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춤 개발…17년째 무대 수놓아

올해도 창작무용 ‘사맛디’ 선봬…‘젊은 춤꾼 발굴할 터’

지난 10월 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는 밀물무용예술원이 주최한 한글춤 공연이 펼쳐졌다. 561돌 한글날을 기념한 이번 공연은 올해로 열일곱 번째를 맞이하는 한글춤 행사다. 한 가지 주제로 해마다 이어지는 무용 공연이 있다는 것도 진기한 일이지만, 더구나 그 주제가 한글이라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공연의 주역인 밀물현대무용단의 단장이자 사단법인 밀물무용예술원의 이숙재 이사장(61)을 만나 한글춤 공연의 배경과 그녀만의 무용 세계를 접하는 자리를 가졌다.“한글은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입니다. 1997년에는 유네스코가 훈민정음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과학적 문자고요. 한글춤을 추다 보면, 한글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깊이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됩니다.”이 이사장이 한글춤을 개발한 때는 1980년대 초다. 뉴욕에서 석사 학위를 밟던 당시, 자신의 나라를 소개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아 춤을 만들어 오라는 과제를 받았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 속에서 한국만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동양권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특별할 수 있는 소재로 한글을 선택했다.“무엇보다 글자와 춤은 보고 느끼는 시각 예술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인 공통점이 있지요. 처음에는 그 공통점에 착안해 한글춤을 시작했습니다. 글자를 몸으로 형상화하는 것이었지요. 그 후 한국에 돌아와 1984년에 밀물무용단을 만들었고 199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글춤을 공연하게 되었습니다.”그렇게 시작한 공연이 17년째다. 그 기간 동안 한글춤은 ‘홀소리 닿소리’, ‘한글누리’, ‘한글 새 천년의 꿈’ 등의 제목으로 관객을 만나왔다. 특히 올해 ‘사맛디’ 공연의 후원 단체 목록은 꽤 길게 이어진다. 문화관광부, 국립국어원, 한글학회, 외솔회 등 열한 개 단체가 된다. 한글춤이라고 해서 뜻있는 단체의 후원이 더 많았으리라고 추측된다.“초창기에는 이런 것도 무용으로 할 수 있느냐는 의아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글을 사랑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느낀 단체들의 지원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외솔회 등 한글 단체들은 한글의 과학성을 알 수 있는 좋은 글들을 보내 주셨고요. 매년 공연 대본에 큰 영감을 주었고, 글자 형상화에서 나아가 정신을 담는 데도 보탬이 되었습니다.”한글춤의 큰 장점이라고 한다면 관객들의 호응이 높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무용 애호가보다 무용을 멀게만 느끼던 일반 관객들이 더 좋아하는 공연이 한글춤이다. 유독 많은 공연 후기가 쏟아져 나오고 해마다 찾아와 지난 공연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재미를 즐기는 관객들도 있다. 춤이 쉽고, 재미나고,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것을 한글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올해 공연은 50여 명이 출연하는 70분 연속 공연의 대작이어서 관객들의 감동이 더욱 컸다.이 이사장이 이끄는 밀물현대무용단은 한글춤 외에도 정기 공연과 크고 작은 공연을 많이 한다. 가장 가까이는 10월 12~14일 열린 ‘2007 강남 댄스 페스티벌’ 개막 행사가다. 코엑스에서 열린 페스티벌은 강남구를 세계적인 댄스 특구로 만들겠다는 강남구의 야심찬 계획으로 출발했다. 뒤이어 10월 25~28일에는 포이동에 있는 밀물무용예술원의 댄스 전용 극장인 M극장에서 ‘전문 무용인의 날’을 개최한다. 전문 무용인의 날은 최승희 선생이 국내 최초로 무용 공연을 발표한 날 즈음에 열리며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고 있다.“정열과 재능을 가진 30~40대의 춤꾼들이 많은데, 마땅히 설 자리가 없어요. 지난 1년 동안 M극장에 선 춤꾼들이 70여 명 되지요. 전국적으로 유망한 춤꾼들을 찾아서 무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무용계 발전에 일조하기를 바랍니다.”M극장은 100석이 조금 넘는 소극장이지만 밀물무용단 소속 여부에 상관없이 열려 있다. 춤꾼에서부터 관객까지 춤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이 이사장은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이라며 M극장을 찾는 젊은 춤꾼들에게서 무용의 미래를 발견한다고 전한다. 아울러 지속적인 공연을 통해 종합예술인 춤이 많은 사람들에게 직업적인 터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무용과를 나온 모든 학생들이 춤을 추는 사람으로 남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춤을 추기 위해서는 체력이나 체격 조건을 타고나야 합니다. 하지만 기획 음악 분장 대본 등 종합예술인 무용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이 얼마나 많습니까.”춤을 아끼는 관객층이 두터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들어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전문 공연장들에서조차 순수예술의 공연 횟수가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 많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순수예술의 침체가 대중예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뮤지컬과 같은 대중예술 공연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반이 되는 무용, 성악 등 순수예술의 층이 깊어야 합니다. 관객이 근사하다고 감탄하고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순수예술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지요.”예술을 통한 ‘감동’은 이 이사장에게 중요한 주제다. 이 이사장은 무용을 통한 정신박약아 교육과 어린이 정서 및 인지 발달을 위한 무용에 대한 다수의 논문과 책을 썼다. 인간의 몸을 다루는 춤이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며 일종의 치료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아직도 무용이라고 하면 화려하고 특수한 직업이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지요. 하지만 요즘 무용인들은 춥고 배고픈 것을 참아가며 프로 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직업의 세계는 어디나 마찬가지예요.”이 이사장은 무용인 발굴, 관객층 확보에 이어 기업의 후원을 강조했다.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한 후에야 예술을 감상할 여유가 생기지 않겠느냐며 우리나라에서 예술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개인에게는 돈 버는 일이 중요하고 사회에는 기업의 영리 활동이 꼭 필요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경제에만 매달려 물질만을 창조하는 것은 좋은 사회가 아닐 겁니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인 측면을 풍족하게 만드는 것이 저 같은 예술인이 해야 할 본연의 역할입니다. 무용인들의 활동 무대를 만들고 관객들에게 좋은 레퍼토리를 꾸준히 선사하고 기업들의 후원을 이끌어내는 제 일이 우리 정신문화의 종자돈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의(02)578-6810 약력: 1945년생. 이화여대 무용과, 대학원 졸업. 1980년 뉴욕대 대학원 석사. 1997년 건국대 대학원 박사. 한양대 생활무용예술학과 교수(현). (사)밀물무용예술원 이사장(현). 한국무용학교 회장.(현)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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