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성·주행 안정성 ‘놀라워라’

시승기-현대자동차 ‘제네시스’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가 지난해 12월 처음 공개됐을 때 최종 디자인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20~30대는 하이테크적인 이미지의 콘셉트카보다 보수적으로 변한 디자인에 실망을 나타낸 반면 40~50대는 ‘(튀는 부분을) 잘 눌렀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콘셉트카와 양산형 모델의 이런 차이에서 현대자동차가 고심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국내 시판 중인 수입차 3대 메이커인 메르세데스벤츠, BMW, 렉서스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성공한 사업가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다면 어떤 차가 가장 잘 어울릴지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네시스도 성공한 사업가, 명품 정장에 어울리는 ‘고품격’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같은 시기에 출시된 기아자동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하비’는 개발 기간 29개월, 개발비 2300억 원이 들었지만 제네시스는 두 배에 가까운 4년, 5000억 원이 투입됐다. 제네시스의 후륜구동 기술을 모하비가 채택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개발에 들인 정성이 보통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제네시스가 판매된 지 석 달이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 서울 도심에서 제네시스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밀려드는 주문량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신차 효과는 확실하다. 신호 대기로 정차하자 택시 운전사의 따가운 시선을, 골목길에서는 행인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느낄 수 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뛰어난 성능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뭔가 기존 국산차와는 확실히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대부분의 반응이다.출시 후 제네시스의 포지셔닝은 확실히 자리 매김한 것 같다. 과거 그랜저가 나온 이후 20년 가까이 ‘상류층’의 상징이었지만 고가의 수입차가 다양하게 들어온 지금 제네시스는 ‘성공한 중상위층’의 상징쯤 되는 듯하다.시승차는 ‘BH330 프라임 팩’으로 배기량 3300cc 중에서는 차상위 모델이다. 다만 옵션을 하나도 선택하지 않아 제네시스 TV 광고에 나오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어댑티브 헤드램프가 장착되지 않았고 전자제어 에어서스펜션(EAS), 통합 정보 시스템(DIS) 등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다. 대신 하만베커의 최고급 하이엔드 브랜드인 렉시콘(Lexicon) 오디오가 장착돼 있다. 그러나 트렁크 자동 여닫힘 등 잘 쓰지 않는 기능을 없앤 대신 차량 자체의 주행 성능을 불편함 없이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3800cc급을 테스트할 계획이었으나 주문 물량이 부족하다 보니 시승차도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BH330 프라임 팩의 기본 가격은 4920만 원이다.겉모습에서는 우선 커다란 라디에이터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여러 메이커의 국산차들 중 에쿠스 외에 이런 대형 라디에이터는 처음이다. 메르세데스벤츠 S 시리즈나 렉서스 LS 시리즈에서 보이는 최근 트렌드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SCC 옵션이 장착되지 않은 경우 라디에이터 그릴은 천사의 날개를 형상화한 듯한 곡선으로 이뤄져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치 고전적인 고딕 양식의 조각품을 보는 듯 풍부한 디테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사이드 디자인은 허리를 잘록하게 넣은 스포츠 세단의 느낌이다. 최근 트렌드를 따라간 것인지는 모르지만 앞뒤 타이어 바깥 부분을 가리고 보면 루프라인과 도어 아치의 모양이 BMW 7시리즈와 거의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만족스럽지만 리어램프의 어색함에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스마트키를 호주머니에 넣은 채 외부 손잡이의 스위치를 눌러 잠금을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사이드스커트에는 ‘GENESIS’라고 쓰인 글자에서 은은한 파랑색이 비친다. 차 문을 닫고 시동 버튼을 누르자 스티어링 휠이 내려오고, 시트가 전진하면서 운전하기 편한 자세로 세팅된다. 레그룸을 깊게 설계해 다리가 긴 사람도 다리를 쭉 뻗고 운전할 수 있다. 다만 키가 작은 사람은 시트를 최대한 운전대에 붙여야 할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의 체격이 커지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 현대자동차 측의 설명이다.이어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 스위치를 당겨 풀고 기어를 변속해 전진해 나갔다. 한국 소비자들 대부분은 현대자동차의 인테리어, 스티어링 휠 감각이나 액셀러레이터·브레이크 감각에 익숙할 것이다. 제네시스의 기본적인 감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입차들이 땅에 밀착된 느낌을 주다 보니 노면의 거친 질감이 느껴지는 반면 제네시스는 시종일관 부드러움을 유지했다.후륜구동이라 기존 전륜구동 차량과 구분되는 특성이 느껴졌다. 뒤에서 누가 떠미는 듯한 느낌이 확실하다. 전륜구동의 경우 코너링 때 차량 뒷부분이 쏠리는 느낌이 있는 반면 제네시스는 밸런스가 확실하다. 대신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때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는 전륜구동과 달리 구동축을 통해 후륜으로 동력이 전달되다 보니 반응이 약간 느리게 오는 듯한 느낌이다. 후륜에서 밀어주는 힘이 세다 보니 전륜의 느낌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체가 앞으로 기우뚱하면서 멈춘다. 그러나 고속에서는 네 바퀴에 똑같은 무게가 실려 안정된 제동이 가능하다.지면이 고르지 않은 오르막길에서 멈췄다 오를 때 뒷바퀴가 헛도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후륜구동만의 특성이다. 이 차의 운전 방식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약간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속에서의 주행 안정성도 뛰어나다. 구동축이 후륜에 있는 데다, 전면 후드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무게를 줄이고 대형 배터리를 트렁크 적재함 아래 놓아 전후 무게 배분이 52 대 48로 네 바퀴에 골고루 무게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워낙 조용하고 부드럽게 가속돼 일반 대중차의 느낌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니 순식간에 시속 140km에 이르고 있었다. 6단 자동변속기는 시속 140km 부근에서 마지막 변속이 이뤄졌다. 시속 220km에서도 흔들림이나 소음이 크지 않았다. 6단 변속기를 쓴 때문인지 그랜저보다 차체가 무겁고 최대 출력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공인 연비가 더 좋아졌다.예전 신차 발표회 때 현대차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이현순 사장은 호기심 어린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 대신 “그러지 말고 한 번 타보세요. 그러면 아실 겁니다”라고 할 정도로 주행 성능은 현대자동차가 자랑하는 부분이다.가장 놀라웠던 것은 엔진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줄었다는 것이다. 급가속 시 엔진의 굉음이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시끄럽지 않게 메아리가 들리듯 실내로 울려 퍼진다. 정속 주행 시에는 바람소리와 타이어의 마찰 소리에 묻혀 엔진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미약한 소음도 대시보드를 통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반사돼 올라오는 소리였다.고속 주행 시 바람소리도 많이 줄었다. 공기저항계수(cd)를 0.27까지 내려 공기가 소용돌이치며 내는 소리가 줄어든 것이다. 모든 차창에 이중 접합 차음 유리를 쓰고 차체 하부에 전체적으로 언더커버를 씌워 바닥 유입 소음도 최소화했다. 그랜저와 같은 엔진을 쓰면서도 출력을 높인 만큼 소음이 늘 수 있으나 확실한 소음 차단 대책으로 정숙성을 크게 높인 것이다. 다만 아직 렉서스의 정숙성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 주위 기자들의 중론이었다.SCC가 장착되지 않았지만 일반 크루즈 컨트롤이 달려 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 정속 주행을 원할 경우 세팅을 해 놓으면 좋을 듯하다. 다만 한국의 도로 사정상 앞차가 항상 시속 100km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속도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SCC가 있으면 편리할 듯하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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