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는 M&A 행진…야망의 끝은 어디?

전 세계 60여개국에 퍼져 있는 약 32만 명의 종업원이 쉼 없이 만들어내는 철강 제품의 생산량은 한 해 1억1000여만 톤, 세계 2위인 신일본제철의 3배 규모에 달하는 ‘메가 컴퍼니’ 아르셀로 미탈의 현주소다. 성장 비결은 단 하나. 지칠 줄 모르는 ‘인수·합병(M&A)’이다. ‘걸리면 먹히는’ 공룡 아르셀로 미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해 철강산업의 내일을 점쳐본다.세상엔 두 곳의 ‘타지마할’이 있다. 하나는 인도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우타르프라데시 주(州)에 그의 애비(愛妃)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며 세운 ‘타지마할’이다. 인도 전역을 지배했던 이슬람의 영광을 뽐내기라도 하듯 1632년부터 무려 22년 동안 제국의 재보와 미술 공예품을 한데 모아 건설된 ‘세계문화유산’이다.또 다른 타지마할은 그로부터 40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지난 2004년 영국 런던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21세기의 강철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세계 5위의 대부호가 무려 1억2000만 달러라는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며 사들인 저택에 ‘타지마할’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켄싱턴 지역에 지어진 이 초호화 저택은 차량 2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보석으로 장식된 지하 수영장도 갖추고 있다. 이 저택은 로이터통신의 창업자 폴 로이터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인도 시골 출신의 ‘강철왕’은 한때 조국을 지배했던 대영제국의 심장부에 자신만의 거탑을 세우며 그렇게 힘과 야망을 세계에 알렸다. ‘강철왕’의 이름은 락시미 미탈(57). 철강회사 아르셀로 미탈의 오너다.그가 이끄는 아르셀로 미탈은 현재 세계 1위의 철강 생산 기업이다. 2006년 철강 생산량 1위 기업인 미탈과 비슷한 규모의 2위 기업 아르셀로의 M&A를 통해 탄생된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885억7600만 달러, 순이익은 79억7300만 달러에 달한다.유럽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60여개국에 퍼져 있는 32만 명의 종업원이 쉼 없이 만들어내는 철강 제품의 생산량은 한 해 1억1000만 톤 규모, 세계 2위인 신일본제철(3370만 톤)의 3배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공룡’이다.아르셀로 미탈의 역사는 말 그대로 락시미 미탈의 M&A사(史)다. 인도 변방의 하층 상인계급 출신의 락시미 미탈은 자기 손으로 용광로 한 개 만들지 않고 M&A를 통해 불과 16년 만에 세계 최대의 철강 회사를 손에 쥐었다.그는 “공장을 짓는데 2~3년씩 걸리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말할 정도다. 올해만 해도 그는 벌써 멕시코 최대 철강 업체인 시카르차를 인수했고, 미국 3위 제철사인 AK스틸도 인수를 추진 중이다.락시미 미탈은 1950년 인도 북부 라자스탄 사둘푸르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1960년대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빈촌이었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콘크리트 바닥 위 로프로 만든 침대에서 생활해야 할 만큼” 가난했다.아버지 모한 미탈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콜카타에 5만 톤 규모의 소형 전기로를 가동하는 철강 회사 이스팟의 운영을 맡으면서 집안 사정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강철왕’을 향한 여정도 시작된다.1969년 틈틈이 집안일을 돕던 미탈은 명문 자비에르대학 졸업과 동시에 아버지 회사에 정식으로 취직했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1972년 인도 정부가 철강 산업의 국영화 조치를 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당시 스물두 살의 락시미 미탈을 “사업 환경을 조사해 보라”며 인도네시아로 보냈다.인도네시아는 그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그는 당시 일본 가전업체들이 값싼 노동력, 지리적 이점, 풍부한 자원의 삼박자를 갖춘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을 보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1976년 그와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의 부도난 철강 회사를 인수해 ‘이스팟 인도’라는 제철 회사를 설립했다. 6만5000톤 규모의 작은 공장이었다. 그는 이민자 등을 활용해 원가를 낮추면서 실적을 높였다.회사는 차근차근 성장해갔다. 그러나 미탈은 전기로의 원료로 들어가는 고철의 가격 변동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서 찾아 나선 것이 ‘직접환원철’이라는 대체연료다. 그는 당시 직접환원철을 중남미 트리니다드토바고의 국영 철강 회사 ‘이스콧’으로부터 조달받았는데, 이 회사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이마저도 공급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락시미 미탈은 이참에 아예 이스콧을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 트리니다드토바고 정부도 “망하는 것보다는 낫다”며 30대 후반의 그와 10년 임대 계약을 맺었다. 