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기 살리기

‘28개의 다양한 국적 배경을 지닌 종업원 300명, 운용 자산 규모 1000억 달러, 지난 32년간 연평균 수익률 18%.’ 지난 1974년에 싱가포르 정부가 100% 출자해 설립한 국영투자회사 테마섹(Temasec)의 간략한 모습이다.최근 국부 펀드(sovereign wealth funds)의 공격적인 투자 활동과 성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여유 외환 보유액 등 공공 자금을 토대로 정부 기관이 중심이 돼 설립한 펀드를 국부 펀드라고 한다.국부 펀드의 시작은 1953년 설립된 쿠웨이트 투자청이 시초이며 아랍에미리트(ADIA, 1976), 오만(SGSF, 1980), 노르웨이(NBIM) 등 오일 달러가 주요 재원인 산유국 펀드에서부터 호주(FF, 2006), 아일랜드(NTMA, 1990), 프랑스(FRR, 2001) 등 연금을 재원으로 하는 국가 펀드 등 다양하다. 특히 최근 세계 최대 외환 보유국인 중국이 3000억 달러 규모의 외환투자공사를 설립하고 사모 펀드에 과감한 투자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국부 펀드 활동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진 바 있다.국부 펀드의 최근 투자 패턴은 고수익 고위험 자산으로의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주식 비중을 과감하게 늘리는 한편 헤지 펀드, 사모 투자, 부동산, 원유·에너지 등 대체 투자로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있다.투자 대상 기업의 산업 분포 또한 다양하다. 은행 반도체 철강 항공 유통 자동차 전력 방송 도로 등 산업 인프라, 항만 전자 통신 바이오 건강 병원 등 무차별적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는 테마섹과 말레이시아의 카자나(Khazanah Nasional)의 금융사 투자는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을 넘어 향후 국부 펀드의 투자 방향을 가늠하게 해준다.한국의 하나금융지주에 투자 지분을 가지고 있는 테마섹은 최근 인도네시아 최대 은행인 다나몬은행과 BII, 인도의 ICICI, 중국의 건설은행 등으로 투자를 확대했다. 말레이시아의 카자나의 경우, 인도의 예스뱅크(Yes Bank) 투자에 이어 인도네시아의 립포은행(Bank Lippo)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 82%의 최대주주가 됐다. 자국 투자 지분을 과감하게 줄이고 아시아 지역 최대 이머징 마켓의 주요 산업 투자 비중을 전략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이다.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도 2005년 7월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가 출자한 금액 200억 원을 모태로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했다. 2007년 9월 말 현재 투자 집행 실적은 118억 달러이며, 채권과 주식으로만 국한된 현재 투자액 중에서 주식 부문 투자는 37%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자산 규모인 말레이시아 투자 포트폴리오의 다양성과 극심한 대조를 이룬다.한국의 KIC 기능을 제고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첫째, 투자 목적의 명확화 및 투자 대상 자산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KIC 위탁 자산의 85%가 한국은행의 외환 보유 금액을 재원으로 했다는 점에서 유동성 및 안정성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장기 투자를 통해 헤지 투자, 사모 투자, 부동산 등으로 투자 대상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둘째, 투자 대상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 선진국 중심의 투자와 함께 미래 성장 잠재력이 큰 아시아 지역 고성장 국가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셋째, 운영 시스템의 효율화를 포함한 자산 운용의 자율화가 필요하다. 경영진의 책임과 권한을 엄격히 구분하되 투자의 장기성과 상업성을 고려해 필요하다면 관련 법령의 개편까지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홍콩 소재 노무라증권인터내셔널과 테마섹 집행경영진이 미쓰이생명보험회사 지분 공동 투자를 위한 의사 결정에 소요된 시간이 불과 5분이 채 안됐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규모의 경제 실현 및 효율적인 자산 운용을 위해서는 현재 위탁 자산의 증대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60개 공공기금의 여유 자금 운용의 일정 부분을 한국투자공사에 위탁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국부 펀드의 투명성과 부정적 영향에 대한 국제기구의 우려도 있지만, 한국 사회가 현재 걱정할 부분은 KIC의 투자 활동이 지나칠 정도로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KIC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장범식 숭실대 교수 bsjang@ssu.ac.kr약력: 1957년생. 80년 서울대 영문과 졸업. 93년 미국 텍사스대 경영학 박사. 82년 한국산업은행 국제금융부 근무. 93년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위원. 95년 숭실대 교수(현). 2003년 경영대학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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