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공조체제…시너지 극대화

프랜차이즈와 달리 '본사' 권한없어 ㆍㆍㆍ자율 운영 '장점'

#상황1. 지방에서 상경해 서울에 직장을 정한 김한국 씨(가명). 새 직장, 첫 출근이라는 기대에 가득 차 이삿짐을 정리하고 헤어스타일을 손질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여러 곳의 미용실을 기웃거려 보지만 선뜻 결정할 수가 없다. 뒤통수가 절벽인 김 씨는 손질을 잘못해 웃음거리가 된 경험이 있는 터라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상황2. 한참을 찾아다닌 끝에 김 씨는 전에 살던 동네에서 이용하던 눈에 익은 간판을 발견하곤 그곳으로 들어간다. 자리를 안내받은 후, 전에 이용하던 미용실과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설명했다. 설명을 전해들은 미용사는 김 씨가 단골로 이용했다는 미용실에 전화를 걸어 김 씨를 담당했던 미용사와 통화한 후 그에게 손질할 내용을 다시 설명한다. 두발 손질이 끝난 후 김 씨는 “이사를 가지 않는 한 이곳을 계속 이용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미용실을 나선다.위의 상황1은 이사를 하고 나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머리 손질은 함부로 맡길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단골 미용실의 지정 미용사에게 맡기는 게 일반적이다. 낯선 미용실에 간다는 건 꺼려지게 마련이어서 손질을 마치기 전까지는 불안한 게 인지상정이다. 또 안심하고 머리를 맡기는 단골 미용사보다는 만족도가 떨어지는 법이기에 새로운 미용실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려운 숙제일 수밖에 없다.상황2에서처럼 낯선 고객에게 서비스 만족도를 높여주는 곳은 사실 드물다. 처음 방문한 손님의 만족도를 고려해 이전에 담당했던 미용사와 직접 통화하며 헤어스타일을 점검한다는 건 보통 애착으로는 힘들 것이다.하지만 이런 미용실, 미용사가 실제로 있다. 서울 은평구 구산동 ‘헤어살롱 B&G’의 최경화 원장(44·여)이다. 최 원장은 “동네 미용실은 입소문에 민감한 만큼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만이 생존의 본질이며 이를 위해선 미용 종사자 간의 네트워크가 필수”라고 강조한다.미용 인생 20년에 기술과 감각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최 원장은 지난 2000년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미용실을 개업했다. 그러나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했던가. 개업 이후 가격 합리화를 주창한 프랜차이즈에 의해 가격 파괴의 광풍이 불어 닥쳤고 동네 미용실은 경쟁력을 잃어 갔다. 1990년대 중반 남성 고객을 수요로 한 남성 전용 미용실의 등장으로 남성 수요가 이미 이탈했고 이어서 여성 미용실의 전유물인 파마와 염색 시장에도 프랜차이즈를 통한 가격 파괴 바람이 불어 닥쳤던 것이다.최 원장이 창업한 2000년 이후 미용 시장은 공급 과잉으로 인한 경영 악화로 전국의 미용실이 문을 닫는 곳이 부쩍 늘어만 갔다. 교육 및 경영 지원이 뒷받침되는 프랜차이즈 미용실의 위력에 홀로 맞서야 하는 개인 미용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주변의 미용 종사자들은 ‘이제 개인 미용실의 시대는 끝났다’고 이야기하며 하나 둘씩 사업을 포기했다. 생존과 실패의 문턱에서 최 원장은 전익관 대표(파루크코리아)를 생각했다. 어느 분야건 최고에게는 답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피자 시장에는 성신제가 있고 제과 시장엔 곽지원이 있듯이 분야별 전문가, 멘토는 존재하는 법이다. 경영 악화로 절박한 상황에 처한 최 원장은 미용 재료를 비롯해 교육 및 인력 공급 등 미용 시장 전체를 지원해 주고 있는 전 대표를 찾아갔다.최 원장과 전 대표는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용 프랜차이즈에 대항할 만한 방법을 논의했다. 해외 미용 시장에 정통한 전 대표는 프랜차이즈에 대항할 방안으로 볼룬터리 시스템을 제안했고 이에 따라 최 원장은 볼룬터리 체인으로 운영 시스템을 변경하게 된다.프랜차이즈 체인은 본사에서 모든 권한을 갖고 집행하는데 반해 볼룬터리 시스템이란 각각의 개인 사업자들이 공동의 상호를 사용하며 서로 유기적 공조 체제를 구축, 운영하는 것이다.볼룬터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원부재료 및 교육, 인력, 정보 등 상호 협력 체제를 유지해 줄 지원 기반이 관건인데 이는 미용 업계에 정통한 전 대표가 맡아 지원하기로 했다. 전국적인 미용실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던 전 대표는 최 원장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 둘씩 불러 모아 ‘헤어살롱B&G’라는 볼룬터리 시스템을 탄생시켰다.볼룬터리 시스템의 장점은 첫째, 구매 및 가격 결정 등 생산 및 기획에 점주가 직접 참여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공급자의 과잉 공급 및 부당 이익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는 등 상호 견제 기능이 발휘되며 교육 및 정보 교류, 경영 지원 등에 소용되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상호 협력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볼룬터리 시스템의 두 번째 장점은 각자의 상권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편의점의 운영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편의점은 브랜드 인지도보다 고객의 이용 편의에 의해 매출이 결정된다. 즉, 소비자로부터 누가 더 가까운 곳에 입지하느냐 하는 것과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얼마나 확보했는가 여부에 따라 이용객이 결정된다.이는 서비스업인 미용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동네 미용실의 경우 대부분 거주지에서 가까운 곳을 이용하게 되고 서비스의 만족도에 따라서 선택된다는 점이다.결국 미용실의 경쟁력은 서비스 경쟁력에 대한 문제이기에 이에 걸맞은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개인보다는 관련 종사자 간의 협력 시스템을 맺어 활용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인 셈이다.볼룬터리 시스템으로 미용 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앞장서 온 전 대표는 미용 프랜차이즈 기업, 뷰티매니지먼트 솔루션(주)을 설립했다. 지난 8월 영세 미용실의 경영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뷰티매니지먼트 솔루션㈜과 외환은행은 헤어살롱B&G를 창업하고자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무보증, 무담보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5000만 원의 창업자금을 신용 대출해 주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최근 들어 미용 업계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최고급 서비스로 무장한 청담동 등지의 유명 미용실은 고급 수요를 더욱 확충하는 추세다. 또한 가격 합리화를 부르짖는 미용실 체인은 가맹점을 확산하며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반면 영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동네 미용실들은 매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전체 미용 시장 규모가 6조 원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포수는 3%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매출 시장을 분석해 보면 점유율 3%에 불과한 프랜차이즈 매출이 전체 미용시장 매출의 25%를 넘어서고 있다.미용 시장을 기업 주도의 프랜차이즈가 잠식한다고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이에 대응할 만한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프랜차이즈에 대항하기 위해선 위의 사례처럼 미용 사업자들이 서로 연대해 운영하는 볼룬터리 시스템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때 읽어볼 만한 문구가 있다.“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알려 줄래?”“그건 어딜 가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고양이가 말했다.“어딜 가고 싶은지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앨리스가 말했다.“그럼 어느 길로 가든지 상관없네, 뭐.”-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중둥근 구멍엔 네모난 막대가 들어가지 않는다. 이미 미용 시장은 둥글게 변한 지 오래다. 현실을 직시, 가야 할 길을 선택하고 도달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할 때다. 고경진·고경진창업연구소장 go11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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