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이름 기업 속출…불황 다시 오나

거시 지표는 항상 2%가 부족하다. 양극단의 판단을 하게 만드는 모호함이 있다. 타이밍도 늦다. 사방에 흩어진 데이터를 모아 매끈한 숫자로 만드는 데는 물리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발표된 거시 지표와 경제 현실 사이에 항상 일정한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주사위를 던질 수는 없다. 금융 정책을 담당하거나 큰돈을 투자한 경우엔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해야 한다. 이때 활약하는 것이 ‘길거리 지표’다. 어떤 경우엔 복잡한 경제 지표가 잡아내지 못하는 미미한 움직임을 귀신같이 포착하기도 한다. ‘여성들의 화장이 짙은지 옅은지’, ‘치마 길이가 긴지 짧은지’, ‘보험 해약률이 높은지 낮은지’, ‘버려진 애완견 수가 많은지 적은지’, ‘등산 인구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등이 모두 길거리 지표다.첨단 기업이 몰려 있다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도 예외는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호에서 “실리콘밸리의 부침을 미리 예측하는 데도 여러 가지 길거리 지표가 유용하게 활용된다”며 “최근 들어 이런 지표가 ‘불황’이 가까워졌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월스트리트저널이 꼽은 첫 번째 길거리 지표는 새로 생기는 회사들의 이름. 우스꽝스러운 회사명이 많이 등장할수록 실리콘밸리가 과열됐다는 징후다. 20세기 말 ‘닷컴 버블’이 절정에 달했을 때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실리콘밸리의 미래는 밝지 않다. 요상한 이름의 회사들이 최근 들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포스터시에서 활동하는 벤처 캐피털리스트 케이트 미첼은 “회사 이름인지, 강아지 이름인지 헷갈리는 회사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오르구(Orgoo)’. ‘org’는 ‘organization’의 준말이고 뒤에 붙은 ‘oo’는 무한을 나타내는 기호 ‘∽’를 본뜬 것이다. ‘영원한 조직(infinite organizat ion)’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셈이다. ‘지피디(Zipidee)’도 ‘오르구’ 못지않게 이상하다. 지피디는 1946년 상영된 디즈니 만화영화 ‘남쪽의 노래(Song of the South)’에 나오는 북치는 소리 ‘Zip-a-Dee-Doo-Dah’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회사 설립자인 헨리 웡은 “기억하기 쉽고 개방적인 느낌을 주는 이름을 찾다가 ‘지피디’를 생각해 냈다”고 말했다.이상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조짐이다. 최근 창업한 ‘슈왁(Schwag)’이라는 회사는 신생 벤처기업들의 로고가 새겨진 사탕이나 티셔츠, 기념품 등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박스에 담아 배달한다. 새로운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수입도 짭짤하다. 예전엔 없던 사업이다.기업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회사를 세우는 일이 흔해지는 것 역시 불길한 징조다. 1990년대 래퍼로 활동했던 MC 해머는 실리콘밸리에 ‘댄스잼(DanceJam)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댄스잼은 온라인 비디오를 제작 배포하는 사업을 한다. 최근엔 5학년짜리 꼬마가 만든 웹 게임 회사가 65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평소 주식에 관심이 없던 아줌마들이 증권사 객장에 나타나면 증시가 꼭지에 달한 것이라는 속설처럼 다른 곳에 있어야 할 사람들까지 실리콘밸리로 모여들면 시장이 과열됐다는 징후라는 얘기다.실리콘밸리의 부동산 업소에서도 어두운 그림자는 감지된다. 요즘 들어 집세 대신 신생 기업의 주식을 받는 집주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징후다. 벤처 캐피털 업체 멘로파크의 데이비드 차오 사장은 “지금 실리콘밸리의 모습은 완전히 데자부(기시감: 처음 가 본 곳인데 이전에 와 본 적이 있다고 느끼는 것)”라고 말했다. 닷컴 버블이 한껏 부풀어 올랐던 1999년을 다시 보는 듯하다는 지적이다.실리콘밸리에 ‘공짜 음식’이 넘쳐나는 현상도 불황의 전조로 언급되고 있다. ‘록유(Rock You)’라는 회사는 직원들이 주중에 할인점 ‘코스트코’에서 사들인 음식물 값을 모두 지원해 주고 있다. 이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존 바우티스타는 “직원들에게 공짜 음식과 체육관 무료 이용권들을 살포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며 “이는 1999년의 완전한 복사판”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과거의 악몽이 그대로 재현될지는 미지수지만 현재 실리콘밸리가 예년에 비해 뜨겁게 달아오른 것만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안재석·한국경제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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