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보험 빅뱅’

지난 10월 말 삼성화재 동부화재 LIG손해보험 등 대형 손해보험사들이 2분기(7~9월)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월등히 앞선 기록이었다.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천%나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시장은 의외로 차분했다. 예상했던 일이 확인됐을 뿐이라는 반응이었다.그랬다. 보험 업계의 고성장은 이미 연초부터 짐작됐던 일이다. 무엇보다 보험료의 인상이 본격화될 것이란 이유였다. 수입이 느는 만큼 수익성이 개선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동안 높은 손해율 때문에 이익을 내기 어려운 형편이었던 것이 단번에 바뀐 것이다. 여기에 통합형보험, 저축성보험, 변액보험 등 보험 업계가 공을 들인 상품들이 인기를 모으면서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 할 것 없이 쾌속 성장의 궤도에 진입했다.하지만 이제 한숨 돌리고 주변을 살피고 내일을 대비해야 할 때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더 이상 떨어뜨릴 수 없을 정도로 손해율이 하락한 상태인 데다 주력 상품이 올해보다 잘 팔릴 것이란 보장이 없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08년 보험 시장은 다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그렇다고 역성장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올해보다 성장세가 못하다는 의미다. 2008년 보험 업계의 성장률은 손해보험이 11.4%로 4년 연속 10%대 성장을 이어갈 것인 반면 생명보험은 8.9%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험개발원은 전망했다. 주식시장의 활황에 따라 올해 생명보험의 성장을 주도했던 변액보험 부문이 주춤할 것이란 이유에서다.전체적으로 보면 총보험료는 9.7% 상승한 119조1000억 원에 달하고 보험 총 자산은 12.5% 늘어난 428조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업황이 주춤할 것이라는 전망보다 고민스러운 것은 업계의 지각변동이 예정돼 있다는 점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게 업계의 일치된 시각이다.먼저 4단계 방카슈랑스가 실시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보장성보험과 자동차보험도 은행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된다. 보험 업계는 일제히 4단계 방카슈랑스 일정을 연기할 것을 요구했다. 보험 업계가 공멸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도 발등의 불이다. 금융 업종 간 경계가 사라지면서 증권, 자산운용사, 은행과 혈전을 벌여야 한다.자통법 시행은 보험 업종 판도의 재편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금융사들이 경쟁적으로 보험 업체를 인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금융 국민은행 등이 대표적이다.국내 은행뿐만이 아니다. 외국계 은행과 산업자본도 보험사 인수에 관심이 높다. 실제로 롯데그룹이 대한화재를, HSBC은행은 하나생명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다. 현재 매각 물망에 오른 보험사만도 5~6곳에 이를 정도여서 업계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제도적인 변화가 연기되거나 취소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업계 재편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생존의 활로는 업계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미 업계는 이에 대한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 채널을 재정비하고 해외 진출 등 시장 다각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자산운용사나 투자자문사를 자회사에 편입하거나 신탁업 등 새로운 분야에 신규 진출하는 보험사들도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보험 영업만으로는 수지 타산을 맞추기 어려우며 투자 영업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상황 인식이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미 미래에셋생명이 특정금전신탁상품을 내놓으며 신탁업에 출사표를 던졌고 동양생명은 동양투신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한 상태다. 보험지주회사 설립을 서두르고 있는 메리츠화재도 자산운용사 설립을 위한 예비 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험업법 개정이 완료되면 업계의 변화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개정 법안은 보험지주회사의 허용 또는 관련 규제의 대폭적인 완화를 포함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제는 금산 분리 원칙에 대한 새 정부의 시각에 따라 개정안의 내용과 범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당장의 불확실성과 상관없이 보험업은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이견이 거의 없다. 우선 우리 사회가 급속히 노령화되고 있어 보험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 등 공적 차원의 노후 대책에 100% 기댈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개인 차원의 노후 대비 수요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노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의 증가도 보험을 찾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노령화에 따라 보험시장이 급성장했다.결국 현재 보험 업계 분위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엄청난 변화를 앞두고 필승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올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준비할 시간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곳이 살아남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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