2월에는 21만 명으로 급감했다. 불과 3개월 사이에 7만여 명이 줄어든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는 대목이다. 정부와 산업계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3월 신규 취업자 수는 20만 명을 밑돌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35만 개 일자리 창출에서도 크게 벗어난 수치다.고용이 나빠지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당히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들의 소극적인 움직임이다.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또 주택 경기 침체에 따른 건설 노동자 취업 부진도 한몫한다. 이 밖에 체감 경기 둔화에 따른 자영업자 침체 등도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300명 이상 사업장만 적용받던 비정규직법이 오는 7월부터 100명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됨에 따라 중소 사업장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는 점도 고용 불안에 일조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정부는 지금의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자칫 회복 불능 상태로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최근의 고용 불안이 기업들의 심리적 위축으로 발생한 만큼 이를 풀기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할 방침이다. 수출 호조 덕분에 국내 경기가 상승 기조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지만 고용 시장이 지금 추세대로 위축될 경우 소비 감소로 이어져 국내 경기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우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기업들의 투자 활성화를 적극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대기업이 나서지 않는 상태에서 일자리를 근본적으로 늘리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일자리를 크게 늘리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규제 개혁뿐만 아니라 거시정책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금리 인하 필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금리 인하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경기를 살리고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금리 인하 문제가 정부와 금융 업계의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전문가들도 정부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고용이 충분히 늘어나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소득이 줄어 경기가 침체된다”며 “고용을 적극적으로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하지만 정부의 대책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특히 대기업의 투자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이루어질지 가늠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 기조가 성장으로 급선회했다고 해서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김상헌 기자 ksh1231@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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