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작’ 대거 공개…‘왕국’ 재현될까

독점적 지위 흔들리자 휴대 인터넷 주력…‘무어스타운’ ‘몬테비나’ 주목

PC가 보급된 이후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전 세계 PC 시장의 주도자 역할을 해 왔다. 지금 독자들의 안방에 설치된 PC를 보면 십중팔구 인텔 제품인 ‘펜티엄’ 시리즈 또는 ‘코어2듀오’를 장착한 하드웨어와 윈도XP(또는 윈도 비스타)를 설치했을 것이다.이들 두 업체는 PC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CPU(Central Processing Unit: 중앙처리장치)와 운영체제(OS: Operation System) 두 가지를 가지고 독점적 지위를 만들어 왔다. ‘윈텔(윈도와 인텔의 합성어)’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질 정도다. 그간 윈텔 체제에 대항하는 수많은 업체들의 도전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전 세계 PC 10대 중 7대 이상이 인텔 CPU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인텔의 영향력이 큰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인터넷 환경이 급변하면서 조금씩 윈텔 진영을 위협하고 있다. 구글(Google)은 윈도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도 인터넷과 오피스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PC 환경을 만들고 있으며, 반(反)윈도 진영인 리눅스(Linux)의 점유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MS뿐만 아니라 인텔도 경쟁사인 AMD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코어가 2개인 듀얼코어 CPU와 4개인 쿼드코어 CPU 등 신제품 부문에서 AMD와 기술 격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무엇보다 두드러진 현상은 업계의 인식 변화다. 운영체제는 MS, CPU는 인텔을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를 비롯해 중국 정부에서 리눅스를 채택하거나 인텔 CPU가 장착되지 않은 PC 구입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향후 가장 큰 PC 수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개발도상국에서도 윈텔이 아닌 다른 플랫폼을 찾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예상된다.이런 변화는 인텔 내부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텔은 지난해 20년 만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항상 따라다니는 독과점 문제도 인텔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 등에서 인텔이 PC 업체들을 대상으로 다른 CPU를 사용하지 못하게 배타적인 정책을 실시했다며 조사를 받고 있다.이런 주변 환경 변화 때문일까. 인텔은 위기의식을 느끼기라도 한 듯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07 추계 인텔개발자 포럼(IDF: Intel Developer Forum)에서 향후 PC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전략을 대거 선보였다. 인텔은 정보기술(IT) 산업의 의제를 주도하기 위해 IDF에서 새로운 플랫폼들을 제시해오고 있다.플랫폼(platform)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통합한 것이다. CPU만 판매할 경우 경쟁사의 진입이 쉽지만 플랫폼 전략은 경쟁 업체가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진입 장벽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인텔은 그동안 모바일 플랫폼을 잡기 위해 여러 업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했지만 상용화되지 못한 것을 교훈 삼아, PC에서 즐길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인텔은 ‘성능(Performance)’은 유지하면서 ‘전력 효율(Power Efficiency)’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기존 노트북 PC, 울트라모바일 PC(UMPC) 등이 크기와 가격, 발열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성능과 전력 효율을 유지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인텔은 기존 CPU보다 크기가 60%가량 줄어든 45나노 공정 CPU ‘펜린(Penryn)’을 다음 달 출시할 예정이며, 오는 2009년과 2011년에 32나노 공정과 22나노 공정을 적용해 2년마다 성능이 높아지고 크기가 줄어든 CPU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또 모바일 인터넷 디바이스(MID: Mobile Internet Device)용으로 등장하는 ‘실버손(Silverthorne)’에서는 CPU의 크기와 전력 소모를 기존 제품에 비해 10분의 1로 줄이겠다고 전했다. MID는 휴대가 가능한 인터넷과 e메일, 멀티미디어 등이 가능한 인텔이 추구하는 새로운 모바일 플랫폼 기기다.