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경제의 거울이라고?…‘No’

주가지수 반토막 나도 GDP ‘껑충’… 묻지마식 투자가 주가 올려

한국 증시의 방향을 알려면 중국 증시를 봐야 한다.’여의도 증권가는 중국 증시의 영향력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코스피지수의 조정 불가피론에는 중국발(發) 악재가 감초처럼 끼어든다.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증권가의 논쟁 이슈로 떠올랐다는 사실 자체는 중국이 자본시장에서도 이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중국 증시의 글로벌 영향력을 주장하는 근거는 다양하다.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증시가 흔들렸는데 세계가 큰 영향을 받은 건 당연한 게 아니냐는 막연한 해석도 있다. 해외 증시에 상장하는 중국 기업이 늘면서 중국 증시가 세계 증시에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중국 증시의 조정은 경제의 위축 우려를 반영한 것이고, 이는 원자재 수입을 크게 줄여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중대한 오류가 있다. 중국의 실물경제를 중국 증시와 동일시하는 게 그것이다. ‘증시는 경제의 거울’이라는 기본적인 명제를 중국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제의 움직임이 국내에 영향력을 발휘하듯이 중국 증시 역시 국내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그러나 중국 증시가 개장된 1990년대 초 이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주가 상승률 그래프를 보면 이 같은 인식에 오류가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중국 증시를 대표하는 상하이종합지수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반 토막 났지만 이 기간 중 중국의 GDP는 46% 성장했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 2001년 정점을 찍은 후 2003년까지 내리막을 걷다가 반등을 시작했으나 2004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고 2005년 6월이 돼서야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꾸준한 급등세를 보이며 올 들어선 사상 최고치 행진을 벌이고 있다. 중국 수출의 58.2%를 현지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 증시에 상장한 1400여개 사 중 외국계 기업은 전무하다는 사실도 중국 증시와 경제의 괴리를 보여준다.중국 증시의 움직임을 경제의 펀더멘털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중국 경제의 고공 행진을 반영한다기보다는 유동성 장세가 강하다는 것이다. 절간의 중까지 투자 대열에 합류하는 등 하루에 30만 개 이상의 주식 계좌가 개설되면서 이미 계좌 수가 1억 개를 돌파했고 지난 4월에만 중국의 개인 저축이 1674억 위안(약 20조880억 원) 감소해 저축에서 이탈한 자금의 상당 부분이 주식 투자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저축이 감소한 것은 중국 증시가 과거 사상 최고치를 누렸던 2001년 이후 처음이다. 올 들어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으로 증시로 돈이 몰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실제 중국 증시의 거래 대금은 최근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증시 전체 거래 대금보다 앞선 것이다. 중국인들은 주가가 싸다는 이유로만으로 주식을 산다. 이들은 돼지고기 값과 비교해 주가를 평가한다. 돼지고기 한 근에 6위안(730원), 이보다 싸면 싸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적자 기업들의 주가까지 급등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과잉 유동성과 ‘묻지마식’ 투자가 중국 증시의 급등을 낳은 것이다.최근 중국 증시가 금리 인상 같은 긴축 조치보다는 증권거래세 인상이나 양도 차익 과세처럼 투자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조치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중국 당국이 5월 18일 긴축 정책 3종 세트(금리 인상, 지급준비율 인상, 위안화 변동폭 확대)를 내놓은 다음날 1.2% 상승으로 마감한 반면 증권거래세 인상 발표 다음날인 5월 30일 6.5% 폭락한 게 대표적이다. 올 들어서만 금리를 5번, 지급준비율을 8번 상향 조정했지만 달리는 증시를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중국 증시와 경제 간의 괴리는 중국 증시가 세계 증시에 메카톤급 영향력을 갖는다는 주장이 과장돼 있음을 보여준다.물론 중국이 세계 증시에 충격을 줄 만큼의 영향력이 없다는 건 아니다. 중국의 ‘증시’가 아닌 ‘경제’의 긴축은 글로벌 증시의 악재로 통한다. 세계는 2004년 4월을 차이나 쇼크로 기억한다. 당시 원자바오 총리가 유럽 순방 전 로이터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강력한 경제 긴축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국제 원자재 시장의 블랙홀로 떠오르며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 시작한 중국의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4개월여 만에 24% 급락했다.하지만 최근 중국 증시 조정론은 올 들어서만 상하이종합지수가 118% 이상(24일 기준) 오른 상태에서 중국 당국의 주식 투자 자금 감독 강화 움직임과 주식 양도 차익 부과 소문 등이 악재로 작용하면서 불거지고 있다. 중국 경제보다는 증시 자체의 문제라는 얘기다.일각에선 중국 증시의 조정은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세계 증시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중국 증시의 부(富)의 효과가 선진국에 비해 크게 작은 점을 간과하고 있다. 중국의 가계가 보유한 주식은 가계 금융자산의 20%에 불과하다. 미국은 절반이 주식이다. 최근 모건스탠리가 상하이종합지수가 5월 말 대비 30% 하락해도 소비나 기업 투자가 크게 악화되지 않을 것으로 분석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특히 중국 경제는 올해도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 유동성을 넘치게 만드는 무역 흑자도 작년 1770억 달러에서 올해 3000억 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이 때문에 국내 증시의 방향을 보기 위해선 중국 증시를 볼게 아니라 중국 경제를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실제 최근 국내 증시의 주도주로 꼽히는 조선 기계 등은 중국 경제의 고공 행진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실적 호조에 힘입은 것이다. 따라서 중국 증시가 무너진다고 중국 관련주로 꼽히는 이들 종목에 암운이 드리운다는 해석은 오류일 수밖에 없다.그렇다고 중국 증시의 조정이 경제와 무관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중국에서는 과잉 유동성에 의한 증시 급등과 관련,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자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이 1990년 전후 3%까지 상승한 물가 수준과 3%대의 초과 유동성(경제성장률-대출금리) 축소를 위해 정책금리를 2.5%에서 6%로 대폭 인상함에 따라 버블이 붕괴되고 경제가 침체된 경험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물론 중국 자본시장이 개혁을 통해 발전하면서 과거에 비해 경제를 더욱 잘 반영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가의 고공 행진을 상장사의 수익성과 연결시키는 분석이 자주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올 들어 지난 9월 말까지 중국 상장기업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80%나 증가했다고 최근 중국 언론이 보도했다. 상하이와 선전 증시에 상장된 상장사 중 최근까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387개 기업들의 올 들어 9월 말까지 매출은 6971억 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24%, 순이익은 81억4000만 달러로 80% 늘어났다. 얼마 전 “중국 증시가 점차 경제의 거울이 돼가고 있다”고 갈파한 중국의 저명 경제학자 리닝 베이징대 교수의 말은 중국 증시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오광진·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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