락시미 미탈의 ‘M&A 신화’가 시작된 1989년의 일이다. 그는 대대적인 경영 혁신을 통해 가동률이 30%에 불과하고 하루 100만 달러씩 적자를 내던 ‘이스콧’을 1년 만에 흑자 회사로 돌려놓았다.이스콧의 성공 이후 미탈은 세계 시장 진출을 열망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인도나 인근 지역에서 사업을 하기를 원했다. 가족과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미탈은 결별을 택했다. 미탈은 아버지 회사 이스팟의 해외 사업부를 물려받아 회장으로 취임했다.멕시코와 캐나다의 국영 철강 회사 인수를 거쳐 이듬해인 1990년 미탈은 큰 ‘베팅’을 했다. 카자흐스탄의 쓰러져 가는 국영 철강 회사 카르멧을 인수한 것이다.당시 철강 업계는 ‘미탈이 이번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자흐스탄의 적은 철강 수요와 생산성 낮은 근로자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탈의 생각은 달랐다. 제품은 인접한 중국에 팔면 되고 근로자는 교육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미탈의 예상은 맞았다. 중국의 경제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1년 만에 9000만 달러의 순익을 냈다. 카자흐스탄 국민총생산의 9%에 달하는 규모다.‘베팅’은 대성공이었다. 이후 미탈은 1997년 지주회사 ‘이스팟 인터내셔널’을 창립해 뉴욕과 암스테르담 주식시장에 상장, 대규모 자본을 확보했고 1998년 미국 6위의 철강회사 인랜드(생산량 600만 톤)를 인수했다. 2001년부터는 동유럽과 아프리카의 국영 철강 회사 ‘공략’에 나섰다. 루마니아의 시덱스, 체코의 노바헛,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스코르, 폴란드의 포라스틸 등을 1년에 하나씩 사들였다.2004년은 락시미 미탈이 ‘강철왕’으로 등극한 해다. 그는 자신이 소유하던 이스팟과 LNM홀딩스를 통해 미국 최대의 철강 기업 인터내셔널스틸그룹(ISG)을 인수해 연간 5000만 톤을 생산하는 세계 1위의 다국적 철강 기업 미탈스틸을 탄생시켰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캐나다의 스텔코,우크라이나의 크리보리스틸,중국의 후난발린스틸을 연달아 먹어치웠다.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락시미 미탈에게 물었다. “세계 최고의 철강 회사 회장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공헌 활동이 너무 부족한 것 아닙니까?” 미탈은 이렇게 답했다. “인류애를 생각하기엔 아직 너무 젊습니다.” 락시미 미탈은 올해 나이 57세다.그는 한번 인수 타깃을 정하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다.일례로 미탈이 카자흐스탄 철강 공장을 인수할 때 1억 달러의 자금이 계약을 알선한 업체에 커미션으로 건네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미탈이 루마니아의 최대 철강 회사인 시덱스를 인수할 때에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루마니아 총리에게 미탈에게 협조해 달라는 서한을 보낸 이른바 ‘스틸 게이트’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하지만 미탈 회장은 기업 인수에 대해 명확한 3대 원칙을 갖고 있다. ‘기존 회사와의 시너지 극대화 가능성’, ‘저원가 생산 가능성’, ‘고부가가치 생산 잠재력’이 그것이다. 그의 진정한 성공 원인은 ‘치밀함’이다. 그는 ‘파르타’로 불리는 고대 인도의 재무 관리 방식의 신봉자다. 그는 파르타 방식에 따라 매일 저녁 일과 후 관리자들과 함께 미리 정해진 원가 및 매출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회의를 갖고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한다.또 모든 구매 주문을 유럽 본사가 취합해 한꺼번에 대량 주문해 원재료 구입 비용을 낮추고 있다.그는 뛰어난 법률 지식과 협상 기교를 가지고 있다. 그와 딜을 해 본 한 국내 철강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미탈이 변호사 없이 담판을 짓자고 해 ‘화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그게 아니라 법률 지식이 변호사 뺨칠 정도여서 당황스러웠다”고 말한다. 또 “비행기 예약 시간을 내밀며 오후 3시까지 협상을 마치자고 했다. 하지만 압박이 잘 통하지 않자 새벽 4시까지 협상을 미뤘다. 서둘렀으면 당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M&A의 화신’ 락시미 미탈은 M&A 만을 위한 전담팀도 따로 두고 있다. 미탈 회장을 포함해 CFO(최고재무관리자) COO(최고운영책임자) 3인이 직접 주관하는 운영팀은 최고 수준의 M&A 전문가가 동원되는 상설 기구다.이를 기반으로 2006년 1월 락시미 미탈은 마침내 2위 아르셀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르셀로 이사회는 물론 최대 주주인 룩셈부르크 정부, 공장이 있는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정부와 각국 정치인들을 한결같이 미탈스틸과 그를 성토하고 나섰다. 시민들도 “유럽의 왕관을 빼앗으려 한다”며 흥분했다. 애널리스트 역시 “비슷한 덩치의 미탈과 아르셀로의 합병은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미탈은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을 경원시하는 유럽을 휘젓고 다니며 합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바로 ‘구매력 강화’와 ‘수급 조절’이다. 