한편 인텔은 이번 IDF에서 내년 하반기 출시 예정인 MID ‘무어스타운(Moorestown)’을 깜짝 공개하기도 했다. 무어스타운은 CPU, 그래픽 및 메모리 컨트롤러를 단일칩으로 설계한 45나노 공정 시스템온칩(SOC: system on chip) 디자인을 적용한 MID다. 이날 공개된 프로토타입(시제품)은 와이드형 대화면 LCD, 터치스크린 키보드를 내장한 애플 아이폰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아이폰보다 좌우로 더 긴 LCD를 장착하고 있다.PC 업계의 공룡으로 불리는 인텔이지만 모바일 컴퓨팅 환경에는 아직까지 영향력이 미미한 편이다. 기존 스마트폰 업체와 통신 업체들은 인텔이 모바일 플랫폼에 주력하겠다는 발표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인텔이 기존 휴대전화 환경에서 구현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보다 강력하고, 노트북 PC 및 UMPC보다 전력 효율 및 휴대성이 뛰어난 제품을 내놓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휴대용 단말기는 1대 밖에 들고 다니지 않는 것이 소비자들의 성향이라면, 휴대인터넷 단말기는 휴대폰, MP3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PDA, UMPC 제조업체들까지 경쟁 대상이 될 수 있다.인텔은 와이맥스와 MID 연합이라는 두 가지 카드를 꺼내 놨다. 와이맥스(Wimax: Worldwide Interoperability for Microwave Access)는 인텔과 노키아 등의 업체가 주도해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이동 중에도 끊어지지 않고 대용량 데이터를 받을 수 있는 휴대 인터넷 기술이다.인텔은 전 세계 모바일 환경을 와이맥스로 묶는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스프린트 등 통신 서비스 업체와 협력하고 있으며, 일본 KDDI에도 와이맥스 관련 투자를 진행 중이다.이동성이 보장되는 모바일 환경에서도 PC와 같은 대용량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와이맥스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MID는 PC 부문 파트너와 협력해 다양한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인텔은 2세대 UMPC에 적용된 맥카슬린(McCaslin) 플랫폼 후속인 멘로(Menlow) 플랫폼을 적용한 UMPC와 MID 개발을 위해 아수스, 벤큐, 컴팔, 일렉트로비트, HTC, 인벤텍, 퀀타 같은 주요 PC 제조업체들과 기술 혁신 연합을 결성했다. 이를 통해 MID를 빠르게 보급시킬 수 있으며, 업체 간 경쟁을 통해 성능은 높이고 가격은 낮출 수 있다.MID 보급을 위해 인텔은 MS가 아니라 리눅스에도 손을 내밀었다. 인텔은 IDF 현장에서 캐노니컬(www.canonical.com)사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셔틀워스(Mark Shuttleworth)를 불러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리눅스 배포판인 ‘우분투(Ubuntu)’를 MID에 채택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또 인텔은 어도비(www.adobe.com)가 출시 예정인 플래시 재생 프로그램 ‘에어(air)’가 MID에서 구동될 수 있다고 밝혔다.모바일 플랫폼이 중요한 다음 시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기존 PC 시장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인텔은 기존 센트리노(Centrino) 기술보다 강화된 45나노 하이케이 듀얼코어 모바일 프로세서 ‘펜린’이 적용된 ‘몬테비나(Montevina)’ 플랫폼을 내년 하반기부터 선보일 예정이다.몬테비나 플랫폼은 HD-DVD, 블루레이디스크 등 차세대 DVD를 지원하며 데이터 관리 및 보안 기능, 그래픽 성능 등이 보강된다. 와이맥스와 와이파이 통합 기술을 옵션으로 제공해 무선 광대역 접속을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텔은 몬테비나 플랫폼을 통해 ‘성능’과 ‘전력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기존까지 PC 시장 주도권을 잡아왔던 인텔이 모바일 컴퓨팅 환경에서도 왕좌를 계속 지킬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텔이 IDF에서 공개한 기술과 방향은 그동안 소비자들이 원했던 요구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일반 소비자들은 기술과 플랫폼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집에서 PC로 MSN으로 친구와 얘기하고 e메일을 확인한 뒤 구글로 정보를 찾는 것처럼 카페에 있을 때도, 운전 중에도 인터넷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이런 소비자들의 요구를 어떻게 간편하고 빠르게 구현하도록 할 것인지, 또 그것을 인텔이 할지 다른 업체가 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앞으로 시도 때도 없이 전화벨이 울려 성가신 것처럼 극장이나 식당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해질 수 있는 상황이 코앞에 닥친 것만은 확실하다.이형근·디지털타임스 기자 bass007@gmail.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