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 타고 성장…자체 브랜드 ‘꿈’

신상품 촬영하다 밤새기 일쑤 ㆍㆍㆍ고객 대상 모델 선발 '인기'

이상미 대표(19)는 올해 고려대 보건행정학과에 입학한 2007학번 새내기다. 이제 대학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20년 동안 꿈만 꾸었던 일들을 차츰 실행해 볼 나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대학생이기 이전에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인터넷 패션 쇼핑몰의 운영자로 활약해 온 최고경영자(CEO)다.이 대표가 운영하는 ‘간지나는 우피세상(www.woopy.co.kr)’은 지난해 매월 2000만~3000만 원대의 매출을 기록했고 요즘도 월 1000만 원에 가까운 매출을 내고 있는 숨은 알짜 쇼핑몰이다. 쇼핑몰의 홍수 속에서 만 2년을 맞이하며 살아남은 것은 이 대표 또래 소녀들의 호응에 힘입은 바가 크다.“어릴 때부터 옷을 워낙 좋아했고요. 중학교 때부터는 인터넷 카페에 있는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개인 판매를 시작했어요. 패션 정보를 교환하는 카페에 가입해 내 옷 사진을 올리면 괜찮다는 사람들이 나서면서 한두 명씩 그 옷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이 대표가 고등학생이던 2005년 전후는 한창 개인 인터넷 벼룩시장이 활발하던 때다. 패션 인테리어 요리 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의 관심사와 관련한 카페가 늘어나면서 그 안에서 물품 정보와 함께 개인끼리 판매가 이뤄지기 시작했다.“내 옷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본격적으로 쇼핑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엠파스에 카페를 개설했고 순식간에 회원 수가 2만 명 정도로 늘어났지요. 회원들이 자기가 가입한 다른 카페에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주니까 소문도 빨리 났어요.”당시 엠파스 카페에는 이 대표처럼 개인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체가 운영하는 쇼핑몰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얼마 되지 않아 엠파스는 대대적으로 상업 카페 단속에 나섰다. 이때를 계기로 인터넷에 많은 쇼핑몰이 생겼고 이 대표 역시 독자적인 쇼핑몰을 내기로 결정했다. ‘카페24’라는 호스팅 업체를 선택해 쇼핑몰 구축 노하우를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표의 추측으로는 엠파스 카페 시절 회원의 3분의 1가량이 ‘간지나는 우피세상’ 쇼핑몰 고객으로 따라온 것 같다고 한다.그렇게 해서 ‘간지나는 우피세상’이 2005년 11월 정식 개설됐다. ‘간지나다’라는 말은 느낌이라는 뜻의 일본어 ‘간지’에서 나온 말로 ‘멋지다’라는 정도의 뜻을 담은 속어다. 우피(Woopy)는 ‘우먼(Woman)’과 ‘해피(Happy)’를 우리 말 소리 나는 대로 차용했다. 10대 중반~20대 중반의 여성들의 감각에 잘 맞는 이름이다. 이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쇼핑몰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같은 또래에게 다가갈 수 있는 깜찍하고 따스한 분위기다. ‘매력 있는 소녀’ ‘우리 모두 공용’ ‘스타일의 완성’ 등 메뉴의 이름부터 사이즈를 ‘싸쥬’라고 부르는 것까지 ‘간지나는 우피세상’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쇼핑몰인지가 확실하다.“일부러 제 또래를 공략한 건 아니에요. 제가 예쁘다고 생각한 옷을 고르니까 고객 연령층이 저와 비슷해지더라고요.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제 안목이 변하니까 고객층도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아요. 캐주얼에서 정장으로, 귀여운 것에서 여성스러운 스타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쇼핑몰 홍보에는 주요 고객들이 많이 찾는 카페에서 소문이 난 점 외에도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얼짱 스타’를 기용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요즘은 신상품 모델이 필요할 때마다 고객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열어 모집한다. 고객들과 비슷한 150~160cm의 키를 가진 모델들을 선발해 구매를 촉진하는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이 대표의 쇼핑몰 성공기는 인터넷 쇼핑과 온라인 문화의 발전사와 궤를 같이한다. 어쩌면 대규모의 경쟁 쇼핑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인터넷 쇼핑과 관련한 각종 규제책이 마련된 지금에 와서는 쉽게 보지 못할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이 대표의 지식과 감성이 쇼핑몰의 고객들과 똑같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개인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은 대부분 가족의 전폭적인 협조로 운영된다. 특히 10대 CEO인 이 대표로서는 의류 제조업을 하고 있는 부모의 지원이 큰 격려가 됐다. 이 대표의 부모가 의류 제조업을 한다고 해서 부모가 만드는 옷을 판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혀 별개의 사업이지만 수익 관리와 제품 구입에 있어서 부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쇼핑몰을 위한 별도의 사무실을 차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실은 이 대표가 사용하는 컴퓨터와 배송할 옷들이 점령하고 있다. 또 한창 바쁠 때는 배송을 위해 오빠의 여자 친구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손이 달리기 때문에 인터넷 쇼핑몰은 온 가족의 이해가 있어야만 가능한 사업이다.특히 월 5000만 원이라는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지난해는 이 대표가 수험생이었던 해다. 신상품을 구입한 후, 직접 카메라를 들고 하나하나 촬영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뜨기 일쑤였다. 배송은 가족들이 도와준다고 쳐도 지속적인 게시판 관리는 온전히 이 대표의 몫이었다.“부모님은 공부하라는 말을 전혀 안 하셨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놔두셨고요. 대신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는 쇼핑몰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못 했어요. 공부 말고 다른 일을 한다는 이유로 저를 다르게 보지 않을까 걱정이 됐거든요. 대학에 와서 사귄 친구들도 제가 쇼핑몰을 한다는 걸 잘 몰라요.”친구 관계나 시험 준비 외에 단순히 어리다는 사실만으로도 힘들 때가 있었다.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람이 10대라는 것을 안 사람들이 무조건 한 수 아래로 보는 탓이다.“10대가 운영한다고 하니까 깔보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초창기에는 동대문시장에 나가면 자기네는 도매만 한다며 저에게 물건을 팔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손님들은 배송이 늦어지거나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10대라서 막 하느냐고 게시판에 댓글을 올리고요. 처음에는 화도 냈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해요.”이 대표는 전보다 부지런해지고 남보다 친절해진 것이 10대 때부터 쇼핑몰을 운영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쇼핑몰 운영을 위해서라도 수험 생활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수시 1학기 특별전형’에 도전해 대학에 합격한 것도 개인적으로는 좋은 일이었다.“어린 나이에 시작했다고 후회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좀 더 빨리 했으면 다른 쇼핑몰이 몰려오기 전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내가 좋아하는 옷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옷을 구분하는 감각 같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늘거든요. 앞으로는 경영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자체 브랜드를 내고 싶어요.”그러나 이 대표는 이제 너무 흔한 아이템이 된 패션 쇼핑몰에 뒤늦게 뛰어드는 것을 말리고 싶단다. 또 온라인이라고 해도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례해 매출이 나오는 만큼 아무나 덥석 달려들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대표의 좌우명은 ‘실패한 순간은 잊되 그때의 감정은 잊지 말자’라고 한다. 10대 CEO의 쇼핑몰 운영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좌우명이다. 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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