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포석’…생수·커피도 노린다

지난 26일 대구를 방문한 투자 귀재 워렌 버핏은 자신의 건강비결로 ‘하루 7잔 마시는 코카콜라’를 꼽았다. 물론 실제로 그가 콜라를 그렇게 마시는지는 의문이지만, 보수적인 투자로 유명한 그는 코카콜라 주식을 무려 8%나 가지고 있다. “과거에도 마셨고 현재에도 마시며 미래에도 마실 음료”라는 이유 때문이다. 세계 200여 나라에서 팔리며 한때 연간 판매량이 5조 병으로 세계 청량음료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 막강 브랜드 ‘코카콜라’의 힘이다.한국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코카콜라는 한때 글로벌 브랜드의 대명사로, 또 현지화의 모범으로 인식돼 왔다. 특유의 ‘글로컬라이제이션’(세계화+현지화) 전략을 통해 월마트, 까르푸 같은 다국적 기업이 한국시장 정착에 실패하고 짐을 쌀 때면 항상 비교돼 왔다.또 8·15 콜라 등 국내제품이 잠시 경쟁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럴 때마다 10만 곳이 넘는 막강한 유통망을 통한 대대적 공세로 상대의 기를 꺾었다. 라이벌인 펩시콜라보다 유통망이 두 배나 컸다.하지만 지난 2002년을 기점으로 이런 영광이 ‘과거형’이 돼버렸다. ‘웰빙’ 트렌드의 영향으로 매출이 감소했고 급기야 라이벌로 생각지도 않았던 경쟁제품 사이다에 매출 1위 자리를 내줬다.대형마트마저 코카콜라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대형마트들이 자체브랜드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마트가 판매하기 시작한 ‘이마트콜라’의 가격은 코카콜라의 절반수준이다. 이마트 측에 따르면 18일부터 27일까지 직영점포에서 판매된 ‘이마트콜라’는 3만5149병, 코카콜라는 1만8658병이었다.이 때문일까. 한국 내 코카콜라의 제조, 유통, 판매 등을 책임지는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은 지난해 매출이 5137억 원, 영업손실은 244억 원을 기록하는 등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 올해는 약간의 흑자전환이 예상되지만 2003년부터 작년까지 4년 연속 순이익을 내지 못했다.이 와중에 LG생활건강이 지난 10월 17일 코카콜라를 덥석 들이켰다. 3853억 원의 인수가로 경쟁자를 제치고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을 인수한 LG생활건강은 단숨에 롯데칠성에 이어 음료업계 2위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연말까지 내부 시스템정비를 거쳐 내년 1월 1일 이 회사를 자회사로 공식 출범 시킬 예정이다.그렇다면 왜 LG생활건강은 기존의 사업과 별다른 연계가 없어 보이는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을 갑작스레 인수했을까. 이 회사의 모토는 ‘생활문화전문기업’이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화장품과 생활용품분야에서 착실한 실적을 쌓아왔다. 하지만 LG생활건강은 지난 2005년부터 더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5년 9678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던 LG생활건강의 작년 매출액은 1조328억 원이다. 올해 예상매출액(추정치)도 1조1722억 원에 불과하다. 때문에 LG생활건강은 이번 인수를 계기로 식음료 사업을 본격 육성해 ‘점프 업’의 계기로 삼는다는 속내다.먼저 LG생활건강은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을 인수한 직후 ‘콜라유전자개량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콜라 중심의 사업을 프리미엄 및 기능성 음료를 통해 확대해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을 몸짱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큰 폭의 성장이 기대되는 생수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삼다수’를 생산하고 있는 제주도 개발공사와 협의해 수출용 및 가정용 생수의 판매대행과 원수를 활용한 음료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또 강원도 고성, 동해시가 개발 중인 해양심층수 판매에 대해서도 협의 중에 있다.RTD 커피도 선보일 예정이다. RTD(Ready to Drink) 음료란 캔 또는 병으로 된 포장음료를 말한다. LG생활건강은 일본 시장 1위 캔커피인 ‘조지아’와 이탈리아 프리미엄 커피인 ‘일리’도 도입할 예정이다.또 미국에서 출시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차음료 ‘글라소’의 도입, 과즙음료 ‘미닛메이드’를 냉장주스로 개발해 유가공업체를 통해 냉장 유통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에 있다.