아르셀로 미탈의 철강 생산량 1억1000만 톤은 역사상 최대 규모다. 하지만 세계 철강 생산량 전체로 보면 아직 10분의 1에 불과하다. 신일철, 포스코 등 상위 5대 철강사의 생산량을 모두 합쳐도 18%정도다.그는 “철광석 생산량의 72%를 차지하는 BHP빌리턴, 리오틴토, CVRD 같은 메이저 업체들은 합병을 통해 판매 협상력을 키우고 있다”며 “구매자인 철광석 업계는 조각조각 나 있어 협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철강을 공급받아 제품을 만드는 대표적 업종인 자동차 빅 5의 점유율은 59.7%에 달한다. 철강 제품의 가장 큰 수요자인 자동차 회사 역시 철강 회사에 가격 압박을 하고 있어 생산 판매량의 관리를 통한 가격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는 그가 끊임없이 M&A를 지속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아르셀로에 도전장을 내민 지 불과 5개월 후. 아르셀로와 미탈은 한 회사가 됐다. 아르셀로는 러시아 철강 회사 인수를 공언하면 반전을 꾀했지만 주주들은 예상치를 뛰어넘는 330억 달러(추정치)를 인수 금액으로 써낸 미탈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1억1000만 톤 규모의 생산량을 가진 ‘공룡’이 탄생했다.‘제대로 된 시너지 효과가 가능할까’라는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르셀로 미탈은 승승장구하고 있다.아르셀로 미탈이 발표한 2분기 결산에 따르면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9.9% 증가한 27억2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아르셀로 미탈이 시장 예상 주당순이익(EPS)인 1.84달러를 상회하는 1.97달러의 실적을 달성한 것. 또 아르셀로 미탈의 2분기 실적이 시장의 예상치를 상회하면서 주가 역시 2.09% 상승하면서 마감됐다.아르셀로 미탈의 성장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아르셀로 미탈이 최근 발표한 성장 전략에 따르면 철강 판매량을 2006년의 1억1100만 톤에서 2012년에는 1억3100만 톤으로 약 2000만 톤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연간 50억 달러 이상을 계속 투자할 계획이다.특히 생산 비용이 낮은 브라질 우크라이나 등 개도국에서의 증산을 중심으로 향후 지속적인 수요 증대가 예상되는 아시아 아프리카 CIS(독립국가연합) 지역에서의 출하량을 2000만 톤에서 3000만 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이를 위해 아시아 아프리카 CIS 지역 철강사에 42억 달러를 투자해 생산 능력을 확장하고 설비를 효율화한다는 방침이다. 락시미 미탈 회장은 2012년 세계 조강 생산량은 2006년에 비해 20∼30% 증가한 15억∼16억 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이들 계획은 대부분 현재 진행 중이거나 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제철소 신·증설 계획을 중심으로 출하 목표를 정한 것이어서 M&A를 통한 생산 증가분은 포함돼 있지 않다.포스코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향후에도 지속적인 M&A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여 철강 기업에 대한 M&A가 이뤄질 경우 2012년 조강 생산은 1억5000만 톤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아르셀로 미탈은 석유, 철강 원료와 철강 가공 분야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대한 M&A를 추진하고 있다.‘전통의 강자들’과의 전략적 제휴도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한때 M&A설까지 돌았던 이들 회사와의 전략적 제휴는 아르셀로 미탈이 더 이상 ‘몸집 불리기’에만 몰두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미탈은 자사가 투자한 광산에서 철광석과 유연탄의 50%를 자체 조달할 정도로 원가 경쟁력이 뛰어나지만 일반재 및 저급재 위주의 상품 구성은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 때문에 미탈은 자동차용 고급 철강재 중심으로 상품 구성을 재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포스코 및 신일철과의 제휴를 추진해 왔다.일례로 일본 자동차 업체의 유럽 공장에서 사용될 철강은 신일본제철이 아로셀로 미탈에, 유럽 자동차 업체의 아시아 공장용 철강 제품에는 아르셀로 미탈이 신일본제철에 기술을 공여한다.이와 더불어 두 회사는 함께 출자할 북미의 자동차용 강판 합병회사 사업도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미탈과 신일본제철은 북미에서의 합작사업 확대 외에도 중국 상하이시에서 바오산강철을 포함한 3개 회사가 공동으로 전개하는 자동차용 강판 합병 사업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포스코와도 마찬가지다. 올해 2월 로랜드 융크 미탈 경영위원이 포스코를 방문한 뒤 대화 채널을 복구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으며 포스코도 일정 부분 이에 응할 전망인 만큼 양사의 협의 논의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취재=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협찬=po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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