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의 축복과 그 이후

2003년 이후 지속된 과잉 유동성은 지구상의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적 현상이다. 자산 가격의 상승은 불가피했고, 자산 소유자는 그 즐거움을 향유해 왔다. 주택, 주가, 그림, 골동품 등이 환희의 잔치에 동참했다. 원유, 원자재, 곡물 들의 가격도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자산군들이 순환하며 그 소유자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04년부터 꾸준히 찔끔찔끔 금리를 인상했지만, 과잉 유동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감이 만연해 있었고, 또한 증권화로 대변되는 다단계 금융이 그 기대감에 편승해 유동성을 유발했다. FRB는 과감한 통화 정책을 시행할 적기를 놓쳐 버렸고, 이는 결국 모기지 금융 부실을 현실화했다.미국 금융시장은 과거 10년간 나타난 경기 충격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에너지 위기, 유가 급등,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충격 등을 비교적 쉽게 흡수하고 그 충격으로부터 회복했다. 그래서 국내의 금융 업계는 이번에도 미국의 금융시장이 불안 요인을 조기에 수습할 것으로 믿는 분위기다. 하지만 사실 작금의 금융 불안은 과거의 충격과는 그 성격이 다소 상이하다. 모기지 시장 자체의 규모가 큰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현재의 금융 불안이 다각도로 연결된 금융의 주요 고리에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금융거래가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더 높은 금융비용을 유도한다. 기업들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의 경기 둔화는 불가피하고, 경기 침체의 위험도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기대 이상의 금리 인하라는 단맛을 본 미국 금융은 벌써 추가적인 금리 인하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FRB의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가능한 한 피하려고 할 것이다. 우선 인플레이션 위험이 가시화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FRB로서는 도덕적 해이를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FRB는 ‘위기가 생기면 FRB가 해결해 주겠지’라는 경제 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곧 미국 기업들의 3분기 실적이 공표되기 시작하면 그 윤곽이 더 자세히 보이겠지만,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모두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다. 씨티그룹에서는 60억 달러의 대손상각이 예상된다는 소식과 함께 찰스 프린스 회장의 퇴진 압력이 증대하는 실정이다.9월 소비자신뢰지수가 2006년 이후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고용 시장의 상황을 대변하는 취업자 수도 2003년 말 이후의 성장세가 최근 감소세로 반전됐다.미국과 유럽의 금융 불안은 실물 경기의 둔화 내지 침체로 이어지고, 이는 중국의 경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물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 중국에서 미국과 유럽으로의 대외 수출이 둔화되면 경기 불안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원래 불안한 중국 기업들의 펀더멘털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경기 흐름은 나름대로 쾌속 항진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제조업 영업이익률이 상승하고 있고, 대기업 BSI(기업경기실사지수)도 최고 수준이다. 소비자심리지수가 최근 4분기 연속 상승하면서 5년 만에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유가 환율 등 대체적인 기업 환경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둔화의 조짐은 건설 경기 등에 국한돼 있는 듯하다. 특히 현재는 두 달 정도 남긴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므로, 한국의 정책 당국이 과잉 유동성에 대한 근원적 해결을 모색할 수도 없다. 최근 문제가 된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문제에 대한 미온적 대응을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이런 맥락에서 주가가 쾌속 항진을 계속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림 값도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과잉 유동성이 유지되고 있는 한 그 위에서 춤추며, 축복을 누리는 것은 합리적이다. 다만 현재는 가격 조정의 위험을 경계하는 자세가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발 경기 침체 조짐이 가시화되고, 그 영향이 중국으로 이어지는 조짐이 나타나면 즉시 안전 자산으로의 전환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동산, 그림과 같은 환금성이 어려운 자산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환금성이 높은 증권 자산도 플로어(floor)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주식과 함께 풋 옵션을 함께 보유하는 ‘보호 풋’과 같은 포지션 말이다.전상경한양대 경영대 교수sjun@hanyang.ac.kr약력: 1962년생. 85년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2000년 뉴욕주립대(버펄로) 경영학 박사. 2002년 한양대 경영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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