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시장 ‘먹구름’…천둥·번개 피해야

지수 2000~2200이 분수령… 달러 약세·인플레와의 싸움 등 변화 주시

자산 시장에서 투자자와 거래자는 다른 개념이다. 투자자가 자신의 영감과 통찰력을 반영해 자산에 투자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거래자는 매매의 기술, 즉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자산을 매수해 비싼 가격에 파는 기술을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관점에서 주식시장 참여자들을 구분하면 이 차이는 좀 더 명확해진다.가령 단순히 자산 가치가 시가총액보다 많기 때문에, 혹은 자본 이익률이 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그 기업을 매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투자자라면 투자자보다는 거래자에 가깝다. 이 투자자는 왜 해당 기업의 주가가 시장에서 저평가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없었기 때문이다.반대로 가치 투자 교과서에서 흔히 보는 영감의 사례들은 투자자의 행동에 가깝다. 비타민 음료수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리는 것을 보고 해당 기업의 주식을 매수한다든지, 혹은 인스턴트 커피 공급 업체가 가진 독점적 지배력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든지, 부동산 시장의 상승을 보고 부동산 자산이 많은 기업의 주식을 매수하는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이렇듯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은 투자자마다 다르고 그 영감의 범위도 각각 다르다. 즉, 100명의 투자 판단엔 100가지의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지 교범처럼 재무제표를 펼쳐들고 단순히 방정식을 풀듯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그런 관점에서 가치 투자자들이 가장 쉽게 범하는 오류는 거시 경제적 요소에 대한 가중치를 낮게 두는 것이다.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장기 보유하면 된다는 단순 논리에 빠지면 거시 경제적 요소를 지나치게 저평가하거나 혹은 무시하는 오류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전체 자산시장이 거품 국면에 진입하면 가치 투자자의 투자 대상 역시 절대 가치 측면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단지 상대 가치 측면에서만 저평가 투자 대상이 존재할 뿐이다.반대로 유동성 축소 국면이나 전체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투자 대상이 절대적 저평가 상태로 전환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자산이 투자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가치 투자의 관점에서도 거시 경제 측면의 변수는 상당한 가중치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같은 관점에서 현재의 시장을 보면 거시적 측면에서의 시장 상황이 상당히 악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유동성의 맥락과 우리나라 산업 구조의 재편, 인구 문제, 연기금 수익률 문제, 인수·합병(M&A)이나 지배 구조 부문에서 촉발된 유통 주식의 감소, 퇴직 연금제, 자산 비중의 재편 등을 놓고 볼 때 우리나라 유가증권시장의 장기 상승을 의심할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 현재 가장 매력적인 것은 금융자산이며, 그중에서도 주식시장에 대한 상대적 매력이 크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하지만 어떤 풍상을 겪더라도 결국은 과실을 맺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은 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스란히 비바람을 맞으면서 견뎌야 한다는 생각은 진정한 투자자의 관점은 아니다.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지금 자산시장의 환경은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고, 언제 천둥번개가 내려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문제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사태는 아직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고, 달러 표시 자산에 투자한 중국 은행들의 위험 자산 규모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무역수지를 자본수지로 채워 가는 미국이 기축통화 지위 약화로 인해 곤경에 빠지면서 미국 자산에 대한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아무리 신흥시장과 유로 경제권이 상대적인 보완을 한다고 해도 한차례 비바람을 몰고 올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누가 뭐라고 해도 달러화는 약세 기조를 이어갈 것이고, 인플레이션 압력의 증대는 필연적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발언대로 전 세계 중앙은행이 인플레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면 자산시장의 안정성도 흔들릴 수밖에 없고, 바로 이 점에 대한 경고가 최근의 금값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과 달러화 약세, 중국 경기의 둔화 등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이런 부정적인 요인들은 대다수의 투자자들에게는 위기를 안겨주겠지만, 일부 발 빠르고 현명한 투자자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다.