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실험 스타트…기술·실용 강조

앞만 보고 달려온 급성장은 수정… 기업가 당원도 생겨나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沒有共産黨, 就沒有新中國).”중국 공산당의 혁명가요 제목이지만 경제 급성장에 기여한 공산당의 힘을 보여주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중국 경제는 올해도 11% 이상 고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5년 연속 10% 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하는 것이다. 중국을 통치하는 독재 정당인 공산당이 이 같은 고성장을 이끌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중국 전문가들이 공산당의 변화를 주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산당을 통해 중국의 나아갈 방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5년마다 열리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대)다. 전대에서는 통치 노선과 함께 새로운 지도부 진용이 짜인다. 이를 토대로 국무원(정부)이 구체적인 정책 마련과 각료 임명을 통해 중국의 변화가 일어나는 식이다.통치 노선의 변화도 한 사례다. 1997년의 15차 당대회는 당헌(당장)에서 덩샤오핑 이론을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과 같은 반열인 공산당의 지도 이상과 행동 지침으로 격상시켰다. 21세기 첫 번째 전대인 2002년의 16차 당대회는 장쩌민 전 당총서기가 제창한 ‘3개 대표이론’이 당의 행동 지침으로 삽입됐다.15일 개막해 1주일 일정으로 열리는 17차 당대회에선 후진타오 현 당총서기의 통치 철학인 과학적 발전관이 이들 이론과 같은 반열에 오른다. 과학적 발전관은 후 총서기가 5년 전 중국의 1인자로 등극하면서 중국의 변화 키워드로 떠오른 개념이다. 그동안의 발전이 앞만 보고 달려온 비과학적 성장이었음을 인정하고 궤도를 수정하겠다는 것이다.중국 지도부가 입에 달고 다니는 조화란 뜻을 갖는 화해 사회 건설과 맥을 같이한다. 환경을 파괴하고 빈부 격차를 넓히고 자원을 고갈시켜 온 성장 방식을 바꾼다는 얘기다.여기에는 중국 공산당의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공산당의 최대 과제는 지속 통치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분열과 통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를 가져왔다. 1921년 창당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함으로써 중국을 통일한 공산당의 지배 시기는 이제 겨우 반세기가 좀 넘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주장하는 뒤에는 공산당의 통치 체제를 지속하겠다는 목적이 있는 셈이다.통치 노선 변화와 함께 17차 전대에서 이뤄질 새로운 지도부 구성도 향후 정책의 색깔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변화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 정부 조직은 물론 학교에서부터 은행, 심지어 외국 기업에까지 공산당이 스며들어가 있다. 중국 특유의 일사불란함 뒤에는 바로 7240만 명(2006년 말 기준)의 당원이 있는 것이다.특히 중국 대부분 조직의 서열 구조에서도 공산당의 힘을 볼 수 있다. 모든 부처에 우리의 장관에 해당하는 부장이 있으면서 동시에 당서기가 있다. 지방정부도 마찬가지다. 성장과 함께 성의 당서기가 따로 있다. 대학에도 총장과 당서기가 따로 있다. 겸임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지방정부의 성장이 실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 당서기는 인사권을 갖고 있다”며 “당서기 서열이 더 높다”고 전한다.기업들은 경영 효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공산당 조직을 활용하기도 한다. 중국 전역에 360만 개 기층 조직(당지부 및 당위원회)이 있으며 최근 들어선 외국 기업에도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외국계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직원들 가운데 공산당원들의 자질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고 얘기한다. 공산당에 입당할 때 선서문에 이 같은 구절이 나온다. “공산주의를 위하여 종신토록 분투하며 시시각각 당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하며 영원토록 당을 배반하지 않겠다.”그러나 공산당이 누리는 권력의 힘이 센 만큼 부패의 골도 깊다. 중국에서 만나는 민간 기업인들 중 적지 않은 이가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표적인 게 홍정상인(紅頂商人)으로 대표되는 권력자들의 부패다. 홍정상인은 정부에 몸담고 있으면서 기업 활동을 하는 관리나 기업가로, 정부 직위를 갖는 사람을 말한다. 홍정상인은 그들의 부패가 심해지면서 정경 유착의 상징이었다. 홍정상인의 원조는 청조 말 거상 호설암이었다. 청나라 관리를 도와준 공로로 관직을 얻었고 관리들이나 쓸 수 있는 붉은 색 모자를 쓰고 다녔다.요즘 중국에서는 홍정상인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만 중국에서 10만 명가량의 관리들이 부정부패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고위직도 예외가 없다. 2002년 후진타오 체제 출범 이후 5년간 16명의 부부장(차관)급 이상 고위 인사가 비리 사건으로 엄벌에 처해졌다. 정샤오위 전 국가식품약품관리국장 등 2명은 형상의 이슬로 사라졌다. 정 국장은 1997년 6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국가의약품 관리감독의 총책임자로, 8개 제약사의 청탁을 받고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허가를 내주면서 모두 649만 위안(1위안은 약 120원)의 금품을 챙긴 죄목으로 엄벌에 처해졌다.4명은 사형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천량위 전 상하이시 당서기는 공산당 정치국 위원직은 몰론 모든 관직에서 쫓겨났다. 특히 상당수 부패 관리들의 뒤에는 첩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중국 사회에서 비판 여론이 등등한 상태다. 17차 전대를 앞두고 국가예방부패국을 만든 것도 부패 척결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권력자들의 부패가 민초들의 체제 불만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던 역사의 교훈을 중국 공산당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중국 공산당은 특히 일당 지배 체제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위직에 비공산당을 임명하는 파격 인사도 실시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치공당의 부주석인 완강이 과학기술부장에 오른데 이어 6월 말엔 당적이 없는 이른바 무당파인 천주 사회과학원 부원장이 위생부장에 임명됐다. 이로써 중국에서 공산당적을 갖지 않은 장관이 두 명으로 늘게 됐다. 무당파 인물을 장관급에 임명한 것은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29년 만이다.신화통신은 “정부 운영에서 당적이나 이념보다 실용성을 강조한 것으로, 당외 인물 등용을 확대하는 추세를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공산당 통일선전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을 기준으로 중앙 정부 간부 중 19명이 비공산당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국 성 시 현 등 각급 인대(지방의회) 대표 약 320만 명 가운데 5.3% 정도인 17만여 명이 비공산당원이다. 특히 31개 성과 시 또는 자치구 중 무려 27곳에 비공산당원 부성장이나 부주석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중국의 공산당은 7000만 명이 넘는 당원을 가진 세계 최대 정당이다. 35세 이하가 1690만 명으로 23.3%에 이를 만큼 젊어지고 있다. 또 전체 당원 중 화이트칼라가 21.4%를 차지하는 등 최근의 사회 변화도 반영하고 있다. 장쩌민 전 당총서기가 기업인의 입당을 허용하면서 기업가 당원도 생겨나는 추세다. 적응을 잘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한다. 공산당의 변신은 생존을 위한 적응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거함 중국의 조타수 공산당의 생존 실험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날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오광진·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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