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욕구’ 주목…‘창조적 대안’ 찾아야

표면적 요구만 신경쓰면 타협 불가능ㆍㆍㆍ참여자 모두 만족하도록

우리 주변에는 유달리 협상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각 회사의 ‘영업왕’이나 물건을 살 때 항상 남보다 싸면서 좋은 물건을 사는 사람, 주변 사람들이 항상 도와주는 사람 등 언제나 남과의 관계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이런 사람들처럼 좋은 결과를 얻고 싶은데 그 비법이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협상의 달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비법이 있을까. 만약 나도 이 비법을 익힌다면 이들처럼 언제나 협상을 잘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세계경영연구원(IGM) 협상스쿨이 제시하는 협상의 10계명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4가지를 소개한다.첫 번째 원리는 ‘요구(position)’ 뒤에 숨은 ‘욕구(Interest)’에 집중하라는 것이다.사람들이 협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욕구가 있다. 이러한 욕구를 혼자 모두 만족시키기는 어려우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욕구는 다른 사람에게 요청한다. 협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요청하는 것을 요구라고 한다.예를 들어 손님이 과일가게에 가서 사과를 산다고 할 때 사과를 달라고 하는 것은 손님의 요구다. 하지만 손님이 사과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손님 자신이 다이어트를 위해 저녁식사를 대신해 사과를 먹고자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선물로 필요할 수도 있으며 설사가 심한 사람을 문병하면서 필요할 수도 있다. 이처럼 손님은 하나의 요구를 하고 있지만 손님의 진정한 욕구는 앞에 설명한 다양할 욕구 중의 하나일 것이다.협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요구’와 ‘욕구’를 구별하는 것이다. 협상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지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한 가지만을 생각하며 그것만을 주장한다. 물론 그 요구가 관철되면 자신의 욕구는 충족될 수 있다. 그러나 요구는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있다. 대부분의 협상 상황에서 서로의 요구는 충돌한다. 그렇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서로의 요구를 동시에 관철시키는 것은 100% 불가능하다고 착각한다.과일가게에서 손님이 사과를 달라고 할 때 마침 사과가 떨어진 경우를 생각해 보자. 손님의 요구는 ‘사과를 달라’는 것이고 주인의 요구는 ‘사과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쌍방이 요구에만 집착하면 협상은 결렬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손님의 요구 속에 숨겨진 욕구를 파악한다면 협상을 타결할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새로운 방법이 두 번째 원리다.서로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창조적 대안(Creative Options)’을 찾으라는 것이다.손님이 사과를 찾는데 사과가 떨어진 주인의 예를 다시 생각해 보자. 서로의 요구에 집중하면 협상이 결렬된다. 하지만 주인이 손님과 대화를 하면서 손님이 왜 사과를 필요로 하는지 물었을 때 손님이 설사로 고생하는 친지를 위해 사과를 사려고 한다고 답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주인은 손님에게 “설사에 좋은 과일은 사과뿐만 아니라 바나나도 있다. 마침 좋은 바나나를 가지고 있으니, 이를 사가면 적절할 것이다”라고 말한다고 하자. 손님의 입장에서는 사과를 고집할 수도 있지만 바나나로 생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여기에서 손님의 요구는 ‘사과를 달라’이지만 욕구는 ‘설사하는 친지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주인의 요구는 ‘사과가 없다’에서 ‘바나나는 있다’로 바뀌었지만 욕구는 ‘과일을 팔아 이익을 남긴다’로 변함이 없다. 손님의 요구가 아닌 욕구에 집중하게 되니 주인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쌍방의 욕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대안을 창조적 대안이라고 한다.다른 예를 보자. 2003년 개봉한 ‘선생 김봉두’라는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두 농부가 논두렁을 사이에 두고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한 농부가 길 건너 논에 물을 대기 위해 호스를 길 위에 놓았는데 다른 농부가 시장에 물건을 팔기 위해 경운기로 그 길을 지나다 보니 호스를 망가뜨린 것이다. 두 농부의 요구는 ‘경운기로 호스를 밟지 말라’와 ‘경운기가 지나가겠다’이다. 두 요구는 동시에 만족될 수 없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김봉두 선생은 욕구에 초점을 맞춰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호스를 길 밑에 묻어 문제를 해결한다. ‘길 건너 논에 물 대기’와 ‘경운기로 시장 가기’라는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킨 것이다.세 번째 원리는 상대방의 ‘숨겨진 욕구(Hidden Interest)’를 찾아 자극하라는 것이다.협상에서 상대방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요구한다. 그런데 상대방의 욕구는 협상에서 나타나는 욕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단지 현재의 협상에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아예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욕구를 ‘숨겨진 욕구’라고 한다.만약 상대방에게 어떤 숨겨진 욕구를 일깨워주고, 그 욕구가 현재 협상에서 원하는 욕구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면 상대방은 원래의 욕구를 포기하거나 원하는 정도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앞의 과일가게 주인이 사과를 요구하는 손님에게 바나나를 제시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환자를 방문하는 다른 손님들은 대부분 사과를 선물할 텐데 바나나를 선물하면 다른 손님과 차별화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면 손님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도 바나나를 사게 될 확률이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중고차를 사러 온 20대 후반의 손님에게 1500만 원짜리 쏘나타를 권하는 딜러의 경우를 보자. 손님은 ‘차를 싸게 달라’고 요구하고 딜러는 ‘이미 충분히 할인돼 더 싸게 줄 수 없다’고 요구한다면 이 협상은 결렬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노련한 딜러는 손님이 싸게 달라고 하면 쉽게 가격을 따지기보다는 일단 차나 한 잔 하자고 불러 앉힌다. 그리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손님이 기혼인지, 통근을 위해 차를 사는지 등의 다양한 욕구를 파악한다. 그리고 손님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이 차의 유용성을 이용해 손님을 설득할 것이다. 즉, 쏘나타를 타면 여성들에게 능력이 있음을 과시할 수 있으며 다른 차에 비해 유지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면 손님은 조금 비싼 가격을 감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마지막으로 언급할 원리는 ‘윈-윈’ 협상을 만들라는 것이다.윈-윈 협상이란 협상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게 된다는 뜻이다. 적어도 내가 양보한 것 이상을 얻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것이다. 위에 말한 세 가지 원리에 충실하다면 윈-윈 협상은 자연스럽게 얻어질 수 있다. 욕구에 집중해 창조적 대안을 찾아 협상이 타결된다면 참여자 모두의 욕구가 만족되므로 윈-윈 협상이 될 것이다. 숨겨진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면 원래의 욕구를 조금 양보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만족하게 되고 윈-윈 협상으로 종결될 것이다.윈-윈 협상이 중요한 이유는 뒷맛이다. 협상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타결 결과에 대해 수긍하지 않으려 하며 타결 결과를 파기하고 싶어 한다. 또한 나중에 기회만 생긴다면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독일을 상대로 지나친 패전 비용을 요구했고 이 협상 결렬이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이 되고 말았다.이상과 같은 4가지 원리만 지킨다면 당신은 어떠한 협상에서도 적어도 지지는 않았다는 만족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신과 협상한 상대방도 당신과의 협상 결과에 만족해 할 것이다. 이런 결과를 만들 줄 안다면 누가 보아도 당신은 협상의 달인인 것이다. 이계평·세계경영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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