이런 측면들이 자산시장에 반영되면서 우리나라 자산시장의 심리 역시 현저히 불안해지고 있다. 블랙 먼데이 20주년을 맞아 큰 폭으로 하락한 미국 증시와 미국 증시의 하락에 연동돼 급락한 전 세계 증권시장의 동반 하락은 우리에게 바로 이 점에 대한 강한 시사점을 던져주었다.미국이 위기에 빠지더라도 세계 금융시장은 더 이상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일각의 의견이 틀렸음은 이날 벌어진 세계 증시의 하락으로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시장의 불안정성은 전 세계 시장을 감염시키고, 미국 경기 침체에도 끄떡없을 것이라는 신흥시장의 자산 랠리는 미국의 상황 여하에 따라 허공으로 사라질 수 있는 거품임을 이날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늙은 호랑이의 포효는 여전히 밀림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의 위기는 시장에 수없이 경고음을 울렸고, 시장은 그에 대해 충분히 준비할 기간을 가졌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예고된 상황이라는 점에서 일시적인 위기가 닥치더라도 일정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혼란이 수습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닥쳐 올 수도 있는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지금부터라도 현 시점에서 무엇을 대비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미국 시장의 불안과 중국 자산시장의 조정이 예정돼 있다고 해서 모두가 불안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기회는 위기에서 잉태되기 때문이다.현안을 좀 더 단순하게 정리해 보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달러 약세와 인플레이션이고, 두 번째는 그로 인한 금리 상승과 유동성 위축이다. 이 경우 우리에게 주는 기회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금과 같은 실물 자산을 보유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달러 약세의 수혜를 보는 상황을 주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현재 전 세계 통화 가치가 균일하지 않고, 그에 따라 각국 통화 가치의 재평가(리밸런싱)가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각국의 자산 가치 사이에 아비트리지(차익)의 기회가 발생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그뿐만 아니다. 산업 간에도 희비가 엇갈리고 기업 사이에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자산 가치의 상승과 중국 경기의 호황에 기대 지나친 차입으로 사업을 진행한 기업에는 위기가 닥칠 것이고, 반대로 차입이 적고 필수 소비재를 생산해 판매하는 회사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부각될 수 있다.또 한국처럼 타국 통화에 비해 통화 가치의 선제적인 저평가 상태에 있는 국가의 자산에는 차익의 기회가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이 경우 예상외로 중국이나 인도에 투자한 자산들이 우리나라로 느닷없이 이동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물 자산이나 그에 준하는 자산을 가진 기업에는 상대적 메리트가 발생하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헤지 펀드에도 위기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부풀려진 자산에 무리하게 모멘텀 투자를 감행했던 헤지 펀드들은 위기를 맞을 것이고, 전통적으로 차익 거래에 강하고, 위기를 역이용할 줄 알았던 안목 있는 헤지 펀드들에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이런 측면에서 이번 위험은 전 세계 자산시장뿐만 아니라 유가증권 투자자들에게도 새로운 질서의 재편을 요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부분을 좁혀서 보면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포트폴리오 재편을 요구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보면 정확하다.이것을 현재 한국의 주식시장에 견주어보면 2000~2200의 구간을 최대 한계치로 보고, 조정 과정에서 그동안의 중국 관련주와 중국 관련 상품에 대한 비중을 낮추고, 새로운 주도주의 등장을 주목해야 하는 당위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제 우리나라의 자산시장도 상당한 변동성과 체질 개선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지금 논점은 지수 기준으로 얼마의 조정이 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폭이 3%건, 30%건 간에 시장은 반드시 복원된다는 것을 전제로 지수 자체의 조정보다는 시장 성격에 가해지는 변화 압력을 주목해야 한다.고민해 보자. 만약 지금 거시적 위험이 일부 현실화된다면 가장 먼저 위기를 맞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당신이 거기에 답할 준비가 돼 있느냐, 아니냐가 바로 당신이 거래자인지, 투자자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어 줄 것이다.‘시골의사’ 박경철현직 외과의사이자 국내 최고의 투자전문가로 꼽힌다. 본명보다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유명하다. 투자 분석으로 영리 활동을 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전문가다. 명쾌한 논리와 유려한 문장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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