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능·머리숱·몸매 ‘청춘을 돌려주마’

서울시 광진구에 거주하는 A 씨는 요즘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체중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비만클리닉에서 처방한 비만 치료제를 복용한 후의 변화다. 경기도 양주시에 살고 있는 B 씨도 살맛이 난다고 기뻐한다. 머리숱이 늘고 있어서다. 주위에서 ‘젊어졌다’고 할 때마다 탈모 치료제의 효과에 만족스러움을 느낀다.A 씨와 B 씨는 건강한 사람들이다. 감기 같은 잔병치레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다. 살을 빼고 탈모를 막기 위해서다. 주위에서 유별나다는 소리를 종종 듣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A 씨나 B 씨처럼 아프지는 않지만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 처방을 받는 환자 아닌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해피 드러그(Happy Drug)가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해피 드러그는 별명이 많은 약품이다. 삶의 질을 개선한다고 해서 ‘삶의 질(QOL·Quality of Life) 개선제’, 웰빙을 돕는다고 해서 ‘웰빙 의약품’, 병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과 관련이 깊다고 해서 ‘라이프스타일 드러그’라고도 불린다. 이름이야 어찌됐건 ‘아픔을 치유하는 물질’이라는 전통적인 약의 개념과 전혀 다른 것은 틀림없다. 병과 상관없이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약물이란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이름이 제각각인 만큼 해피 드러그의 범위도 제각각이다. 어디까지 해피 드러그로 볼 것인지에 대한 합의점이 없는 상태다. 애초엔 우울증 치료제만을 가리켰지만 갈수록 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 비만 치료제, 탈모 치료제, 호르몬제 등이 대표적이다.해피 드러그 시장이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그야말로 ‘소수의 유별난 사람들의 애용품’에 불과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 갑자기 부상했다. 관련 제품이 줄을 잇는 것은 물론 크고 작은 제약사들이 저마다 해피 드러그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실제로 한미약품 동아제약 현대약품 등은 벌써부터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동아제약의 발기부전 치료제인 ‘자이데나’와 현대약품의 탈모 치료제인 ‘마이녹실’이 판매 1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고 한미약품의 비만 치료제인 ‘슬리머’는 불과 3개월 만에 매출 100억 원 고지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대박 신화’를 꿈꾸고 있다.해피 드러그 시장이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각광을 받기 시작한 데에 전문가들은 대개 3가지 정도의 이유를 든다. 우선 소득수준의 향상이다. 우리 사회가 의식주 등 당장의 필요를 넘어 여유를 가지고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을 정도의 소득수준에 이르며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대우증권의 임진균 애널리스트는 “선진국에서도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해피 드러그 시장이 형성됐는데 우리의 경우 유난히 빠르게 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저축률 하락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미래보다는 지금 현재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게 해피 드러그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라고 말했다.또 다른 이유는 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업체들이 제품을 내놓고 마케팅에 드라이브를 걸면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들어 외국계 제약사들이 과점하고 있던 해피 드러그 시장에 국내 제약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해피 드러그에 대한 인지도와 접근성이 훨씬 높아졌다는 설명이다.그렇다면 제약사들이 전에 없이 적극적으로 이 시장에 열의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피 드러그 시장이 제약사들의 수익성 개선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먼저 시장의 파이가 급속히 커지고 있어 기회가 풍부하다. 발기부전 치료제만 해도 2001년 300억 원 남짓이던 시장 규모가 2008년 1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도 이 시장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연간 성장률이 12%로 의약품 전체 시장 성장률인 7%를 훌쩍 뛰어넘는다. 현재 세계 해피 드러그 시장은 600억 달러에 이른다.이익도 많이 남길 수 있는 구조다. 대부분 비급여 의약품이어서 가격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급여 의약품의 경우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정책에 따라 가격 압력이 심해질 전망이지만 비급여 의약품의 경우 이런 염려가 없다. 약제비 적정화에 따라 위축될 수익성을 만회할 수 있는 것이다.그동안 독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오리지널 신약의 특허 기간이 만료되고 있는 것도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허가 만료된 신약의 개량신약(제너릭 의약품)으로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비만 치료제가 쏟아져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보트사의 비만 치료제인 ‘리덕틸’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국내 제약사들이 이 약의 주요 성분인 시부트라민을 활용한 개량신약을 대거 내놓고 있는 것이다.사정이 이러니 해피 드러그 시장이 갈수록 큰 폭의 성장을 거듭할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특히 오리지널 신약의 특허가 만료되는 약품은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란 설명이다. 탈모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탈모 치료제의 경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의약품의 성분은 ‘미녹시딜’과 ‘피나스테리드’ 등 2가지뿐인데 최근 ‘피나스테리드’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이 성분을 이용한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제약사들의 경쟁이 심해지면 소비자 입장에선 즐거운 일이다. 품질 경쟁으로 더 좋은 제품이 개발되는 것은 물론 가격도 하락하기 때문이다. 황상연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건강보험 급여 의약품의 경우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낮기 때문에 가급적 높은 가격이 책정될수록 이익이 되지만 해피 드러그의 경우 가격 민감도가 높아 가격 경쟁이 일어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오리지널 제품을 만드는 제약사가 가격을 내린다면 국내 기업이 파이를 챙기기 어렵지 않을까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답한다. 외국계 제약사에 비해 강력한 영업력으로 충분히 실익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소 제약사들에도 기회가 있다. 대형 제약사들의 영업력이 아무리 넓고 강해도 전국 모든 병원과 약국을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분명히 ‘틈새’가 있다는 얘기다.휴온스의 송병훈 부장은 “대형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휴온스의 매출은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는 만큼 현재 상황이 중소업체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라며 “개발 경험이나 영업력, 자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특화된 기술로 돌파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제약 업계의 경쟁은 분명 소비자들에겐 이익이 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싼 가격에 쉽게 약을 구할 수 있는 만큼 오남용의 우려가 적지 않다. 벌써부터 부작용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해피 드러그는 비급여 의약품이어서 정책 당국이 관리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소비자들 스스로의 ‘현명한 소비’가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취재 = 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