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소비 집단 ‘테크파탈(Tech Fatale)’
돋보기│IT 업계 주름잡는 여성 CEO들섬세한 감각·빠른 적응력 ‘남성보다 앞서’전통적으로 정보기술(IT) 업계는 남성 최고경영자(CEO)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여성 CEO 비중이 늘어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성 CEO라고 특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IT 업계 대표적인 여성 CEO는 칼리 피오리나다. 그녀는 1999년 HP의 CEO로 영입되면서 창업자 가족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컴팩과의 합병을 성공시켰다. 1980년 AT&T 영업사원으로 시작한 그녀는 루슨트테크놀로지, 켈로그를 거쳐 HP의 CEO가 됐다. 그녀는 포천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CEO’로 5년 연속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이베이(e-bay) 멕 휘트먼(Meg Whitman)도 대표적인 IT 업계 CEO로 평가된다. 프록터앤드갬블에서 브랜드 관리를 담당했던 그녀는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서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한다. 이후 월트디즈니, FTD(Florists Transworld Delivery)를 거쳐 1998년 이베이 CEO로 취임한다. 멕 휘트먼은 취임 첫 해 8612만 달러였던 이베이 매출을 2006년 59억7000만 달러까지 끌어올렸다.국내에서도 IT 업계 여성 CEO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온라인 공연 예매 사이트 티켓링크 우성화 대표, 게임 업체 컴투스 박지영 대표 등이 대표적인 IT 업계 CEO다.업계에서는 여성들의 섬세한 감각과 빠른 변화 적응력 등이 IT 분야에서 남성보다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미래의 여성 CEO들이 더 많이 탄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유통 업체에 근무하는 박영신(28) 씨는 출퇴근 시간에 MP3플레이어를 이용해 음악을 듣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에 1시간 30분가량 게임을 즐긴다. 사진에도 관심이 있어 디지털일안반사(DSLR) 카메라도 구입해 사진을 찍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정보기술(IT)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색다르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친구들도 대부분 IT 제품을 서너 개씩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동안 게임 업체나 PC를 중심으로 한 IT 부문에서 여성 사용자는 언제나 첫 번째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IT 분야는 남성 위주로 움직였으며 제품 디자인, 마케팅 역시 남성 사용자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IT 기기를 경험하면서 자란 1980년생 이후 여성들인 ‘테크파탈(Tech Fatale)’이 중요한 소비 계층으로 급부상하면서 IT 업계가 여성 사용자들을 주목하고 있다.테크파탈은 기술(Tech)과 팜므파탈(Femme Fatale : 치명적 매력을 가진 여자)을 합친 신조어다. 테크파탈은 새로운 IT 제품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로, 마케팅 서적인 ‘마이크로트렌드’에 처음으로 등장한 용어다.테크파탈은 어릴 때부터 인형 대신 PC와 게임기를 가지고 놀면서 PC를 자유롭게 다루고 인터넷과 친숙하다. 이런 테크파탈 취향에 맞춰 IT 업체들은 제품을 내놓을 때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연관시키고 있다. 이들에게 IT 제품은 ‘어렵기만 한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오락과 업무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이는 ‘IT 기기’를 하나의 취미생활로 여기며 최신 기술과 제품 성능을 중요시했던 남성 IT 사용자들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테크파탈들은 제품 기능이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디자인이나 브랜드 등 감성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이런 경향은 IT 업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신기술 개발에 치중하던 IT 업체들이 감성적인 부분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제품 설명 대신 디자인과 색상을 다양화하고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인기 가수나 배우들을 모델로 기용하고 있다.특히 테크파탈은 기존 소비 계층과 다른 새로운 시장이라는 점에서 IT 업계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밀리언셀러가 된 ‘닌텐도 DS’ 사용자 중 상당수는 여성 고객이다. 국내에서도 지하철을 타면 게임 삼매경에 빠진 여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테크파탈들은 ‘때리고 부수는’ 것이 주류를 이루는 액션 게임 대신,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캐주얼 게임이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게임을 주로 한다. 일례로 닌텐도코리아가 출시한 ‘동물의 숲’은 적을 없애거나 어떤 보물을 찾아야 하는 미션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목적이 집안을 꾸미고 다른 캐릭터들을 사귀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인터넷 캐주얼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게임 업체들도 10대와 20대 테크파탈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음악에 맞춰 키보드를 누르는 인터넷 게임 ‘오디션’은 화려한 무대와 캐릭터를 내세워 여성 사용자들을 공략하고 있다.테크파탈 영역은 캐주얼 게임에서 주류 게임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2’는 국내 가입자 중 40% 이상이 여성이다. 등장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기를 끄는 스타크래프트도 여성 프로 게이머를 배출하는 등 게임 부문에서 여성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해외 게임 업체도 결혼과 요리 등을 주제로 한 게임을 내놓아 여성 게이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IT 기기는 회색기기로 불렸다. PC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수십 년간 PC 모니터 프린터는 회색을 고집했다. 하지만 최근 등장하는 노트북 PC나 프린터는 회색을 비롯해 흰색과 검은색의 무채색 계열뿐만 아니라 빨강 노랑 분홍 연두 등 다양한 색상을 적용하고 있다.이런 추세는 크기가 작은 휴대전화 노트북 PC, MP3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부문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휴대전화 업체의 신제품들은 십여 가지 색상을 하고 있다. 휴대전화 교체 비중이 높은 여성 고객들이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색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SCH-W2700’ 휴대전화는 24가지 색상을 제공한다. 삼성전자는 여성 사용자들이 휴대전화를 액세서리로 사용하는 취향에 맞춰 다양한 색상을 적용한 제품을 내놓았다. 휴대전화 업체들은 색상 자체를 마케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LG전자는 프리미엄 휴대전화 ‘뷰티폰’에 핑크색을 적용한 ‘뷰티 핑크’를 내놓았으며 모토로라는 주력 제품 ‘레이저’에 핑크, 라임 등 컬러 마케팅을 적용한 바 있다.레인콤의 대표적 MP3 플레이어인 ‘엠플레이어’도 10가지 색상으로 제품 기획에서부터 패션 아이콘을 지향했다. 다른 MP3 플레이어 구매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에 비해 이 제품은 판매 제품 중 60%가 여성이 구입했다. 레인콤 측은 “엠플레이어는 깜찍한 디자인과 쉬운 조작으로 여성에게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CJ홈쇼핑이 이달 초 판매한 소니코리아 콤팩트 디지털카메라 ‘사이버샷 T2’는 전체 판매 대수 1000대 중 700대가 핑크색이었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구매자 대부분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핑크색 구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세계적 IT 기업들도 여성 대상 서비스를 강화하며 테크파탈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야후는 최근 여성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와우와우닷컴(www.wowowow.com) 서비스를 시작했다. 와우와우닷컴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관심사를 토론하고 수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의 싸이월드와 같은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마이스페이스와 페이스북도 여성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전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애플 아이팟도 디자인을 중시하는 여성 고객들의 덕을 톡톡히 봤다. 세련된 디자인과 쉬운 조작성 때문에 여성 사용자들은 다른 MP3 플레이어가 아닌 아이팟의 손을 들어 줬다.가전 업체들도 제품을 개발하면서 여성 사용자들 요구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가전 업체들은 냉장고 청소기 등 제품을 개발하며 주부들이 실제로 제품을 사용해 보게 하고 불편한 점을 찾아내게 해 제품에 반영하고 있다.이형근·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