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감귤을 이용한 새로운 음료 개발도 계획 중이다.LG생활건강 관계자는 “이전 운영사인 코카콜라아마틸의 원액매입가격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평균의 30% 이상)이어서 실적악화의 주 요인이 됐다”며 “본사와의 협상을 통해 원액 매입가격을 현실화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그는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은 몇 개의 보틀링사를 운영하는 아마틸 사에 있어 듬직한 첫째도, 귀여운 막내도 아니었다”며 “한국시장을 중요도가 떨어지는 시장으로 보고 영업력을 집중하지 않아 한국소비자에게 맞는 신제품 출시 등을 계속 미뤄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참에 미국 코카콜라 본사의 지분참여도 논의되고 있다”고 귀띔했다.사실 LG생활건강이 한국코카콜라보틀링 인수를 통해 가장 기대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유통채널의 확보’다. 전국적인 물류유통망을 확보한 한국코카콜라보틀링과 LG생활건강의 기존 물류유통망이 합쳐지면 70~80%에 달하는 전국적인 도·소매상 커버리지가 확보된다는 계산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이처럼 구축된 광범위한 유통력은 생활용품·화장품·식음료뿐 아니라 각 사업의 경계에 위치한 신생분야와 최종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접분야 진출을 위한 든든한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LG생활건강이 중장기 과제로 가장 노리고 있는 사업은 바로 OTC사업이다. OTC(Over The Counter)라 불리는 ‘의약외품 및 일반의약품’ 시장은 소화제, 두통약 등 일반의약품을 의사처방없이 슈퍼 등 소매채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시장이다. 현재 한국에서 이 의약품들은 약국에서만 살 수 있지만 미국 일본에서는 일반 소매점 판매를 허용하는 추세다.OTC 상품의 판매가 허용되면 할인점, 편의점, 슈퍼 등 다양한 채널에서 의약외품이 판매되므로 이들 채널의 장악력이 시장진출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때문에 LG생활건강은 한국코카콜라보틀링과 기존 유통망의 시너지를 통한 강력한 유통망을 활용, 훗날 본격화될 의약외품 사업의 초석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또 한국콜라의 막대한 부동산도 LG생활건강이 욕심내는 부문이다. LG생활건강은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을 인수한 직후 하남물류창고의 부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순식간에 100억 원 이상의 장부상 수익을 올렸다.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은 전국의 노른자위에 수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이 밖에 5만 평 규모에 이르는 여주공장도 인근의 개발붐으로 땅값이 오르고 있어 자산은 더 증가할 것”이라 말했다.물론 LG생활건강의 한국코카콜라보틀링 인수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조윤정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10월 17일 “인수에 약 2500억 원의 자금이 필요한데 이는 총자기자본 대비 78%에 이르는 규모로 과도하다”면서 “이런 부담을 해소시켜 줄 만큼 높은 성장성이 기대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여성적인 화장품과 웰빙에 역행하는 콜라와의 이미지 충돌도 경영진이 극복할 과제이며, 음료시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업체 간 과당 경쟁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롯데칠성 해태음료 등 기존 음료업체의 ‘발목잡기’도 충분히 예상되는 암초다.하지만 이미 주식시장에선 LG생활건강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새다. 주가가 급등세를 타고 있는 것. 26일 18만 원대에 머물던 LG생활건강의 주가는 11월 1일 현재 21만5000원을 기록했다. 한국희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10월 31일 보고서를 통해 “목표주가를 25만2000원으로 상향한다”며 “한국코카콜라보틀링 인수에 따른 기업 가치 상승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SK증권과 노무라증권도 ‘사자’를 택했다.120년 전 소화제와 두통약으로 발명돼 지금은 웰빙시대의 ‘이단아’로 몰리는 코카콜라가 LG생활건강의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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