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이 담긴 침구로 월드 베스트 비상 ‘꿈’

한국적 디자인에 첨단 기능 접목…중국 등 해외 진출도 ‘척척’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신망애복지재단. 무의탁 지체장애인들을 돌보는 곳이다. 정신지체 지체장애 뇌병변 등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장애인 약 80명이 재활의 꿈을 안고 생활하고 있다. 이곳을 해마다 찾는 젊은이들이 있다.(주)이브자리에 입사한 신입사원들. 이들은 이곳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목욕을 도와주며 장애인들과 함께 일정 기간 생활하는 수습 과정을 거쳐야만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다.서울 지하철 1호선 회기역 바로 앞에 이브자리 본사가 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이브자리를 단순히 이불을 파는 업체로 여긴다. 하지만 이 회사가 부설 연구소와 협력연구소를 포함해 무려 3개의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불이란 천에다 적당한 내용물을 넣어 꿰매면 끝나는 단순한 제품인데 웬 연구소란 말인가.게다가 이 회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한복 디자이너인 이영희 씨,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세계 정상급 홈패션 디자이너인 박홍근 씨와 디자인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더욱 의문이 든다.이브자리는 이불 요 베개 침대커버 등 침구를 만드는 업체다. 하지만 이 회사는 단순한 침구류가 아닌 ‘혼이 담긴 제품’을 만드는 업체다. 연구소를 3개 운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디자인연구소에는 본부 소속 20여 명과 프리랜서 디자이너 10여 명이 일한다. 이들은 연간 900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디자인을 개발해 이중 5차례의 품평회를 거쳐 가장 아름답고 기능적으로 뛰어난 것만을 제품화한다. 단순한 이불이 아니라 첨단 디자인 감각이 살아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포르쉐나 BMW 자동차, 뱅앤올룹슨의 가전제품 디자인에 열광하듯,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디자인과 색상의 침구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다.수면환경연구소는 직원 3명과 수십 명의 외부 전문가들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장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는 제품을 연구하고 있다. 사람은 숙면을 취해야 낮에 정신을 집중해 일할 수 있다. 숙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온도 습도 소리 조명 향기 등 다양하다.거기엔 침구도 빠질 수 없다. 요가 불편하고 이불이 무거우며 베개 높이가 잘 맞지 않으면 잠을 뒤척이게 된다.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다. 이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쾌적한 수면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침구 개발에 나서는 것이다. 이의 일환으로 한국수면센터와 공동으로 코골이 방지용 베개도 연구하고 있다. 기도를 막지 않는 자연스러운 목의 자세를 연구해 이를 최적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베개를 내놓겠다는 것이다.고춘홍(57) 사장은 “사람은 누워 있을 때도 서있는 자세와 같은 머리 등뼈 다리의 각도와 자세를 유지할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며 “이를 위해 이불 요 베개 등의 강도와 무게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한다.자본 일부를 투자한 넵(NEB)기술연구소는 첨단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넵은 나노(Nano) 환경(Environment) 바이오(Bio)의 앞 글자를 딴 연구소다. 이곳에선 쾌적한 수면을 유도할 수 있는 침구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이 회사가 침구 업체이면서 동시에 벤처기업이자 기술혁신형 기업(이노비즈)으로 선정된 것도 이런 연구개발과 관련이 있다. 이 회사는 분사된 제조업체들로부터 주문 제작한 침구류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독일제 파라디스 이불과 일본 로프티의 베개, 그리고 에스프리 브랜드의 제품도 취급한다. 이는 첨단 침구 기술을 국내 시장에 선보이고 또한 그 정신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파라디스 이불의 경우 천은 실크, 내용물은 아이더 덕(Eider Duck: 남극오리)의 앞가슴털이다. 이 이불의 무게는 아주 가볍지만 보온 효과가 무척 뛰어난 소재여서 허영호 씨가 남극 탐험에 나섰을 때 덮고 잤다는 바로 그 이불이다.