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미적미적’…‘제2김우중’ 되나

쌍용양회 위장 계열사 통해 비자금 조성혐의 받아…검찰, ‘4~5곳 더 의심’

김석원(63) 쌍용양회 명예회장은 ‘제2의 김우중’이 될 것인가. 김 명예회장은 지난 9월 19일 프랑스 파리로 출국한 후 미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10월 4~5일 열리는 월드스카우트 집행이사회에 참석하고 귀국할 예정이었다. 김 명예회장은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김 명예회장이 귀국하기 직전인 10월 2일 검찰은 그의 부인인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의 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현금과 수표 뭉칫돈 62억 원과 차명계좌 20개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김 명예회장은 지금 귀국을 미룬 채 잠적 중이다.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마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999년 10월 대우그룹의 모든 직위를 그만두고 돌연 중국으로 출국한 뒤 2005년 6월까지 5년 8개월 동안 해외를 떠돈 것을 떠오르게 한다. 공교롭게도 김우중 전 회장이 도피를 시작할 당시의 나이는 64세, 올해 김 명예회장은 63세다.김우중 전 회장이 해외 도피를 하는 동안 국내에서는 그의 숨은 재산 찾기가 채권단과 언론사의 관심사였다. 그의 부인인 정희자 여사는 지금 미술관 아트선재센터 관장이과, 대우개발의 후신인 필코리아리미티드의 회장을 맡고 있다. 김 전 회장의 2남인 선협 씨는 아도니스CC 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3남인 선용 씨는 현재 노블베트남을 통해 베트남의 하노이 다낭 호찌민에서 골프장 및 주택 개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부인과 아들의 재산은 김 전 회장과 관련이 없고 ‘숨은 재산’이 아닌 것으로 법원에서 결론내린 바 있다.해체된 재벌그룹의 총수였다는 점, 부인이 미술관장이라는 점, 자동차 사업의 부실로 그룹이 무너졌다는 점 등의 공통점들이 두 사람에 대해 연상 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이유다.김 명예회장이 귀국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까지 법적으로 김 명예회장의 귀국을 막고 있는 것은 없다. 아직까지는 피고인이 아닌 참고인 신분이다. 회사 돈 310여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2005년 3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을 진행하던 중 올해 2월 대통령 취임 4주년 때 사면돼 법적인 부담감도 없는 상태다.그러나 김 명예회장 주변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다 보니 언제 그 화살이 김 명예회장으로 향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서울 서부지검은 쌍용양회와 춘천의 H레미콘을 압수수색해 비자금 조성 혐의를 수사 중이다. 검찰은 쌍용양회가 위장 계열사인 H레미콘에 100여억 원 이상의 자금을 부당 지원하고 상당액을 빼돌려 비자금으로 조성한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 외에도 4~5개의 위장 계열사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H레미콘은 자본금 34억 원, 지난해 매출 86억 원 규모의 회사로, 지난해 1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으나 대손충담금 환입과 채무 면제 이익 덕분에 당기순이익은 514억 원이었다. 쌍용양회 측은 H레미콘에 대해 “H레미콘은 현재 쌍용양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회사다. 우리가 언급할 이유가 없다”며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현재는 아무런 끈이 없다지만 과거 H레미콘은 쌍용양회와 함께 이름이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2001년 쌍용양회가 금융 계열사인 H생명을 매각할 당시 H레미콘이 46%, ○○개발이 28%, N산업이 4.3%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은 쌍용양회 측으로 분류됐다. 현재 이들 세 업체의 대주주들은 쌍용양회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지는 않다.다만 개별 주주들을 자세히 보면 쌍용양회와 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H레미콘은 대표이사인 Y씨가 35.1%, 이사 N씨가 25.4%, 그리고 개인 주주인 P씨가 25.4%, C씨가 14.1%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P씨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성곡미술문화재단의 이사를 지낸 인물이다. 자신의 레미콘 업체를 운영하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C씨는 쌍용양회의 영업담당 이사 출신이다.○○개발은 2001년 말 쌍용양회에 흡수 합병됐다. N산업의 경우 지분 43%를 가진 최대 주주인 J 씨는 2003년까지 성곡미술문화재단의 이사를 지냈다.최근 검찰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업체들은 쌍용양회로부터 납품받고 있는 레미콘 업체이고, 성곡미술관과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쌍용양회처럼 큰 회사는 보통 수십 개의 레미콘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일부 건설업체들이 자재 납품 업체들에 실제 가격보다 부풀린 영수증을 발급하고 그 차액을 비자금으로 전용했던 사례가 있었던 만큼 김 명예회장이 위장 계열사를 통해 비자금을 만들었다면 레미콘 회사들이 먼저 검찰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그러나 이것만으로 H레미콘, N산업 등이 쌍용양회의 위장 계열사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납품 업체이다 보니 업무 연관성 때문에 미술관을 후원했을 수 있다. 레미콘 업체의 주주가 쌍용양회 임원 출신이었다는 점은 임원들이 독립해 사업을 꾸린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김 명예회장이 이들 업체를 통해 비자금을 만들었는지는 검찰이 수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또 다른 의문은 김 명예회장이 쌍용양회와 위장 계열사를 통해 돈을 빼돌렸다는 검찰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 명예회장이 쌍용양회의 경영에 그동안 어떻게 관여해 왔느냐다.김 명예회장의 지분은 채권단에 의해 일본 태평양시멘트에 대부분 매각됐고 2004년 3월 주주총회 이후 이사직에서도 물러났으나 명예회장 직함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06년 2월 태평양시멘트는 김 명예회장과 완전 결별을 선언했다. 태평양 시멘트는 당시 김 명예회장이 5% 지분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경영 참여를 보장했으나 그간의 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지분이 낮아지면서 결별을 선언한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어쨌든 2006년까지는 김 명예회장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한편 김 명예회장의 아들과 측근들이 소유한 회사들은 비자금 조성과 관련은 없지만 김 명예회장의 숨은 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04년 말 김 명예회장은 쌍용그룹 재산 310억 원을 개인 명의의 재산으로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당시 김 명예회장이 재산을 숨긴 수법을 밝힌 바 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종로와 이태원의 주택 다섯 채가 대출금 대신 은행에 압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서와 운전사 이름으로 명의를 돌려놓거나 용평리조트가 있는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일대의 쌍용양회 소유의 임야를 친인척에게 헐값으로 팔아치우는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쌍용그룹 해체 이후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빼돌렸다고 한 부동산이나 기업 중 김 명예회장의 아들인 지용 씨가 오너가 된 곳이 많다. 김 명예회장이 채권단에 가압류당했던 이태원 집은 지용 씨와 부인 정유희 씨가 대주주(지분 50% 소유)인 올리브플래닝이라는 회사가 지난해 매입을 목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리브플래닝은 이후 특별한 이유없이 계약을 파기했다.김 명예회장이 유죄 판결을 받은 혐의 중 32억 원의 가치가 있던 계열사 운영 고속도로 휴게소 3곳을 2억4000만 원의 헐값에 김모 비서실장에게 매각한 것이 있다. 당시 이를 매입한 김 비서실장은 태아산업을 통해 충북 음성에 2곳, 여주 하행선에 1곳 등 3곳의 휴게소를 운영하며 지난 해 6억여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태아산업은 김 비서실장이 50%의 지분을 가진 것 외에도 지용 씨가 30%,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의 동생인 박문규 씨가 20%를 갖고 있다.박문순 관장의 집에서 나온 62억 원이 어떻게 조성되었는지는 검찰의 수사를 통해 명확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 명예회장이 귀국을 미루면서 ‘더 큰 것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만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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