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업체 ‘하이킥’…‘호텔 저리가라’

장면 1. 외국계 정보기술(IT) 기업 과장인 김영선 씨는 지난 추석 연휴를 서울 인사동 한복판에서 지냈다. 올해 35세 ‘골드미스’인 그녀는 친척들의 결혼 독려가 기다리는 집 대신 프레이저스위츠 ‘투 베드 딜럭스 룸’을 선택했다. 첫날은 친한 친구 2명과 함께 요리를 만들어 와인파티를 하고 둘째 날은 하루 종일 수영과 사우나로 시간을 보냈다. 셋째 날은 느긋하게 뷔페식 아침을 먹고 책을 읽다 한가로운 낮잠까지 즐겼다. 김 씨는 “공간이 제법 넓고 주방시설이 갖춰져 있는 데다 호텔식 서비스도 받을 수 있어서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장면 2. 터키계 미국인인 푸슨 얼켈(Fusun Erkel) 여사는 서울 삼성동 오크우드 프리미어에선 유명한 아주머니다. 노텔네트워크 부문장인 남편을 따라 지난 2005년 11월부터 이곳에 살기 시작하면서 온갖 모임과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 덕분이다. 얼켈 여사는 지난 9월 19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한지공예 강습에도 어김없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얼켈 여사 같은 중년의 외국인 여성 10여 명이 참석, 빛깔 고운 한지를 이용한 공예 체험을 했다. 오크우드 직원 이경애 씨는 “외국인 이웃사촌들끼리 다양한 모임을 갖는 것은 물론 쇼핑과 여행도 함께 가며 우애를 다진다”고 설명을 곁들였다.이들이 이용한 프레이저스위츠와 오크우드프리미어는 모두 서비스드 레지던스(Serviced Residence)다. 서비스드 레지던스란 아파트나 콘도의 주거 공간에 호텔식 서비스를 혼합한 형태를 말한다. 방 안에 취사나 세탁 시설이 갖춰져 있는 게 호텔과 다른 점이지만 아침 뷔페를 제공하거나 커피숍, 레스토랑, 사우나, 비즈니스센터, 피트니스센터 등 부대시설이 갖춰진 점은 호텔과 다르지 않다. 주로 장기 투숙 목적의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호텔형 주거 시스템’이 서비스드 레지던스(이하 레지던스)다.레지던스는 지난 2002년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해 이제는 20여 개 업체가 각축전을 벌일 만큼 시장이 커졌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체류 외국인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수요가 일더니 이제는 웬만한 레지던스의 객실 가동률이 평균 80%선을 기록할 정도로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 호텔에 버금가는 우수한 부대시설에 내 집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취사·세탁 시설이 갖춰져 있으니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 한남동과 성북동 등지의 고급 빌라나 단독주택을 마다하고 레지던스에서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이 적지 않을 정도다. 특히 호텔보다 가격 부담이 덜하고 영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점이 외국인이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레지던스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절반 정도는 1년 이상의 장기 체류자다. 이 때문에 레지던스 업체마다 독특한 거주자 대상 서비스를 개발, 운영 중이다. ‘내 집’ 같은 편안함은 기본이다. 오크우드는 일부러 1층 로비에 리셉션을 두지 않았다. 늘 드나드는 1층 로비가 ‘상업용 숙박 시설’의 느낌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거처를 두었다는 서머셋팰리스는 옥상 정원에 친환경 공간을 꾸며 투숙자를 ‘위로’하고 있다. 다양한 나무와 수영장, 자쿠지, 바비큐 그릴 등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춰 휴식을 돕는다는 것이다.프레이저스위츠는 가족 단위 투숙객을 위해 아이를 돌봐주고 공부방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생활 지원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아침 출근 버스, 여성을 위한 쇼핑 셔틀 버스도 운행한다. 이 회사 김민선 씨는 “한국 생활에 어떤 불편함도 없도록 뒷받침한다”면서 “한국에 갓 부임한 외국인의 적응 터전으로도 인기가 높다”고 밝혔다.최소한의 서비스로 승부하는 곳도 있다. 일본 교리츠가 운영하는 도미인 서울은 작지만 실용적인 싱글족에게 인기가 높다. 거의 모든 객실이 53㎡(옛 16평) 이하의 원룸 형태이지만 스파, 마사지 룸 등 부대시설은 제대로 갖추고 있다. 국내 브랜드인 코업레지던스 역시 47㎡(옛 14평) 이하의 소형 원룸이 대다수다.최근 레지던스 업계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한국인 이용객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서울을 방문하는 출장객, 휴가지를 찾는 도시인들에게 레지던스가 각광받고 있다. 호텔보다 편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는 레지던스 숙박 상품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심지어 아내와 자녀를 유학 보내고 홀로 남은 기러기 아빠들에게도 레지던스가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올랐다. 하우스키핑 서비스가 가능해 혼자 살더라도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승욱 프레이저스위츠 부장은 “내국인들의 숙박 문의가 크게 늘었다”면서 “기러기 아빠, 20~30대 싱글 여성이 특히 많다”고 밝혔다.한편 레지던스의 숙박비는 거주 기간이 장기냐, 단기냐, 외국계냐, 국내 브랜드냐에 따라 달리 매겨진다. 외국계 레지던스의 114㎡(옛 35평) 투 베드룸(거실과 주방을 갖춰 가족 거주 가능)의 공식적인 숙박비는 하루 50만~60만 원선. 하지만 한 달 단위로 계약할 경우 비용은 50%선으로 떨어져 700만~800만 원선이다. 국내 브랜드 레지던스 중에는 이보다 절반 이하인 곳도 많다. 내국인을 겨냥한 하루 10만 원 이하 패키지 상품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취재 = 박수진 기자 / 사진 =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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