디자인은 모던한 스타일과 한국적인 스타일 두 가지가 주류를 이룬다. 고 사장은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이브자리’ 이외에 ‘미단’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한국의 전통적인 색상과 디자인을 갖춘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고 사장은 “최근 중국 상하이에 매장을 열었는데 전통적인 한국 디자인에 중국인들이 열광하는 것을 느꼈다”며 “이를 계기로 중국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공략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이 회사의 제품은 신세계 롯데 현대 등 주요 백화점과 전국 500여 개 대리점을 통해 판매된다. 작년 매출은 소비자가 기준으로 약 1200억 원에 이른다. 종업원은 자체 직원이 200여 명이며 관계사와 판매점을 합칠 경우 1000명이 넘는다.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고 사장은 ROTC 복무를 거쳐 처음에는 맞춤 구두 제작을 시작했다. 일명 살롱화다. “건축의 핵심이 디자인과 기능인데 구두 역시 디자인과 기능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1976년 서울 전농동에서 직원 5명으로 이브자리를 창업했다.창업 당시 브랜드는 ‘꽃사슴’이었다. 이후 백합이라는 브랜드로 바꿨다가 이브자리라는 사명과 브랜드는 1986년에 만들었다. 이브자리는 원래 ‘이브(Eve)의 자리’였다가 이를 줄여 만든 조어다. 이부자리에서 나온 단어가 아니지만 공교롭게 이부자리와 발음과 어감이 비슷해 처음엔 상표를 등록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사장은 “이브자리의 강점은 디자인과 기능성에 대한 연구, 그리고 강력한 네트워킹”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세계 어느 곳에 어떤 소재가 있고 이를 가공할 수 있는 업체가 있으며 뛰어난 디자이너가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라고 말한다. 이를 적절히 활용해 가장 뛰어난 침구류를 보급하는 게 그의 목표다.그는 또 “침구는 신용을 파는 비즈니스”라고 설명한다. 이불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소비자는 알 수 없다. 그래도 그 안에 최고 품질의 소재를 사용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높여줘야 하는 사업이 바로 침구 사업이라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고 사장은 정직한 경영, 신뢰받는 경영을 강조한다. 안 보이는 곳을 더 중시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이브자리의 최대 주주는 종업원들이다. 전체 지분의 약 50%를 종업원들이 갖고 있다. 고 사장의 개인 지분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이브자리 종업원 개개인은 어느 기업 못지않게 실력과 열정을 갖고 있다”고 고 사장은 설명한다. 또 도전정신으로 충만하다.이들 가운데 한 해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직원이 무려 60명이 넘는다. 고 사장 역시 5시간 내 마라톤 풀코스 완주 경험이 20회가 넘는다. 나이 마흔을 넘겨 스노보드 암벽타기 산악자전거 윈드서핑에 도전했고 그것을 즐긴다.그러면서도 고 사장은 그 어느 회사보다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나무 심기와 사회복지기관 돕기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나무 심기는 국내 여느 회사보다 많이 해 왔다. 그러나 이런 활동을 ‘왼손이 모르게’ 해 왔다. 임직원들이 함께 봉사활동에 나선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고 사장의 경영 목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침구 업체”지만 경영 철학은 봉사라는 단어로 함축된다. 고객에 대한 봉사, 직원에 대한 봉사, 사회에 대한 봉사를 가장 높은 가치로 삼고 있다. 이브자리는 디자인과 품질 글로벌 네트워킹과 봉사를 네바퀴로 삼아 세계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많은 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아름다운 이불을 덮고 잘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창업: 1976년 본사: 서울 휘경동 본사 직원: 200여명(대리점 포함시 1000여명)주요 사업: 이불 요 베개 등 침구제품 매출: 약 1200억 원(작년 대리점 기준). 약력: 1950년생. 68년 춘천고 졸업. 73년 한양대 건축공학과 졸업. 76년 이브자리 창업 및 대표(현). 포상;1989년 100만 달러 수출탑. 2003년 디자인벤처 인증. 2004년 재경부장관상(소비자의 날) 및 철탑산업훈장(숲가꾸기). 2006년 로하스 인증. 2007년 이노비즈 인증. 대한민국 녹색경영대상 및 마케팅대상(디자인리더). 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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